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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1 17:28 旅遊記

 어제 출발만 너무 길게 써서 힘들어 뻗었다가 지금부터 여행기를 다시 이어가려고 한다. 근데 이건 여러분이 이해를 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거면 그렇게 길게 안썼을텐데 ㅠㅠ 대만에서 출발하는거니 괜히 신기해서 그랬다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어제까지는 출발부터 상해총영사관까지 얘기를 했고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볼까나?

 

3/31 (상해총영사관-중산공원(中山公園)-정안사(靜安寺)-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광치기념관(徐光啓紀念館)-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자후이(徐家淮)-숙소)

 어제까지 상해총영사관에서의 부재자 투표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오늘은 그 이후의 얘기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 상해총영사관이 있는 러우산루역에서 중산공원역까지는 매우 가깝다. 바로 한정거장 거리이기 때문이다.

 

 

(중산공원역 내부 중산공원까지 가려면 지하도를 꽤 걸어야 한다.)

 

중산공원역의 긴 지하보도를 계속 걷다보면 중산공원쪽 출구가 나온다. 그쪽에 나오면 바로 중산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어제 비가 왔지만 이날은 매우 날이 맑아서 공원을 구경하기에는 매우 좋은 날이었다.

 

 

 

 

(중산공원 입구)

 

 중산공원은 들어가보니 매우 큰 공원이었다. 사장님께서 '여기 그냥 공원인데..'라고 하셨으나 이런 시내공원을 처음 보는 그저 눈이 휘둥그레 해질 뿐이었다. 공원 안에는 호수와 물길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유유자적 배를 타고 있었고,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또한 벚꽃까지 아주 흐드러지게 펴져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고, 휴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나왔다.

 

 

 

 

 

 

(한적한 공원의 모습)

 

 사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렇게 사진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말 평화로웠고 좋았다. 가족들은 모두 피크닉을 나와있고, 비누방울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왔다. 바로 영화에서 보던 그런 광경이 아닌가 싶다 싶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폭탄테러가 나던데....-_-) 그리고 드넓은 풀밭 뒤에 보이는 높은 빌딩은 그와 비교되어 공원은 더욱 한적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특이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바로 연날리기!)

 

 날도 좋고 바람도 이따금씩 불어서였을까? 노점상들은 연을 팔고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은 연을 날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많이 봤고 또 많이 날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장소에서 이렇게 연을 많이 날리는 것은 처음 봤다. 연의 스케일도 커서 연에 이어진 실을 묶은 실패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무지 컸다. 뭐 이건 나무 판자에 실을 엄청 묶어서 날리더라. 주로 연을 날리는 분들은 나이가 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동심이 흘러 나왔다. 또 여러가지 모양의 연이 많았는데, 가장 문화적 충격이 왔던 것은 앵그리버드(;;;;;;;;)모양의 연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역시..

 

 

 

 

(춤을 즐기시고 계시는 어르신들)

 

 드넓은 풀밭 뒤에는 이런 휴게시설도 있었는데, 맨 처음에는 이 석상을 보러 갔는데, 참 좋은 풍경을 보았다. 바로 댄스 동아리에 소속되신 분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르신 여러분이 이렇게 음악도 없는데 춤 연습을 하시고 계신거였다. 석상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이렇게 여가생활을 즐기고 계신 어르신들이 더 멋있었다.

 

 

 

 

(죽원에서는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해금 연주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중산공원에는 기둥도 의자도 지붕도 모두 대나무로 만든 죽원이라는 희한한 모양의 휴게시설이 있는데, 거기서 해금 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보니 여러 어르신 들이 해금 연주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여기 뿐만이 아니라 중산공원 곳곳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 분들을 보았는데, 모두 나이가 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한가롭게 이렇게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진 마지막에 나오신 어르신은 상해시 해금연주대회에서 당당하게 대상까지 타신 전력이 있으시다고 하니 얼마나 노력을 하셨는지 안보아도 알만하다.

 

 

(싸우는거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즐기고 계신거에요..)

 

(이렇게 자신의 특기를 공연하시는 분도 계셨다.)

 

 또 중산공원에서는 여러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첫번째 사진과 같이 어르신들이 저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모습이었다. 도중에 막 큰소리를 지르시고 삿대질을 하시는 등 처음에는 싸우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에 서로 웃고 노래까지 같이 즐기시는 것을 보아서 그냥 재미난 이야기를 하신듯 하다. 그리고, 두번째 사진과 같이 어느 한 어르신 께서는 앰프까지 들고오셔서 공원에 온 사람들을 위해서 피리 공연을 하시고 계셨다. 이렇게 하시는게 직업이냐고 여쭤봤더니 직업은 아니고, 집에 있으면 할게 없어서 이렇게 나오셔서 종종 피리로 공연을 하신다고 하였다. 피리 연주가 수준급이셔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들어볼 사람은 한번 들어보자.

 

 

 

 

 

 

 

 

 

(중산공원은 참 아름다운 풍경이 많았다.)

 

 이때가 상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라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대만에서는 이것과 같은 벚꽃을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보던 벚꽃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비록 혼자였지만 상관 없어!) 그리고 이렇게 중산공원 곳곳에는 저렇게 돌로 만든 조형문들과 고풍스러운 다리가 있어 그 맛을 더욱 더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중산공원에 있는 것이 매우 좋았지만 시간의 압박도 있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에는 압박이 커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향한 곳은 정안사(靜安寺)였다. 출발하기 전에 샤오동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곳으로써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상해에 왔으면 한번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말에 바로 코스에 집어넣었고, 이렇게 향하게 되었다. 중산공원 역에서 2호선을 타고 2정거장만 가면 정안사역이 나온다. 처음에 정안사역에서 나왔는데 좀 어리둥절 하였다. 너무 높은 빌딩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과연 고풍스러운 절이 있나 싶었는데, 올라오니 깜짝 놀랐다. 빌딩 숲 사이에 이런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절이..

 

 

 

(오... 빌딩 숲 사이에 이런 절이..)

 

사실 중국 정부에서도 이 절을 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정안사는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기 때문이다. 삼국시기인 오나라때 중건된 절이니, 역사가 약 1800년정도 되었다는 얘기이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절이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에게 정안사는 잘 알려져 있고, 중국 정부에서도 이를 문화재로 당연히 지정을 해서 보존을 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30위안이고, 입장시간은 08:00~17:00이니 유념하기를 바란다.

 

 

 

 

 

(정안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안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향로와 뿌연 향연기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향을 피우고 사방으로 절을 하면서 자신의 바라는 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비록 개인의 신앙이지만 그 이상만큼 성스러워 보이는 것이 없더라.

 우리나라의 절과는 달리 절은 매우 화려했다. 일단 건물의 지붕이 황금색으로 매우 반짝였고, 지붕 양식또한 매우 건장했다. 그리고 때는 중국인의 명절은 청명절이었다. 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예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그 기회를 얻었다.

 

 

 

 

 

(경을 읽고 있는 스님들과 신도들)

 

 큰 법당으로 들어가니 저렇게 법회를 열고 있었다. 법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강론은 다 끝난것 같고 스님들과 신도들은 앉아서 경을 외우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매우 오묘했다. 같이 들어갔던 서양인들도 매우 오묘하고 신기한 이 분위기에 매우 매료된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법회와는 좀 다른 것은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사방에는 불상이 있었고 그 앞에서 신도들은 열심히 절을 드렸고, 또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 가만히 있는 사람, 무언가를 바치는 사람 등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앉아서 경을 읊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은박지를 접으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그것을 만드는 할머니께 무엇을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것이 지전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저승에서 잘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지전을 접어서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옆에 큰 포대를 두시고 그 지전을 접으시는 할머님은 한포대정도 집에 돌아가실거라고 말하시더라. 굉장히 대단하신 것같았다. 그리고 절이나 교회, 성당에서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우리네 할머님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은 늙었으니까 나의 자식들 또 이미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과 조상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 순수한 믿음이 생각나며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안사의 수많은 불상들)

 

 정안사에는 불상들이 매우 많았다. 절에 가서 불상 함부로 찍으면 안된다는 말을 들어서 '한국인 관광객인데 불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러니 사진을 찍으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하시며 대신 플래시만 터뜨리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렇게 불상을 찍을 수 있었다. 일단 불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의 사진은 관세음보살, 마지막사진은 석가모니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더라.. -_-  그 중에 흥미가 가는 불상이 있었는데, 세번째 사진의 불상이다. 나처럼 퉁퉁한 부처님이 앉아서 정이 가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한결 정이 갔다. 나도 저 부처님 처럼 사람들에게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것 같아서 그 앞에서 반성을 하였다.

 

 정안사를 구경을 하고 나서 쉬자후이(徐家淮)로 향했다. 쉬자후이는 상해 서부의 중심권이다. 수많은 쇼핑센터와 높은 빌딩이 있는 쉬자후이는 명나라 때 서광계(徐光啓)라는 과학자이자 관리가 은퇴 후에 이곳에 자신의 일족을 살게끔 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특히 서광계는 서양 과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에서 서양의 문물이 처음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정안사에서 쉬자후이역을 가려면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한다. 7호선 정안사역에서 한 정거장을 가면 1,7호선 창쑤루(常熟路)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두정거장을 내려가면 쉬자후이(徐家淮)역에 도착한다. 쉬자후이는 앞서 말했다시피 서양의 문물이 최초로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의 문물과 현대의 문물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서양의 문물의 상징이자 쉬자후이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으로 갔다. 쉬자후이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볼 수 있다.

 

 

 

(천주교 상해교구청과 쉬자후이 주교좌 성당)

 

 쉬자후이 성당은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불과 50여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현재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은 어딜까? 바로..... 우리나라 논산에 있는 군종교구 육군훈련소 김대건 성당.... 어쩔 수 없다..) 1607년에 로마식으로 지었던 이 성당은 아시아 선교의 전진기지로써 역할을 해왔고, 그와 함께 중국에 서양문물을 전달하는 주요 관문이 되었다. 또한 천주교신자였던 서광계가 이곳에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과학적인 성과를 냈던 장소기도 하다. 또한 한국 천주교와도 연관이 있는 곳인데, 바로 한국 천주교에서 2번째로 사제서품을 받으신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으신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의 성당은 1906년 재개발에 들어갔고 1910년에 지금의 성당을 지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상해에 상륙하고, 중국 공산당이 상해를 점령했을 때도 이러한 역사를 인정받아 쉬자후이 성당에서 가톨릭 전례를 허가 받았으나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첨탑이 잘려나갔고, 성당은 폐쇄가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에 다시 종교행사가 거행되면서 상해 천주교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공산당은 사제서품과 주교서품을 자기 맘대로 하고 있지..-_-..

 

 쉬자후이 성당은 관람시간이 따로 있다.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성당 내부를 관람할 수가 없다. 다만, 예외는 있는데, 천주교 신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관람시간에 관계 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나의 경우, 성당 앞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니 관리자 분이 관리소 안에 나와서 안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 저 한국에서 온 한국인 신자인데요.. 성당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러냐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셨다. 그 덕분에 뒤에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저놈은 왜 들어가고 우리는 왜 못들어감?'그렇게 실갱이가 벌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천주교 신자라고는 하지 말자.. 전적으로 양심에 걸린 문제니까..

 

 

 

 

 

(쉬자후이 성당 외부)

 

 쉬자후이 성당 외부를 보니 갑자기 우리나라의 명동성당이 생각이 났다. 좀 많이 주변이 다르긴 하지만 번화가의 중심지에 있고 각각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고 현재까지도 랜드마크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이 천주교를 탄압하고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와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도하는 모습 자체가 우리나라 신도들 보다 더 성스러워 보이더라. (하지만, 중국이 천주교를 탄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중국은 애국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그 조직의 성당에서의 종교활동은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공산당은 꾸준히 애국회를 통해서 중국천주교회에 엄청나게 간섭을 하고 있고, 교황청의 고유권한인 사제서품권, 주교서품권을 맘대로 이용해서 바티칸과 갈등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도 교황청의 말만을 따른 지하교회가 있는데, 그곳은 엄청나게 탄압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수많은 지하교회의 신부님과 주교님들은 중국 감옥 내에서 죽어가고 있다.)

 

 

 

 

 

(쉬자후이 성당 내부, 고해소, 성물판매소)

 쉬자후이 성당의 주보성인은 바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예수회의 창설자 이자 지금도 많은 곳에서 존경 받고 있는 성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좀 어울리지 않는데, 이 곳의 주보성인이 성이냐시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607년 당시에 처음 선교를 왔던 선교사들이 전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아주 유명했던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 역시 예수회 신부님이셨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한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내부는 보면 볼 수록 명동성당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시에 주님수난성지주일이었기 때문에 성당안은 이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이곳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되지만 관리소에 간곡한 호소를 하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가능하다.

 

 오랜만에 가는 큰 성당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조금 묵상을 할 수 있었고, 또 여러 중국 신자들도 묵주알을 굴리거나 묵상을 하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성물 판매소가 있길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묵주팔찌를 2개 샀다. 이 또한 관리자 아저씨의 배려로 조금 깎아서 살 수 있었으니.... 이는 필시 관리자 아저씨가 나를 잘 본 것임에 틀림 없어!!!

 

 쉬자후이성당을 나와서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오른쪽에 큰 여행안내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가지 팜플렛과 안내를 받았다. 원래는 다른 곳에 가려고 했었으나 (그 주변에 유명한 학교도 있고 여러가지 유적이 있다.) 학교는 문을 닫고 여러군데는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서광계의 묘가 있는 서광계기념관에 가기로 하였다.

 

 

 

(서광계 기념관 가는 길)

 

 이곳 쉬자후이는 서광계의 동네라는 말이 맞다. 앞서 설명한 유래도 그렇고 곳곳에 저렇게 서광계의 동상이 있어 쉬자후이에서 서광계는 어느 위치의 인물이며 상해인들이 얼마나 서광계를 존경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서광계 기념관 정경)

 

 서광계 기념관은 마치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한 가운데에는 서광계의 묘가 조성이 되어 있었고 주변으로는 서광계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동상이 놓여 있었다. 또한 많은 나무 아래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저렇게 장기를 두시거나 마작을 하셨다. 서광계의 묘 앞에는 굉장히 특이한 것이 있다. 서광계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증명시키다 시피 큰 십자가가 그의 묘역 앞에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라틴어와 중국어로 된 주님의 기도가 새겨져 있었다. 다소곳하게 묵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어르신들이 여러가지 놀이를 즐기고 계셔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과학자로서의 서광계의 모습을 저렇게 보여주고 있는데, 서광계는 서양역법을 중국에 도입해서 중국에 굉장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고 거의 최초로 서양인들과 엄청난 교류를 맺었던 사람이기에 중국에도 지금까지 회자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서광계 기념관을 떠나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강남지역에는 수상마을이 굉장히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곳이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抗州).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패키지 여행으로 가는 곳이고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상해에서 쑤저우는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그곳을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상해 근교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에 가기로 하였다. 쉬자후이역에서 9호선을 타고 약 20분 정도를 가면 치바오라오쟈가 있는 치바오(七寶)역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상해의 근교여서 그런지 쉬자후이와는 완벽히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딱봐도 변두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치바오라오쟈에 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사람은 매우 많았다.

 

 

 

 

(치바오라오쟈 입구)

 지하철역에서 약 5분정도 걸으니 치바오라오쟈 입구가 나왔다. 별로인 모습에 실망할 뻔했지만 이것은 치바오라오쟈의 그저 입구일 뿐이었다. 치바오의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안으로 더욱 들어가야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치바오라오쟈)

 

 조금 더 걸으니 바로 아치형 다리가 나왔는데 '아 이곳이 치바오라오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다리에 올라가서 건너려고 하니 그 주변에 들어오는 경치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배와 아치형 다리는 그야말로 절묘한 조합을 이루었다. 그다음 바로 관광지역 옆이 주거지역이었기 때문에 강 주변에 널려 있는 빨래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단점이 있다면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거.

 

 치바오라오쟈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난리가 난다. 길은 좁은데 양옆으로는 상점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정말 가만히 서있어도 앞으로 가는 이 느낌은 바로 신도림역에서나 느낄 수 있는 느낌이었다. 치바오라오쟈는 원래부터 만두가 상당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만두를 사서 먹었는데, 상당히 맛있더라. 그리고 양옆으로 족발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치바오라오쟈의 갖가지 볼거리)

 

 치바오라오쟈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상당히 먹을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게 흠이고, 그다음에 제대로 된 기념품이 없는 것도 흠이었다. 오로지 먹을것만;;;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것을 보았다. 어떤 걸인이 구걸을 하는데, 그냥 구걸을 하는게 아니라 길바닥에 백묵으로 저렇게 글을 쓰고 구걸을 하더라. 거의 20m에 걸쳐 쓴 저 글씨는 상당히 명필이었다. 또 여러가지 글을 쓰시는듯 지웠다 썼다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매우 신기하였다. 또한 다리에서 넘어가니 저렇게 돌에 여러가지 문양과 글을 새겨주고 목걸이로 만들어주기도 하더라. 도중에는 '사랑해'라는 한글 구절이 새겨져 있기도 하여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값도 비교적 싸고 치바오라오쟈에서는 특색있는 기념품이 없길래 돌에 나무와 이름을 새겼다. 처음에는 35위안을 불렀으나.. 결국에는 15위안까지 깎아서.....-_-; 길거리에서 만들어주는 것이긴 하지만 전각 솜씨가 정말 훌륭하시더라.

 

 치바오라오쟈는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져 있었다. 더 있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다시 쉬자후이로 돌아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밤의 쉬자후이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자후이에 도착하니 아직도 날을 밝았다. 5시쯤에 도착했으니 아직도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쉬자후이 성당 앞 관광안내소. 커피숍까지 겸비하고 있어 시간때우기 상당히 좋다.)

 

 쉬자후이 성당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는데, 6시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다리도 아프고 그래서 라떼하나 시켜놓고 6시까지만 있기로 하고 앉아서 멍을 때리거나 갈 곳을 궁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쉬자후이의 어디로 가야할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윽고 5시 40분이 되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쉬자후이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ㅇ_ㅇ? 성당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뭔가 있나 했는데, 나를 알아본 성당 관리자 아저씨가 나오시면서 '20분 후에 특전미사가 있으니 들어가서 미사를 보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이런 기회가 있다니! 알고보니 쉬자후이성당에는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특전미사가 거행된다고 한다. 나는 결국 이 미사에 시간에 맞춰서 잘 오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셨나? 싶기도 하고 정말 감사하며 성당에 다시 들어갔다.

 

 

 

 

 

(쉬자후이 성당 미사와 쉬자후이 성당 야경)

 

 처음 중국땅에서 드리는 미사는 그야말로 정말 엄청난 은혜였다. 또한 여러가지의 미사양식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였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이기 때문이 매우 큰 미사여서 향이 등장하였는데, 우리나라 같이 향때문에 이리저리 사라졌다가 다시나타는 복사들이 계속 옆에 서있었다. 그것도 향을 미사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흔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대만에서 드리는 미사와 중국에서 드리는 미사경문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상당히 주목이 가는 부분이었다. 1시간이 좀 넘는 미사가 끝나고 나니 드디어 날이 어두워졌다. 예쁜 쉬자후이 성당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쉬자후이 시내로 향할 수 있었다.

 

 

 

 

 

 

 

 

 

 

(쉬자후이의 야경.. 오오)

 

 쉬자후이의 야경은 정말 휘향찬란했다. 깜짝 놀랐다. 이것이 바로 상해의 야경이구나! 싶었다. 쉬자후이는 원래 쇼핑센터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쇼핑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니와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다녔다. 특히 전기를 이용한 엄청난 양의 네온싸인이 너무 번쩍번쩍 거려서 다소 위압적이기 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날 간 와이탄과 푸동과 비교하면 흠..... 어쨌든 매우 멋있는 이 거리에 넋이 나간채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전공이 중국학이라고 하니 중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많이 들었다. 책에서 본 내용과 직접 듣는 얘기는 역시 다르더라. 그리고 상하이가 중국 경제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물가가 비싼지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진진했다.

 

(어우.. 너무 길어집니다 ㅋ 다음 3편(와이탄,포동)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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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21 00:09 旅遊記

 나는 예전부터 중국과 많은 인연이 있었던것 같다. 해외여행도 중국으로 많이 나갔었고, 지금 공부도 중국에 관련된 내용을 하지 않은가? 하지만, 중국의 큰 도시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중에 상하이는 더욱이 그랬다. 상하이(上海). 참 많이 이야기 하는 말이지만 단 한번 일 때문에 1박 2일 정도 있던 것이 전부였다. 포동에 잠깐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높은 빌딩들, 멀리 보이는 포서쪽의 고풍스러운 모습들이 나중에 꼭 상해에 여행을 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재외국민투표가 그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투표는 개인의 합법적인 의사표출 방법이자 신이주신 의무라고 믿는(오반가 -_-?) 나는 이곳 대만에 오기전에 재외국민투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서 매우 기뻤다. 특히 이번 2012년이 총선과 대선이 다 있는 해라서 이렇게 역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때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듣고서 굉장히 마음이 아파왔는데, 재외국민투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대만은 미수교국가이자 미승인국가이고 영사관이나 대사관 급에 생기는 재외국민투표소는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에 생기지 않았다. 방법은 투표를 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나 홍콩을 가야하는 방법 뿐이었다. 결국에는 엄청난 비용을 안고 투표를 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교 안에 있는 여행사(학교에 관광학과가 있어서 그쪽 졸업반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실습여행사가 있다.)를 통해서 중국 비자를 받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 합치니 63만원정도.. -_- 일반 유학생이 부담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가격이다. 그렇게 2박 3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짰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교환학생 수빈이가 만류한다. 그 기간 어짜피 부활절 휴가이고 그렇게 짧게 다녀올 바에는 맘 편히 길게 갔다오란다. 먹는것등의 물가도 여기보다 쌀 것이라며 말이다. 결국에는 그 얘기에 흔들려서 4박 5일간의 긴 첫 단독 해외여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곳에는 또 대륙 교환학생이 많은데 이곳에는 상해 출신의 학생들도 있다. 그 중 앞서 여행기에 종종 나왔던 우리 샤오동(魯曉東)이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자기의 돌려보낼 짐과 가족, 친척들에게 줄 선물을 좀 사왔는데 그것을 가는길에 가족들에게 전달해 줄 수 없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좀 꺼려..(여러가지 이유로)했지만 샤오동이 너무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결국에 가져가기로 하였다. 나의 짐 8kg과 샤오동의 짐 14kg를 들고 타오위안 국제공항까지 갈 생각에 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하였다. 샤오동은 부모님이 공항에 마중나오기로 했다며 부모님이 숙소까지 데려다 줄것이고, 친구를 불러서 같이 관광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지만 나는 괜히 난데 없이 나타난 한국 사람 때문에 괜히 샤오동 주변인물들이 불편을 겪는 것 같아서 사양을 했다. 다만, 샤오동의 부모님이 나와서 짐을 인수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 어찌나 죄송하던지...-_- 그리고 상하이 지역의 명소들의 정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3/30(타이중(臺中)-타오위안국제공항(臺灣桃園國際機場)-상하이푸동국제공항(上海浦東國際機場)-숙소)

 

 3/30 화어중심의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는 바로 고속철도 타이중(臺中)역으로 이동하였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수업이 있었지만 교수님께 잘 설명을 드려서 허가를 받아냈다. 원래는 샤루(沙鹿)역에서 구간열차를 타고 고속철도 타이중역과 바로 이어져 있는 신우르(新烏日)역으로 가려고 했으나 너무나 기차시간이 난감하여 동하이(東海)대 앞에서 고속철도셔틀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타이중시에는 타이중 역이 두개가 있다. 먼저 일반철도인 타이중기차역(臺中火車站)과 까오티에타이중역(高鐵臺中站)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타이베이역(臺北站)을 제외하고는 일반철도와 고속철도역이 모두 나누어져 있는것이 특징이다. 만일 대만에서 어딘가를 기차나 고속철도로 이용할때 이 점을 꼭 유념하여야 한다. 어쨌든 동하이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고속철도를 타러갔다. 참고로 까오티에셔틀버스는 공짜다.

 

 

 

 

 

(오오 이것이 바로 대만의 고속철도 오오)

 

 이것을 타면 신주(新竹)를 거쳐 공항이 있는 타오위안(桃園)역까지 40분이면 도달한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면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빠르게 가는 것이다. 기차 값은 500위안이나 일찍 예약을 했기 때문에 495원에 탔다. 우리돈으로 2만원 약간 안되는 돈이다. 기차 안은 사실 우리나라의 KTX가 좋은 것 같았다. 사람도 많았고, 좌석이 3명, 2명으로 앉게 되어 있어서 좀 좁게 가야한다. 이런 것은 우리나라가 좋은 것 같다.

 

 결국 타오위안역에 도착했다. 타오위안역은 지하에 있는데, 공항에 가기 위해서는 지상으로 나오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 매우 편했다. 그리고 타오위안역에는 우리나라의 서울역 처럼 체크인 서비스를 할 수 있다. 바로 대만의 1,2위 항공사인 중화항공(中華航空, China airline)과  에바항공(長榮航空, Eva airlines)의 체크인 서비스센터가 있다. (다른 항공사는 닥치고 공항으로 가야 ㅇㅇ) 내가 이용한 항공사는 에바항공이었기 때문에 바로 역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가볍게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까오티에타오위안역에서 공항까지는 버스가 있는데 30NTD이다. 그걸 타고 약 20분 정도 가니 타오위안공항이 나왔다.

 

 

 

 

(타오위안공항 제2청사, 사진 중에 에어부산이 좀 위엄돋는듯.)

 

 이 때가 대만의 어린이날과 중국의 청명절이 끼어서 공항은 매우 혼잡했다. 공항 구경한다고 깝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출국 대기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못나갈 뻔했다.. 진짜. 출국심사를 받으러 들어갔더니 정말 외국인 줄이 장난 아니더라.. 하지만 대만 국민들이 이용하는 줄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 줄을 서서 반쯤 들어갔는데 눈에 들어오는게 있었다.. 거류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만 국민들이 이용하는 줄에 서도 된다고.. -_-..... 나는 거류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괜히 이 줄에 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냥 여기서 심사받아야지.. 심사를 받고 나오니 탑승시간까지 30분 남았길래 그저 달렸다. -_-

 

 

 

(비행기는 언제나 타도 설레이더라.)

 

 비행기를 타니 전부 중국인 아니면 대만인이더라.. -_- 물론, 대만국적기에 외국 사람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 서양인들도 조금 보이긴 하던데.. 타오위안국제공항에서 상하이푸둥공항(上海浦東空港)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 중에 투표근을 단련시키기 위해 '닥치고 정치'를 읽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중국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기내식도 나왔는데, 참으로 맛있었다.

 

 19시..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했다. 원래 18시 30분 도착 예정이었는데 30분정도 연착이 된 모양이다. 상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온도는 12도;;;;;;;;;를 가르키고 있었다. 아까 대만은 25도를 넘나들었는데.. 그래서 반팔에 샌들 바람인데.. 꽤 고생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입국 심사대로 가면서 아이폰을 켜고 여러가지 어플을 만져봤는데.. 아 역시 중국이어서 그런지 페이스북, 트위터는 안되더라.. 근데, 카카오톡은 되는 더러운 세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카오톡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매우 신기해 하였다.

 

 나를 기다리고 계실 샤오동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짐을 받자마자 뛰어서 나왔다. 그 혼잡한 상해 푸동공항 대기실에서 결국에는 샤오동의 부모님을 찾았고 인사를 드렸다. 샤오동이 내 이름을 알려줬는지, 부모님께서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된 내 이름이 쓰여진 피켓을 드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더라. 정말 수고했다고 말씀하시고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겠냐고 격려 하시더라. 갖고 오는건 조금 피곤했지만 그 격려에 힘이 났다. 숙소까지 태워다 주시겠다는것을 가까스로 사양하고 안녕히 돌아가시라 인사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샤오동의 아버님께서 이걸 손에 쥐어주셨다.

 

 

(아 예쁘다... 사진이 좀 예쁘지 않게 나왔는데.. 직접 보면 정말 예쁘다.)

 

 아이고 아버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그러면서 사양하려고 했지만, 아버님은 더 힘을 주어 나에게 이것을 건네셨고 결국에는 강제로 가방에 집어넣으셨다. 그리고 나는 연신 인사를 계속 하면서 헤어졌다. 사진을 한컷이라도 찍어서 샤오동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헤어지게 되면서 찍지 못했다 ㅠㅠ 어쨌든 아버님, 어머님께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렇게 샤오동의 부모님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 자기부상열차를 타기 위해서 움직였다. 숙소가 자기부상열차의 종점인 롱양루(龍陽路)역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그것을 택한 것이었고, 상하이에 가면 공항에서 그 열차를 타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들이 있어서 타게 되었다. 300km까지 속력이 나는 이 열차는 7분만에 롱양루역까지 데려다 준다. 그냥 타려면 50위안이고 비행기표가 있으면 40위안까지 할인이 된다.

 

 

 

 

(오오 시속 300km의 위엄 오오)

 

 엄청 빨랐다. 좀 무서울 정도로 빨랐는데, 진동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기차안에는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있어서 외국에도 잘 알려진 철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롱양루역에 도착하니 좀 추웠다. 비까지 내리는 상태였기 때문에 한기가 꽤 돌더라. 숙소 홈페이지에서 알려준데로 길을 가니 10분정도 갔는데, 잉? 웬 아파트가...... 알고보니 아파트 안에 있는 민박집이었다. 사실, 상해의 숙소값은 정말 비싸서 나의 예산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기에 찾다가 한국인 민박을 찾았다. '상해이모네민박'이라는 곳이었다. 혼자 묵고 값도 싸기에 기대를 하고 갔는데, 이런 아파트가 떡하니 있으니 흠 ㅇㅇ..... 근데 미리 말해두지만 사장님, 아주머니, 시설 정말 좋고 친절했다. 다시 상해 올일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서 묵겠다 할 정도였다. 앞으로도 종종 언급하겠지만 정말 낸 돈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친절과 서비스를 베풀어주셔서 감읍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남의 아파트에 들어간다는 것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일단 늦은 시각이었고, 사장님도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방 배정을 일단 받고 씻은 다음에 잠이 들었다. 본격적인 여행은 바로 3/31부터지 암암.

 

3/31 (상해총영사관-중산공원(中山公園)-정안사(靜安寺)-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광치기념관(徐光啓紀念館)-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자후이(徐家淮))

 

 다음날 누군가 문을 두들겨서 일어나니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고 사장님이 맞이해주셨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리고 너무 맛있어서 밥 한그릇을 박박 긁어먹었다. 그리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원래는 사장님의 직업은 민박을 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상해에서 특수기계쪽의 일을 하신다고 한다. 가족은 한국에 있는데, 혼자 사시기에는 집이 너무 커서 방을 민박으로 내주시는 거란다. 상해 푸동에는 한국인이 하는 이런 방식의 민박이 몇군데가 더 있다고 한다. 일단 생업이 아니시고 일종의 부업으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민박보다는 여유롭고 즐기면서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것은 참 재밌다고 하시더라.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께 짜가지고 온 일정에 대해서 협의를 하였다. '이거 하루동안 다 돌기 힘들텐데?'라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젊다는 것이 무엇인가? 당차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조금 걱정하시며 지도등 이것저것을 챙겨주시기 시작하였다. 거기다가 상하이 교통카드까지 겟하고 나왔다. 오오 사장님의 무한지원 오오

 

 지하철 2호선 롱양루역에 들어가서 교통카드를 충전하려고 했는데, 첫번부터 문제가 생겼다. 자동 충전 기계가 카드를 먹고 안내놓는것 아닌가? 아오... 처음부터.. 지나가는 경관에게 이렇다고 하니까 서비스센터 가서 얘기하란다.. -_-;; 결국 서비스센터에 가서 문제는 해결 하였다.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상당히 당황하였다. 결국에는 그 교통카드를 가지고 서비스센터에 가서 수동으로 충전을 한다음에 지하철에 오를 수 있었다.

 

 

(상해 지하철 2호선.)

 

상하이는 참 좋은게 있었다. 바로 지하철이 너무나 잘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은 서울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택시나 버스를 타지 않더라도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면 내가 원하는 곳은 거의 다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여행일정도 지하철을 중심으로 짰다. 비교적 가까운 다른 곳도 가고 싶었지만, 갈 용기도 나지 않았고, 비용도 없어서 상해 시내로만 국한 시켰지만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첫번째 일정은 재외국민투표를 하기 위하여 상하이대한민국총영사관을 가기로 하였다. 어느것보다도 주요목적이 재외국민투표였기 때문에 우선해서 잡았고 이날 일정은 그래서 숙소와는 거리가 먼 서쪽을 중심으로 잡았다. 롱양루역에서 2호선만 타면 갈 수 있었지만 그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약 40분을 가니 상하이총영사관과 근접한 러우산루(婁山路)역에 도착했다.

 

 

(러우산루 광경)

 

 러우산루를 따라 걸으니 매우 불안해졌다.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데로 걷고 있는것은 같은데, 느낌은 좀 아닌것같고... 높은 건물들만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허름한 건물이 쭉 나타나서 다소 불안하였다. 길을 몇개 건너니 다른 나라들 국기가 많이 휘날리고 있었다. 바로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제대로 걷고 있구나. 이곳이 대사관거리같은 곳이군.'

 

 

 

 

(러우산루와 완산루에 있는 각종 영사관들..)

 

 계속 걸어가니 총영사관이 있다는 완산루(萬山路)에 도착했고 계속 걸었다. 왼쪽으로 도니... 바로.. 영사관이 보이더라!

 

 

 

 

(이곳이 바로 상하이총영사관, 상하이 하늘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언제봐도 눈물이 난다.)

 

 태극기와 한글을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그리고 한국어로 얘기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고서 얼마나 반갑던지 감격을 하였다. 게다가 상하이 총영사관은 6,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재외국민선거인으로 등록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었다.

 

 

 

 

(투표소 모습과 인증샷!)

 

 영사관 앞에서 신분 확인을 하고 영사관 로비로 들어갔다. 로비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들어왔다.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찍고 있었지만 투표소 안에서 허가없는 촬영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들어가서 다시 신분 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받은 다음에 국민의 의무를 행사하였다. 오며가며 들어보니 주재원들이 많았고, 주재원들이 토요일날 시간을 내서 이렇게 투표를 하러 온 것이었다. 다시한번 그들의 정치 참여에 기쁨을 느끼며, 나올 수 있었다. 나오려는데, 갑자기 인터뷰 요청을 하더라. 방송사에서 나온건 아니고, 아마도 선관위에서 강평을 하기 위해 찍는 자료 또는 홍보용 비디오 자료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분도 서울에서 이거찍으려고 출장나왔다고 해서 흔쾌히 응하였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투표소가 생겨야 하고 대선때는 반드시 타이베이에도 투표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목을 놓아 울부짖......지는 않았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총영사관을 나섰는데 발걸음이 매우 가볍더라. 애국 청년으로써 무언가를 해낸 것 같아서 말이다..(그리고 며칠 후에 그 뿌듯함은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_-)

 

(아오.. 4박 5일 일정을 담으려고 하니 너무 길어지네요 ㅠㅠ 상하이여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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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18 20:48 旅遊記

 대만은 길쭉한 섬이다. 그것도 우리나라 영토의 1/3밖에 안되는 조그마한 섬인데 참을 희한하게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우리나라의 백두산 보다 더 높은 위산(玉山)이 있고, 도시마다 다른 풍경들과 대만섬을 둘러싸고 있는 사해의 풍경은 참으로 신기하다. 대만 섬 중앙에는 높은 고산지대이고 그 덕분으로 중앙고산지대와 동대만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300만명이라는 인구가 대만에 산다. 그것도 주로 대만 서부에.. 우리나라보다 더 신기한 곳임은 틀림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대만 최남단이 컨딩(墾丁)에 다녀왔다. 원래 핑동(屛東)현 헝춘(恒春)진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나, 이곳 일대가 대만의 최남단이고 이곳이 컨딩국가공원으로 묶여있어서 이곳은 컨딩이라는 이름이 훨씬 유명하다.

 

 3월 16일 이날 참 햇빛도 좋고 살짝 무더운 날이었다. 저번에 남대만 갔을때에 더위에 허덕였던 악몽이 생각나서 옷을 여름옷만 챙겨서 나왔다. 다른 애들은 여러가지 옷을 챙겨왔으나, 이윽고 그 애들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 '세진, 너는 참 옷을 잘 챙겨온것 같아.'

 

 

 

(출발! 여행의 출발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샤루(沙鹿)역에서 가오슝(高雄)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의 무궁화호 급의 열차를 탔는데, 뭐 예상하다시피 큰도시, 작은도시 다 들러서 가기때문에 타이중(臺中)에서 가오슝(高雄)까지는 약 3시간이 걸렸다. 한국의 1/3크기라면서 이렇게 오래걸리나... 하겠지만 대만은 남북으로 긴섬이기 떄문에 가능한 일이다. 타이베이(臺北)에서 가오슝까지는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우리나라의 서울-부산거리보다 더 긴듯.... 가는 동안 대륙인 션(영어이름이다. 중국이름은 任紳, 우리나라 말로 돌리면 임신이다;;;;;;; 저번에 수빈이가 이름에 대해서 말해주니 패닉에 빠지며 자기 이름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과 함께 이것저것 이야기 하면서 3시간을 보냈다. 내가 영어, 중국어를 전부 잘 못하는지라 션은 내 얘기 들어주느라 매우 수고하였다.

 

 

 

 

(드디어 가오슝이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가오슝에 도착했다. 대만의 제 2의 도시이고 아시아에서 싱가폴, 부산과 함께 3대 컨테이너 항구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가오슝 역에 도착하니 마치 부산에 온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가오슝역 승강장과 구름다리는 마치 내가 부전역에 있는듯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대만의 제 2 도시 답게 가오슝 역과 그 주변에는 정말 사람이 넘쳐났다.

 

 이번 여행의 리더 샤오동(盧曉東)이 잘 예약을 해두어 가오슝 역에서 바로 컨딩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그런데, 말이 택시지 그냥 SUV차량을 굴려서 영업을 하더라. 아마 정식택시가 아니라, 렌트카 개념인것 같았다. 비용은 조금 비싸다. 한사람당 400위안(12,000원)정도 냈으니.. 가오슝역에는 컨딩에 바로 가는 버스도 있고, 고속철도 종점인 줘잉(左營)역에서도 컨딩 가는 버스가 있으니 만일 이글 보고 가실 분은 이 교통편을 이용하기 바란다.

 

 나는 가깝다는 말만 믿고 그냥 가는데, 컨딩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탔고 쾌속도로(우리나라로 따지면 고속화도로)도 탔고, 일반 국도도 탔는데, 컨딩은 나오지 않더라. 그 와중에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는 풍경이 나타났다.

 

 

 

 

 

(오오 그야말로 대양.)

 

 이곳에서 다년간 영업을 해오신 기사아저씨는 눈치를 당연히 채시고 구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대양이었다. 비슷한 곳이 있다면 제주도 정도. 사진은 저렇게 나왔지만 바닷물을 정말 새파랐고 바다 속은 투명했다. 이 바다 끝에는 필리핀 정도가 나올정도니 정말로 태평양 바다를 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국인인 나나 수빈이도 그랬고 대륙인인 나머지 친구들들도 이 광경을 매우 신기해 했다.

 

 이윽고 가오슝에서 2시간정도 달려 컨딩에 도착했다. 대만중에서도 최남단이라 날씨는 30도를 넘나들었고 해안가라 습도도 꽤 찼지만 그래도 섬의 끝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구국단청년활동중심(求國團靑年活動中心)'이라는 수련원이었다. 이름만 들었을때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난감한 곳 같았지만 매우 시설이 좋았다. 그리고 주말이어서 그런지 가족단위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숙소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저렇게 셀카를 ㄱ-)

 

대만의 전통 가옥을 모델로 해서 만든 숙소는 굉장히 커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이전에 좀 비싼가격에 난감해 했었는데 그런생각을 잊게 만들어주는 정도의 퀄리티였다. 더구나 아침도 주니 이건 뭐 거저먹기지.. 짐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컨딩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컨딩은 참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의 패션센스에 또 한번 놀랐다. 그 와중에 저렇게 나는 선생님틱하게 있다.)

 

 컨딩앞바다는 동쪽의 태평양가 서쪽의 대만해협이 만나는 곳이다. 컨딩은 또 만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물결이 다른곳보다는 잔잔하고 또한 풍경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노을이 지는 컨딩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릉도원과 같았고, 아이들도 저렇게 신나했다. 일단 멕시코 식당에 들러서 밥을 먹었다. 비싸기도 했고,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나는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자맛은 한국보다는 맛있었다. 또, 사진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애들은 정말 사진을 미친듯이(;;;;;;)찍더라... -_-

 

 밥을 다 먹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를 좋아하고 지금도 바다근처에 살고 있으며(대학이 대만해협 근처에 있다.) 한국에서도 바다 근처에 살고 있는 (10분만 가면 소래포구다.) 나는 바다를 보고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바다를 보는게 상당히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선뜻 물에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더라.. 옷을 버려서 그런가..... 그래도 재밌게 놀았다.

 

 

 

 

 

 

(아이들은 바다를 좋아했다.. 하지만 난 더 좋아했다.)

 컨딩의 바다에 도착한 순간 나는 신발을 벗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다만, 입을 옷이 없어서 홀라당 벗고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잠길정도로 재밌게 놀았다. 컨딩의 바다의 특이점은 파도가 매우 세다는 데 있다. 앞서 바다가 매우 잔잔했느냐 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보실 분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만의 다른 바다에 비해서이다. 뭐랄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물살이 나에게 달려오더라. 나는 아이처럼 첨벙첨벙 대면서 아주 재밌게 놀았다. 그리고 집단으로 게임을 한가지 했는데, 너무나 순수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숫자를 생각하고 그걸 업앤 다운을 시켜서 범위를 축소한 다음에 숫자를 맞추면 바다에 한발 다가서기 ㄷㄷㄷㄷㄷㄷㄷㄷㄷ;;;;; 아마 우리나라에서 노는것 처럼 했었으면 더욱 악독하게 했겠지.. 그리고 게임을 하기전에 나는 애들을 하나하나 들쳐업고 바다로 빠뜨렸을거다 아마..... 어쨌든 그 게임을 재밌게 하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큰 파도가 덮쳐서 모두 옷이 젖고 이 게임은 끝났다. 그래도 옛날 동심을 생각나게 하는 게임이어서 매우 재밌었다.

 

 복잡한 컨딩거리를 구경하고 나서 밥을 먹고 첫째날은 그렇게 종료가 되었다.

 

 두번째 날에는 아침일찍부터 컨딩을 돌기위해서 일어났다. 먼거리를 다녀서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맑은날 컨딩을 다닌다는 기분에 모두들 들떠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차를 두대를 빌려서 컨딩의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었다. 한가지 놀랐던 것은 기사 아저씨가 상당히 젊었고 (내또래거나 나보다 더 어려보이더라) 차 안에서는 한국노래가 흘러나오더라 물어보니 손님들이 한국노래를 좋아하고 자신도 한국노래를 좋아해서 튼다고 그러더라 한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역시 남자들은 저렇게 놀아야지.. 오오 바닷빛)

 

 컨딩의 해안은 좀 신기하게 생겼다. 해안이 모래로 이루어진 곳은 별로 없고 거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구멍이 송송 뚫린것을 보아 옛날에 그곳에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 같다. 맨 마지막에서 보다시피 바닷빛은 저렇게 하늘색빛에 투명하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바다에 온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한 해안과 아름다운 바위를 보면서 내 마음은 사실 매우 안좋았다. 바로 제주의 구럼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와 검정색 저 바위들..)

 

 당시 강정마을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자연을 지키려는 자들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공권력. 나는 환경은 어떻게든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군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문화 관광 유산을 파괴하고 그곳에다가 군항을 만드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나라가 대양해군이 되기위해서는 제주에 군항을 하나 더 만드는게 문제가 아니라 더 나은 장비를 만들고 배를 운용하는 것이 더 큰 효과가 나올 것이다. 물론, 그곳에 미군이 들어온다거나 그런 문제는 떠나서 말이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환경과 문화를 더욱 많이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구럼비 바위는.... 그리고 시위대들은.....

 

 그리고 도착한 곳이 우란비(鵝鸞鼻)공원이었다. 컨딩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이라는 우란비는 우리나라같이 파괴하지 않고 대만정부가 공원화 시킨 곳이다. 구럼비와 우란비 이름도 비슷했다. 참 구슬펐다. 대만정부는 이렇게 지키는데, 우리나라는 그저 파괴하려만 들다니......

 

 우란비라는 지명은 그 곳이 코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대만에서 가장 남쪽에 있다는 등대가 있고 대만 영해 기준점이 이곳에 있다.

 

 

 

 

 

 

 

(아름다운 우란비 공원, 나는 과연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우란비 공원은 맨처음 넓은 풀밭이 있고, 그다음 조금 등산을 한다. 가는 도중에는 위의 사진처럼 기암괴석들이 나온다. 그리고 도달하는 바다.. 보다시피 저렇게 보도가 설치되어 해안가를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구럼비 바위가 생각나서 차마 그 광경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속에서 열이 받았고 그것이 살짝 눈물로 나오더라.

 

 

 

 

 

 

 

 

(우란비 등대)

 

우란비 해안가를 거닐고 다시 산으로 올라왔는데 갑자기 너른 풀밭이 펼쳐지고 앞에는 하얀 건물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대만 최남단에 있는 우란비 등대이다. 1882년 청나라에 의해 세워진 우란비 등대는 현재까지도 대만 정부에 의해 직접 운용되고 있었고 건물도 몹시 아름다웠다. 또한 중화민국 영해기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부터 모든 대만의 영해가 정해지는 곳이다. 낮시간에는 등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곳에는 옛날부터 쓰였던 이 등대의 부속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은 너무나도 더웠고, 바깥은 너무나도 햇빛이 강해서 애들은 전부 난간을 붙잡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뛰어난 경치를 조금 더 구경하기 위하여 햇빛으로 장렬히 들어갔다. 우란비 등대에서 조금만 더 가면 위의 사진처럼 바다를 볼 수 있다. 참으로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마치 제주의 성산일출봉을 보는 기분이랄까.

 

 

 

 

 

 

(어우 이 맑은 물을 보라....)

 

 우란비 공원을 나와서 항구로 향했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탈 수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돈이 없어 유람선 까지는 타지 못하고 항구를 구경만 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바다의 색깔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영화에서 보던데로 항구 앞이지만 매우 물이 투명했다.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까지 다 보이더라.. 참...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풍경에 감격했다.

 

 그다음 이동한 곳은 정말 대만의 최남단점이었다. 남단에는 이렇게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가는길이 꽤 험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만의 최남단을 구경하기 위하여 걸어갔다. 우리도 그렇게 걸어갔고, 우리는 드디어 대만의 최남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이런 조형물 밑에서는 이렇게 포즈를 취해주는게 최고지...)

 

너무 햇빛이 강하고 더운 탓에 여자애들이 탈이 나기 시작했다. 하얼빈 사람 쩐웨이(眞維)는 너무 더워선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어지러워하는 일사병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나를 향해서 괜찮다고 웃음을 지어줬지만 글쎄.. 얼굴에는 엄청 힘들다는 것이 나타났다. 다행이도 여행이 끝날때까지 그 증세보다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컨딩 햇빛은 이정도로 세고 덥다. 그러니까 이곳에 갈려는 분들은 일광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하고 가야할 것같다.

 

차를 타고 계속 이동을 하는 중에도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은 많이 나타났다. 기사 형님(편의상 그렇게 하자)은 우리가 환호하거나 신기해 하면 가는 도중에 종종 차를 세워서 사진을 찍게 해주었다.

 

 

 

 

 

(참 경치 좋다.)

 

돌과 흙, 나무, 바다로 이루어진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만큼 자연을 그대로 나두어 그럴 것이다. 강제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이 모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놔둬서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모습 이것이야 말로 미래의 산업이고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독특한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오오 땅에서 불이 나온다 오오)

 

 이곳은 바로 추훠(出火)라 불리는 곳인데 그야말로 땅에서 불이 나온다. 굉장히 신기한 풍경이었다. 뭐 이 밑에 유전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고 이 밑에는 많은 양에 천연가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우기를 제외하고는 지상까지 나있는 틈새로 불이 24시간 계속 나온다고 한다. 이곳 상당히 더웠지만 신기한 풍경에 그야말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참고로 이곳에는 이 불로 달군 달걀을 팔고 있었지만 돈이 없어 먹지는 않았다.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해수욕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여자들과 션은 물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수빈이나 자오이 같은 경우는 바다에 다리만 살짝 담구더라. 그밖에 남자들 (나, 샤오동, 청주에,장쟈오)은 옷 훌렁훌렁 벗고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모두 수영복을 준비해 와서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다만 내 몸매를 마구 보여주고 다닌적이 한국에서는 수영장밖에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나보다 더 한 사람도 웃통을 다 벗고 다녀서 자신 있게 벗을 수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수영을 즐기기에는 상당히 물결이 셌다. 파도가 내 앉은키보다 더 큰 크기로 덮쳐와서 스릴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수영을 즐겼다가는 어휴... 파도의 힘도 상당히 세더라. 멍놓고 있으면 내가 먼바다로 떠밀려 가게 생겼다.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도 없을 뿐더러.. 내 모습이 흉악했던 것일까.. 사진을 한명도 올리지 않았다 흠......-_- 오랜만에 바다와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고 조금 쉰 다음에 다시 컨딩 시내로 나갔다. 여전히 컨딩은 사람이 미어터질정도로 많았다. 주로 수영복과 간편한 옷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고, 속옷가게도 많았는데.. 아주 디자인이......-_-.. 그다음에 주변에 먹을것도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는 상당히 민망한 모양의 핫도그....도 있었고, 한국식 떡볶이도 팔더라.. 그리고 이곳의 특산물인 코코넛을 즉석에서 까서 만든 코코넛은 참으로 시원했다. 그리고 특이하게 태국식 요리집이 많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좀 비싸더라.. 또 한사람당 150원씩은 시켜야한다고 하니.. 참.. 관광지의 횡포는 한국이나 여기나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태국 음식점에서.. 쩐웨이는 몸도 아프고 결정적으로 카메라를 잃어버려 아픈 마음에 이곳에 오지 못했다.)

 

참 이날 술이 많이 땡겼는데, 아무도 술을 먹으려 하지 않더라. 아마 남중국인들이어서 술을 즐기기만 하지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덥고 술도 땡기길래, 나혼자서 술을 엄청 마시고 잠이 들었다. -_-(얘네들 나를 필히 알코홀릭으로 알거야..)

 

마지막날이 밝았다. 마지막날 역시 매우 더운날이었는데, 이번에는 바다가 아니라 산으로 향했다. 컨딩 해안의 뒤에는 아름다운 산이 있는데, 매우 많이 기암괴석들과 자연이 어우러져서 좋은 풍경을 이뤄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무려 4km의 압박에 걸려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국인 2명은 조선의 정신으로 걸어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열차시간이 있어서 그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히치하이킹을 했다. 그런 와중에! 될놈은 역시 되는 것이다! 웬 SUV차량이 섰다. 그리고 타라고 해서 순식간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그분은 여기에서 관광객들을 태우고 여행을 시켜주는 분이신데, 좀 많은 인원이 저러고 있으니 좀 안타까우셨던것 같다. 그리고 미래의 고객이 될 수도 있는거니까..

 

 

 

 

 

 

 

 

 

 

 

 

 

 

(

(

 

재밌었다.)

 

산세는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조선인 두명은 이거 뭐 뛰어서 가겠네 이런 포즈로 앞서 나갔다. 의도된바는 아니었지만 다른 애들이 너무 힘겨워하길래 우리만 남기고 다 뒤로 처져버린 것이었다. 이 공원에는 또 몇가지의 볼 거리가 있었는데, 협곡이 꽤 있었다. 그것도 소협곡과 대협곡. 두 협곡 모두 내가 앞장서서 먼저 나갔다. 소협곡은 할만 했는데, 대협곡은 꽤 길더라. 힘들지는 않았지만 '이거 혹시나 나 다른 곳으로 가는것 아님?' 이런 생각에 긴장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산 정상 쯤에 정자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컨딩의 바다를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사진을 여러장 찍었지만 너무 어둡게 나와서 아쉽게도 여기다가 올릴 수는 없었다. 이곳 탐험을 3시간 정도 한 뒤에 다시 내려왔다. 이번에는 4km를 그냥 걸어 내려와야할 판이었지만. 까짓거 4km 뭐...

 

 

(4km 껌이지 뭐.)

 

여기서도 우리들은 히치하이킹을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고맙게도 몇몇차들이 서더라. 먼저 여자애들을 내려보내고 나와 샤오동, 청주에는 그대로 걷기 시작하였다. 내리막 4km 뭐. 1시간도 안걸릴 거린데 그냥 걸어가면 좋지 뭐 하고 2km정도 걸어갔을때 차 한대가 섰다. 타란다. 우리는 환호하면서 탔다. 중년의 부부인 이분들은 이곳에 관광오셨다가 타이베이로 돌아가시는거라고 했다.. 어휴.. 여기서 타이베이.. 엄청 고생하시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만 사람 청주에가 먼저 얘기를 막 하는데 내 얘기를 꺼냈다. 한국사람인게 밝혀지자마자 아주머니는 한국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드라마를 너무 좋아한다고 나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막 건넸다. 한류의 위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도 가셨다고 하는데, 그중에 경복궁은 참 좋았는데, 남산케이블카가 가장 짜증났다고 하셨다. 왜그러냐고 여쭤봤더니 너무 무서우셨단다.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먼저 떠난 이들과 합류했다.

 

이번 여행은 그저 재밌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체감했고, 다른것보다도 여기처럼 자연 그대로를 이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과 물을 전부 보면서 참으로 재밌었고, 나에게도 매우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나중에 혼자서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그럼 재미없으려나?)

 

(다음 편은 상해여행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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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18 01:03 旅遊記

바로 올려야 하는데 이러저러한 일로 그러지 못하고 한달이 넘은 지금에서야 올린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추억은 살아 있으므로, 여행기를 적기에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대만 징이대학(靜宜大學, 정의대학)에서는 교환학생과 외국학생을 대상으로 대만문화체험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에서 유명한 문화를 손수 체험함으로써 대만에 대해서 더 친근하고 더욱 많이 알게끔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대만 문화를 손수 체험함으로써 대만에 대해 점점 빠져들고 있다. 나도 그렇고 ㅋㅋㅋㅋ

 

이 대만문화체험코스에는 2차례에 걸쳐서 1박 2일간 여행을 간다. 일단 수업의 일환이지만 일단 체험이 우선이므로 여행하는 재미로 이 여행을 가게 된다. 첫번째는 지난번 3월 4일부터 5일까지 다녀왔던 가오슝(高雄) 메이농(美濃)지역의 하카문화 체험과 타이난(臺南) 역사 문화 체험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4월 28일 부터 29일까지 가게 될 이란(宜蘭)지역 전통 예술문화 탐방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여행은 첫번째에 다녀온 하카문화, 타이난 역사문화 탐방이다.

 

사실, 이 여행을 가기 전에 상당히 부담이 됐었다. 토요일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으며, 2월에는 주말마다 가까운 곳이든 먼곳이든 여행을 다녀와서 정말로 힘들었다. 사실, 이 여행을 다녀온 다음에는 기력을 다했는지 며칠동안 몸이 좋지 않기도 했었다.

 

이날 타이중(臺中)시에는 조금씩 비가 와서 으슬으슬 추웠다. 대만의 늦겨울 날씨라는 것이 당연히 한국보다는 온도가 높지만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추위(춥지는 않은데, 공기가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뼈가 시리듯 기분 나쁘게 춥다.....)때문에 한껏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옷도 여러벌 준비를 했고 여러가지로 탄탄하게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한가지 잊고 있던게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남대만임을..-_-

 

중대만 까지는 기후상으로 아열대 기후에 속하고 어느정도 4계절이 남아있지만, 남대만지역은 기후상으로도 열대지역에 속한다. 겨울에도 2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인데, 이때는 오죽 했을까? 타이중에서 가오슝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실 좀 후회를 했다. 왜냐하면 휴게소에 내리니.. 그곳은 해가 비치고 여름 날씨가 펼쳐져 있었기 떄문이다.. 가오슝 메이농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날씨는 습하고 날씨는 매우 따듯했다. 여름이었다.

 

우리가 첫째날 방문한 곳은 메이농이었다. 메이농과 치산(旗山)지역은 예로부터 하카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하카족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원주민들은 아니다. 한족의 한 갈래로써 후한시기에 중원에서 살고 있던 명문가의 자손들이다. 그런데, 한나라가 망하고 삼국시기가 도래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서진시기에 영가의 난이 터져버리면서 이 명문가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남하한다. 그리고 그때의 풍습을 지키고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면서 1200년동안 살아오게 되는데, 바로 그들이 우리가 말하는 하카족이다. 현재도 중국의 푸젠(福建)성, 광둥(廣東)성 등지에 많이 사는데, 이곳에서 살던 하카족들이 명 이후부터 대만에 넘어오게 되면서 지금도 대만의 제 3의 민족으로써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대만의 전 총통인 리덩후이(李燈輝), 현 총통인 마잉주(馬英九)등이 하카인의 피를 물려받았다.

 

처음 간 곳은 하카의 민속촌이었다. 일단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하카 전통 음식점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일본인인 수잔, 그리고 한국인인 나와 수빈이를 제외하고는 홍콩계 스웨덴인인 에미를 빼고는 전부 서양인이었기 때문에 하카족의 전통식단에 대하여 기대반, 우려반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메이농 민속촌의 모습. 보다시피 하카지역의 건물의 모습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하카의 음식)

 위 사진에 보다시피, 하카의 음식은 중국의 음식과는 별 다른 것이 없게 보인다. 그러나, 중국음식보다 적은 기름을 써서 만든 음식들과 자연의 정취를 그대로 표현하려는 것이 하카 음식의 특색이다. 그 중에 가장 독특하게 생각했던 것은 튀김 비슷한 것이었는데, 겉에는 바삭바삭하게 실 모양으로 튀기고, 안에는 분홍색 고구마를 넣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서양 친구들도 다른 음식은 그냥 그랬지만, 이 음식만은 정말 맛있게 뚝딱 해치웠다.

 

 식사를 마치고 찻집으로 이동을 했다. 찻집은 식당의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맑은 차를 파는 곳이 아니라 하카의 전통차인 밀차를 만드는 곳이었다. 밀차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는데,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차였다. 이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절구와 공이 그리고 각종 곡물이 필요한데, 각종 곡물을 절구에 넣고 갈아서 만든 분말로 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러한 차를 마셔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매우 신기해 했다.

 

 

(이것이 바로 밀차의 준비물, 각종 곡물과 콩가루가 준비가 되어 있고 절구, 공이등이 준비되어 있다.)

 

 

 

 

 

 

(준비가 되었으면 저렇게 공이를 원을 그리며 갈아주면 된다. 가는거 무쟈게 재밌다. 사진 위에서부터 위진, 그다음 내가 미친듯이 가는 모습)

 

 나는 예스퍼와 함께 켈리의 3남매를 돌보면서 밀차를 만들었는데, 애들이 엄청나게 좋아했다. 역시 애들이어서 그런지 갈다가 손대서 먹다가 갈다가 손대서 먹다가... 아마 어른이 그랬으면 나한테 한소리 들었을텐데, 귀여워서 그냥 두었다. (그러다가 밀차 분말 다 없어질 듯) 어쨌든 여러사람의 노력으로 분말을 곱게 갈아서 각자 마련된 컵에 넣었다. 여기서 기호에 따라서 찬물이나 더운물을 넣어도 되고, 설탕을 넣어도 된다더라.

 

 

(짜잔! 그렇게 만든 밀차다. 근데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이다....)

 

이윽고 밀차가 만들어졌고, 나는 그것을 시식하기에 이른다. 근데, 어디서 많이 맛보던 맛이지 않은가? 바로 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던게 있었으니. 바로 그것은 우리나라의 미숫가루였다. 옛날에 더운 여름날에 어머니가 얼음 동동 띄워서 만들어주시던 시원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그 미숫가루와 같았다. 하지만 쌀을 튀겨서 만든 튀밥을 차에 동동 띄우고 더운물로 먹는 이 밀차는 좀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애들 장난을 받아주다가 이윽고 이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나와 버스를 타고 메이농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찻집 앞에 이것이 있더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펌프로 노는 우리 켈리네 3남매)

 

바로 펌프였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펌프에 신기해 했고, 다른 서양인들도 매우 신기해 했다. 사진처럼 우리 귀여운 켈리네 3남매는 말할것도 없다. 옷 젖어가는지 모르고 놀더라.

 

그래서..

 

 

 

나도 이러고 놀았다.......(진정하세요 아저씨....)

 

다음 볼 곳인 메이농 마을을 보기 전에 가이드와 합류를 하였다. 가이드분은 나이드신 하카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메이농지역 토박이 이시며, 정년퇴임을 하시고 관광객을 위해서 가이드를 하시고 계시는 거였다. 젊은 우리들도 습하고 더운 날씨에 헉헉 댔는데, 이 할아버지는 매우 정정하고 당당하게 우리를 이끌고 돌아다니셨다.

 

 

(친절하신 가이드 할아버지. 원래 이렇게 생기신 분은 아닌데.. 사진이 참.... 죄송해요 할아버지 ㅠㅠ)

 

맨 처음 방문한 곳은 하카의 전통 사당이었다. 대만에는 어디서든지 사당을 볼 수 있다. 신의 종류도 많아서 불교 사당도 있고, 도교 사당도 있고, 마조여신의 사당도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족들의 평안을 빌곤 하는데, 하카인들도 역시 자신들의 사당을 지어놓고 신을 모셔놓았다.

 

 

 

 

(사당의 모습, 사당은 이렇게 큰 나무 아래에 모셔져 있다.)

 

갔을때는 아무도 없어 한적한 모습이었지만, 마을 축제가 있을 때는 여기가 중심이 되어 가장 왁자지껄 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신을 모셔놓은 신주는 큰 나무 아래에 있었다. 세계 어디든 큰 나무는 어디서든지 신으로 존경을 받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도 서낭당이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뭔가 재밌는 것을 꺼내셨는데...

 

 

(바로 이거.)

 

반달 모양의 빨간 뿔이었다. 이것은 운세를 점치는 하나의 도구인데, 신년이나 이럴때 이것으로 한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개인이 와서 고민이나 바라는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이용하여 점을 친다고 한다. 점을 치는 방법은 이러하다. 1. 자신의 소원을 빈다. 2. 저 뿔을 윷던지듯 바닥에 던진다. 3. 그럼 점이 나온다. (웬지 허무하다...-_-)  떨어진 저 뿔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 매우 좋은 운수이고 반대방향을 보고 있으면 매우 안좋은 점괘란다. 그리고 모두 한방향을 보고 있으면 그저 그런 운세라고 한다.

 

사당을 구경하고 나서 메이농요(美濃窯)에 갔다. 메이농 지방은 예로부터 흙이 좋아서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메이농의 가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메이농요이다. 지금은 상업적으로 바뀌어서 이곳에서 도자기를 손으로 직접 만들어 대량 생산을 하고, 이곳의 사장님은 대만에서 알아주는 도예가라 하신다. 메이농의 주요 관광코스로 꼽힐 만큼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메이농요는 대문부터 이렇게 꽃이 많았다. 매우 아름다웠다.)

 

 

 

 

(참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많이 있었다. 담벼락도 전부 도자기로 만들었다.)

 

들어가니 주인장이 만든 도자기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곳 사장님은 대만에서 엄청 유명한 도예가여서 대만 주요 공공시설의 테라코타와 작품들을 이 분이 많이 만드셨다고 한다. 메이농 전통의 방식 그대로 말이다. 가장 대단했던건 10m정도되는 작품을 직접 구워서 혼자서 다만드셨다고.. 참 대단하시다. 도자기도 팔았는데 참 예쁜게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것은 찻잔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사지는 못했다.

 

하카특유의 문화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종이 우산이 아닐까 싶다. 종이로 만든 우산이라.. 참으로 희한하게 여겨지겠지만, 종이로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한지로 우산을 만들 수 있더라. 이곳 대만에는 하카어로 만드는 하카텔레비전이 있는데, 거기 마스코트가 종이우산일 정도로 종이우산은 하카인들의 예술품이고 자부심이고 마스코트였다. 우선 종이우산을 구경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통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카의 전통집이다. 처음부터 집의 중심인 사당에 들어가기까지의 모습이다.)

 

하카의 전통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의 집보다 상당히 화려했다. 지붕부터 저렇게 장식이 많아 상당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빨간색을 많이 써서 그 화려함이 더욱 부가되었다. 그리고 하카의 전통집은 저렇게 한 가족의 집이 아니라 집 가운데에 사당을 두고서 주변에 많은 가족들이 몰려사는 공간이었다. 일종의 그시기의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마도 집안 사당에는 조상님을 모셔두고 있는 것을 보아 같은 씨족이 살고 있지 않나 싶었다. 지금도 역시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당을 지나고 나니 드디어 전통우산을 만드는 공방에 도착했다.

 

 

 

 

 

(하카인들의 종이우산. 예쁘다.)

 

하카인들의 종이우산은 은은한 단아함이 있었다. 모든 우산에는 저렇게 예쁜 그림이 있었는데, 한층 멋을 살려주었다. 우산 공방에는 우산을 만들고 있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직접 사모님이 우산을 손수 만들고 계시더라. 비가 많은 이 메이농지역에서 우산은 필요 물품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많이 나는 대나무와 손쉽게 만들 수 있었던 종이로 저렇게 우산을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이 우산을 만드시는 모습)

 

 하카인들의 전통종이우산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일단 좋은 대나무를 구해 저렇게 쪽을 나눈 다음에 말린다, 다 마르면 저렇게 살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몇겹 붙인다. 그리고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우산의 대와 대를 엄청나게 튼튼하게 실로 연결한다. 그리고 종이 위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나 글을 적는다. 그리고 바로 쓰면 비올때 비가 다 새버리겠지. 여기서 특별한 과정이 들어간다. 며칠에 걸쳐서 우산에 종이부분에 기름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저렇게 하면 물이 종이를 뚫고 지나가지 못할 뿐더러 몇겹으로 겹쳐져 있는 종이가 더욱 튼튼해져서 마치 플라스틱 처럼 변한다. 그리고, 이 그림이 더욱 고풍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카인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우산을 하카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우리는 조그마한 종이인형과 종이우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만든 종이인형)

 

나는 원래 손재주가 정말 없는 놈이라 뭘 만드는 것을 잘못하는데, 이 종이인형은 숙소 주인 아주머니의 영도에 따라서 정말 예쁘게 만들어졌다. 저렇게 만들어서 책갈피로 쓸 수 있었다. 원래 이것은 하카의 전통 방법인데, 하카스타일로 만들기는 좀 어렵다고.. 일본스타일의 인형을 만들었다.. 어쨌든 참 예쁘게 된듯?

 

그다음 종이우산 만들기였다. 뭐 별것은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우산에 그저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그리기를 정말로 못하기에 -_-; 또 희대의 역작이 하나 나와버리고야 말았다.

 

 

 

 

 

 

(포즈는 뭔가 하나 나올 분위기인데...... 참..... -_-)

 

여자애들은 되게 예쁘게 잘 만들더라.. 그러나 나는 ㄱ-.... 이 우산은 바로 주인 아주머니가 기름을 바르고 말려서 다음날 상자에 넣어주셨다. 비록 전통방식을 아주 약간 따라하긴 했지만, 매우 재밌었던 활동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해결하고 메이농을 떠나야 했다. 바로 역사도시 타이난에 가기 위해서이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해서 알 수 없었는데, 숙소의 아침은 매우 아름다웠다.

 

 

 

 

 

 

 

(예술인의 집, 인자산장)

 

이 풍경을 보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하였고, 덥지만 않으면 정말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하여 타이난에 도착하였다. 타이난은 현재 대만의 제 4의 도시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구정도 되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대만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역사에 기록되기 이전에도 원주민들이 살아왔지만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6c때이다. 바로 네덜란드인이 이 곳 타이난에 와서 질란디아라는 식민지를 세우고 개척했다. 그들보다 조금 늦게 스페인 인들이 타이베이 근교에 상륙하여 그곳에 또 식민지를 세웠다. 바로 네덜란드인들이 이곳을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의 Formosa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대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타이난에서는 여러가지 역사 고적들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타이난 문묘(臺南文廟)와 옛 네덜란드 총독부였던 안평고보(安平古堡)를 가기로 하였다.

 

 

 

 

 

(타이난 문묘. 맨 마지막은 영정사진이 아닙니다. -_-)

 

 타이난이 가장 오래된 도시 답게, 이 곳에도 가장 오래된 문묘가 있다. 문묘란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우리로 따지면 서원이나 향교정도 되겠다. 이곳에서 제사 뿐만 아니라 교육도 담당했으니까.. 공원처럼 꾸며진 문묘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엄숙한 사당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앞에서 운동하고 재밌게 노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공자님도 엄숙함 보다는 이런 자유로운 모습을 좋아하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곳이 얼마나 유명한지 우리가 갔을 때, TV프로그램에서 촬영을 와있었다. 나는 뭐 변장한 사람이 돌아다니길래 그냥 옛모습을 재현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무슨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것 같았다. 조금 그들을 구경하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문묘 길 건너에는 문묘노가라고 해서 오래된 야시장이 있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아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듯 싶었다.

 

 두번째 간 곳은 안평고보였다.

 

 

 

 

 

 

 

 

안평고보는 대만인들에게 역사의 공간이자 자부심의 공간이다. 이곳에 1624년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와 질란디아라는 총독부를 세우고 대만 남부를 다스렸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항구로써의 기능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대륙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정성공이라는 인물이 복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대륙에서의 세력을 잃고 대만으로 들어왔다. 정성공은 165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본거지인 안평고보를 치열한 전투끝에 차지하고 네덜란드인을 몰아냈고, 이곳에서 정씨왕국을 세우게 된다. (얼마 못가서 청나라가 들어오긴 하지만) 지금도 대만의 많은 길 이름이 성공로 이며, 성공구도 있고 심지어 국립성공대학까지 있을 정도로 정성공이 대만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정성공의 동상 밑에 민족영웅이라고 불리고 있고, 지금 현재까지도 국성야(國姓爺)라는 별칭으로 국부로써 추앙받는다. 이곳에는 당시의 유물들과 허물어진 서양식의 성벽 그 다음에 당시 네덜란드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들이 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이곳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 매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었다.

 

안평고보 앞에는 시장이 있는데, 참으로 복잡하고 맛있는것도 많이 팔았다. 약 2시간정도의 자유시간을 갖게된 우리는 서로 흩어져서 안평고보 근방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나는 혼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안평고보에서 얼마 안떨어진 천후궁에는 엄청난 수의 신자들이 몰려들었고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려서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다. (비하의 의미가 아님)

 

 

 

 

 

 

 

 

(안평고보 근처의 볼거리, 안평천후궁, 안평성당, 안평 옛 성터 그다음 수많은 묘지들)

 

안평고보는 또 천주교가 대만에 맨 처음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성당과 함께 천주교 기념관이 있다. 천주교 기념관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성당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기도도 하고 신부님도 만나서 차도 한잔 하였다. 또 안평고보 근처에는 옛 성벽과 포대가 남아 있는데, 그 양식이 동양식이 아니라 서양식의 모습으로 남아있어서 매우 신기하였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것은 수많은 묘지들이었다. 그것도 안평 성당 앞에 엄청난 숫자의 묘지들이 있었는데,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까지 묻힌 묘지라고 한다. 시내에 저렇게 묘지가 있는 것을 봐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연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이번 여행을 하고 나서 참 재미 있었고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있었다. 뭐랄까 시간에 쫓겨서 돌아다닌다는 기분이 들었고 체험도, 역사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그 점이 아쉬웠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참 짧은 시간이지. 그래서 시간이 나면 타이난이나 메이농을 다시한번 와보려고 한다. 그때 다시 기분이 좋았다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은 대만의 최남단 컨딩 여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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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27 01:06 旅遊記

 드디어 날이 밝았다!! 샤오동이 11시에 체크아웃이라고 해서 10시쯤에 일어나도 될것 같았지만, 8시 쯤에 눈이 떠졌고, 살며시 눈을 뜨고 보니 여자애들은 씻느라 동분서주하더라. 남자애들은 아직도 안일어난 상태이고..
 
 바깥을 보니 어제 보았던 야경은 사라지고 루깡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루깡의 모습, 전형적인 시골 읍내 모습이다.)

 지금 루깡은 저렇게 쇠락한 시골동네 같지만 1900년 초만 하더라도 인구 10만이 살던, 대만 제2의 도시였다. 바다와 가깝고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하천이 루깡의 중심으로 들어와서 굉장한 상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때 대만을 루깡을 중심으로 루깡 북쪽을 샹깡(上港), 루깡의 남쪽을 샤깡(下港)이라고 했을 정도니 당시 루깡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철도를 개설하면서 당시 대도시였던 루깡을 비껴가게 했는데, 이 결과로 루깡은 쇠락하게 되었다. 대신, 뜬 곳이 타이중이다. (웬지... 우리나라로 보자면 대전과 공주를 보는 느낌이다..) 지금 현재, 대만의 민속문화를 가장 잘 보존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루깡을 찾는다고 한다.

 씻고 와보니 남자애들도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빈이 말로는 나의 우렁찬 코고는 소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설쳤다고... 나는 배려한다고 굉장히 늦게 잤는데.. ㅠㅠ 코골이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나...

 모두 준비를 끝내고 10시 쯤에 호텔을 나왔다. 알고보니 이호텔 이 근방에서는 가장 유명한 호텔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묵고, 루깡에서 가장 유명한 천후궁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많은 조형물들이 있었고, 로비도 저렇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서 한컷.)

 먼저 밥을 먹으러 루깡 거리를 돌아다녔다. 토스트집에 들렀는데, 많은 사람들은 토스트와 전병을 시켜서 먹었다. 나는 어제 먹었던 밥이 소화도 안되고 토스트를 좋아하지 않아 간결하게 녹차만 먹었다. 그후에 루깡의 최고 명물인 천후궁을 관광하러 갔다. 천후궁에는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있었고 그 앞에는 폭죽을 마구 터뜨려서 화약냄새와 연기 그리고 전통음악, 그리고 가면행렬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중국 혹은 대만의 폭죽 소리를 처음 들었기 때문에 마치 테러현장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사진만 봐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보면 바닥에 붉은것이 막 흩어져 있는데, 폭죽을 쌌던 종이다. 그리고 간혹 뿌연 사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폭죽을 터뜨린 연기이다.. 그래도 대만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재밌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천후궁 앞의 화려한 등불, 음악 그리고 가면, 폭죽 등으로 악귀를 내쫓고 한해의 풍어와 재복을 빈다.)



 

(분위기를 더욱 느끼고 싶으신 분은 동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후궁은 어부들의 수호신인 마조여신을 모셔놓은 사당이다. 이 마조여신은 전설에 의하면 10c경의 푸젠성에 살던 한 아가씨였는데, 승천하여 선원들의 여신이 되었고 특히 해상구조등에서 특별한 영력을 펼쳤다고 한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마조여신을 천후로 봉했고 그 이후 그녀의 사당은 천후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마조여신은 농사를 많이 짓던 북쪽지역보다는 바다를 끼고 있던 남쪽지역에서 더 많이 추앙받았는데, 현재도 중국 대륙 남부의 연해,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까지 넓게 추앙받는다고 한다. 루깡의 천후궁은 대만에서는 가장 오래된 천후궁이며 그리고 가장 유명한 천후궁이라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사당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오오.. 경건하다..)

들어가자마자 큰 향로가 하나 있었다. 자유롭게 금액을 시주하고 향을 받아서 불을 붙이고 저렇게 향로에 넣는다. 중앙에 있는 향로는 보다시피 매우 크고 첫번째 향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저 향로에 먼저 절을 하고 향을 분향한다. 그리고 꽃는게 아니라 밑으로 던지더라.

(저 가운데 계신 분이 마조여신이다.)

(애정을 관장한다는 신)



(천후궁 가운데에는 저렇게 분수가 있는데 용의 입에 동전을 넣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경건하게 참배하는 대만인들)

(붉은 등불들)

 바깥도 시끄럽고 경내도 약간은 시끄러웠지만, 대만인들의 참배는 굉장히 성스러웠다. 향을 들고 연속적으로 허리를 굽히는 절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이 사람들의 각각의 소원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천후궁 구경을 하고 본격적으로 루깡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루깡의 거리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런정도의 거리를 굳이 비교하자면 아마 서울의 명동이나 대구의 동성로 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만 등불축제와 겹쳐서 사람들은 더욱 많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거리마다 용모양으로 된 등불이 많이 걸려 있었다.


 약 3km정도를 걸어다녔는데, 용모양의 등불은 저렇게 계속 이어져 있더라. 오오.. 정말 대단했다. 중국아이들도 이러한 광경은 처음 보았는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리에는 맛있는 음식도 되게 많았다. 갖가지 음식이 많았는데, 특히 이 루깡은 만두가 유명하다고 한다. 일부 만두집 앞에는 사람들이 무쟈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 많은 인파를 뚫고 가던 중에 루깡민속전시관에 들렀다. 샤오동과 스티븐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지 다른 곳으로 갔고 우리들은 이 루깡민속전시관에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려고 하려 했는데, 우리 이쁜 발레리아가 자기가 수빈이와 나의 입장료를 내겠다고 하였다. 땡큐 발레리아!! 하니 특유의 귀여운 표정으로 웰컴을 외친다.

(루깡 민속문물전시관 내부)
길거리에 있던 민속전시관이 매우 후줄근하게 생겼길래 별기대 안하고 들어갔으나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건물이 고풍스럽길래 놀랐다. 내부에 있는 민속유물들도 굉장히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청천백일만지홍기)


(기념으로 2컷 찍었다-_-)




 


 

(이런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었다.)


신나게 관람을 하였다. 사실 민속문물에 대한 관심 보다는 루깡의 역사가 더 끌렸고, 참고로 이 전시관의 구조가 더욱 관심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 곳은 원래 어떤 분의 저택이었다. 이 분은 원래 루깡의 민속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루깡의 민속문물을 수집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 공로로 리덩후이(李登輝)총통에게 표창을 받았고, 돌아가실때 자신의 집을 민속문물전시관으로 만들라고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한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민속 전시관의 관람을 끝마친뒤 우리는 롱샨사(龍山寺)로 향했다. 아까 천후궁은 마조여신의 사당이라면 롱샨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불교 사찰이다. 루깡에는 이와같이 사찰이나 사당들이 굉장히 많은데, 앞서 말했다시피 이 곳이 대도시 였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징표인 것이다.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된 사찰이었다. 목조건물의 단청이 다 떨어져 나갈정도의 건물들이었지만 사람들도 많았으며, 그 나름대로의 풍미도 있었다. 또 절의 구조 또한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은 신발을 벗고 마루로 들어가야 하지만, 대만의 절들은 그대로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아마도 우리는 그야말로 몸 전체를 이용하는 절을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허리를 간략하게 계속 굽히는 절을 하는 모양이라서 그런 듯 하다. 이곳도 등불축제의 하나의 코스로 이용되어서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고, 커다란 홍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로 모유항(摸乳巷)이라는 불순한 이름의 거리에 들렀다. 모유(母乳)가 아니라 모유(摸乳)다. 이 이름의 유래가 이렇다. 길의 너비가 매우 좁아서 두사람이 지나가면 서로의 가슴을 만질 수밖에 없다는(;;;;;;;;)것에서 유래한다. 이곳은 최근에 생긴 길이 아니라 루깡이 예전에 번성할 때부터 있었고, 지금은 역사도 있지만 그 이름 때문인지 관광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길이다.


 정말 좁았다. 내가 들어가니 내 덩치에 길 너비가 딱 맞더라. 다른방향 출구에서 사람이 들어온다면 불가피하게 가슴을 만져야하는... 그러한 상황이 올만한 장소였다.

 모유항 탐방까지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엄청 걸어다녀서 조금은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대만의 민속문화를 체험하고 눈과 입이 호강함으로써 매우 좋았던 나의 첫번째 대만 여행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와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등불축제때 보다도 음력 3월 23일 마조여신 탄신일 때는 진짜 엄청나다고 하니 나중에 한번 다시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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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26 02:05 旅遊記

 어디를 가든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은 매우 설레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이번 여행이 이렇게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대만에 와서 어디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생각일 뿐이지 직접 실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볼때 나는 타이베이의 단수이를 갔으면 좋겠어, 핑동현의 섬의 끝을 갔으면 좋겠어, 이란현의 원주민을 직접 만나봤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은 힘든 것이다.

 이때 나에게 가자!라고 선뜻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교환학생으로 온 대륙 중국 교환학생들이었다. 나보다 무려 4살이나 어린 루샤오동은 충분히 리더기질을 가지고 있다. 많은 대륙 교환학생들이 그를 좋아했고 그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몇몇 교환학생들과 함께 2.28연휴를 맞아서 타이베이에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샤오동은 한국인 교환학생인 나와 수빈이에게 루깡(鹿港)에 등불 축제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고 우리는 좋다고 호응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2월 18일 ~ 19일로 제안되었지만 2월 18일에 국제교류처에서 가는 테마파크 관광이 자리잡고 있어서 2월 19일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정작 2월 18일, 테마파크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학교에 돌아가는데로 출발하겠다. 이런 통보를 받았다. 사실 조금 기분은 살짝 나빴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런기분이 사라졌다. 도착 후 30분 만에 모든 짐을 싸고 7시 30분에 학교 교문에 모였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 대만 타이베이가 고향이고 학교에서 대만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째즈(Jazz, 중국이름으로 말해도 째즈다. 남자다.), 이번 여행의 주관자인 상하이 출신의 루샤오동, 린션(영어이름은 스티븐이다. 앞으로 스티븐으로 표기), 나와 수빈이의 무한사랑을 받고 있는 하얼빈 출신의 바이전웨이(영어이름은 발레리아다. 앞으로 발레리아로 표기. 굉장히 귀여운 여자애다.) 등 총 12명의 인원들이 모여서 루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째즈를 제외하고는  전부 교환학생이었는데, 반수의 인원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어서 당황하였다.


 학교 앞에서 다쟈(大甲)로 가는 버스 168번을 타고 샤루(沙鹿)역에 도착했다. 학교가 샤루에 위치를 하여 버스를 타고 약 10분 정도 걸렸다. 2010년 12월 25일에 타이중시와 현이 합쳐져서 직할시가 되기 이전까지 샤루는 샤루진이었고 타이중현에 속해 있었다. 우리로 따지면 읍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이게 직할시가 되면서 갑자기 광역시의 구가 되었다. 그래선지 샤루구의 중심가에 있는 샤루역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샤루역 내부의 요금표와 스케쥴을 알려주는 알림판)

 우리는 20시 17분에 도착하는 가오슝(高雄)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그 동안 사진도 찍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특히 특유의 친화력의 샤오동은 역장님과 빨리 친해져서 역장님께서 우리 단체사진을 찍어주실 정도였다. (이 사진을 샤오동이 올리지 않았다. 혼자 간직할 예정인가..)

(곧 우리가 갈 열차가 도착합니다.)

 

(우리를 태우고 떠날 갸오슝행 열차)

 우리가 가는 장소인 장화(彰化)역은 그다지 멀지 않아서 샤루에서 기차를 타면 약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가는 동안 옆에 앉았던 쟈피로(중국어로는 파이멍리엔, 아주 얌전한 여자애다. 중국에서도 스페인어를 전공하여 이곳 대만에서도 스페인어를 전공한다고.. 저 이름도 스페인이름이란다.)와 친해질 수 있었다.

(또.. 기차에서 이렇게 셀카를 작렬하며 혼자 놀기도 하였다..)

(샤루역이 읍소재지의 역이었다면 장화역은 군소재지의 역이었다. 더사람이 많고 번화했다.)

 드디어 장화역에 도착하였다. 사람이 많아 조금은 적응이 안됐지만 이 곳이 현 소재지의 역이었고 그다음 대만 등불축제의 막날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역에서 루깡으로 들어가는 무료셔틀버스가 운행시각이 끝나서 타지 못했고, 이 곳에서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이조차 조금은 버거웠다. 물론, 추진력 강한 샤오동과 대만사람 째즈의 역량으로 우리는 3대의 택시에 나눠타고 루깡으로 향할 수 있었다.

 택시에 오르기 직전 굉장히 신기한 것을 보았는데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다. 1월 14일에 대만에서는 대선과 총선이 함께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거날 모든 후보자들의 홍보물을 떼어버리는데, 대만은 선거가 끝난지 한달이 지났지만 저렇게 빌딩에 후보사진을 걸어놓았다. 첫번째는 민진당의 총통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이며, 두번째는 국민당의 총통후보이자 총통에 재선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다.

 이러한 풍경을 하고 나는 택시에 올랐다. 나는 6인용 택시에 탔는데, 그것도 신기하더라. 째즈와 샤오동은 풍만한 기사아저씨에게 루깡에서 뭐가 볼만한가 맛있는가에 대해 계속 물어보았다. 약 20분 정도 가자 우리의 목적지인 루깡이 나왔다. 대만 등불축제가 국가적인 행사인데다가 루깡 자체가 대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말 미어터지듯이 많았다. 

 잠시 맥도날드에서 화장실도 갈겸 쉬고 있었는데, 중국 애들이 자신의 이름이 한국어로 뭔지 계속 물어보더라. 그래서 수빈이와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중에 하나 재밌는 것이 있었는데, 스티븐의 이름이었다. 스티븐의 이름을 한국어로 그대로 풀면........ 임신......... 스티븐은 그 소리를 듣고 좌절하였다. 나와 수빈이 그리고 발레리아는 스티븐의 절망한 표정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ㅋㅋㅋ


맥도날드를 벗어나 본격적인 루깡의 거리에 들어서니.. 이렇게 휘향찬란한 등불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각종 주제에 따라서 진열된 각종 등불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 등불들을 전문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각 학교, 회사, 동호회에서 만들어서 전시한것이 신기했다.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잘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특징이 그대로 보여져 재미 있었다.

 더 들어가니 등불 축제의 메인 행사장이 있었다. 행사장 중앙에는 시간이 되면 등불로 장식된 용이 360도로 돌면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메인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바로 불이 켜지며 그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우와아아앙!!! 나는 용이당!!!!)

 사진으로 보니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지만, 굉장히 웅장한 음악과 주변의 조명효과 이렇게 다양한 색의 등불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다. 우리들은 때로는 환호하면서 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영상을 찍었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사진만 찍은 것이 아쉽다.

(수많은 인파들과 대만등회라고 쓰여진 네온사인.. 그 규모만 봐도 대충 축제가 어땠는지 알만하다.)

 

이것까지 봤을 때, 나는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걍 등불 축제인갑네.. 이정도.. 움직이는 용에서 다른 곳을 가기 위해 뒤돌아서니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나의 시선을 끌게 했다.


 조롱박 모양의 등불이 보다시피 수천개가 거리에 달려있었다. 중국에서는 조롱박이 복을 불러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새해에 열리는 대만등회에서 많은 복을 담아가라는 의미인듯 하다. 그래서 마지막 사진의 조롱박 모양의 문 이름 또한 복임문(福臨門, 복이 임하는 문)이다. 이곳에 온 많은 관광객들은 이 조롱박 모양의 등불에 매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발레리아와 함께... 어우.. 머리와 주먹 크기차이가....)


 복임문 밖을 나와 보니 중국의 전통거리를 묘사한 등불이 우리 앞을 막았다. 참 아름답게 만들어 놨더라. 봤더니 중국 남경시에서 친교의 목적으로 설치해 줬던 것이었다. 남경의 부자묘거리를 묘사해 놨다. 사실 나 고2 말엽에 장학퀴즈 4승선물로 한-중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갔던 곳 중 한 곳이 남경의 부자묘 거리였다. 그 곳에서의 추억 그리고 당시 캠프의 추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오묘했다.

(오오.. 아름답다.. 오오..)

이 외에도 흩어져서 우리는 더 많은 등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등불들..)

앵그리버드와 같은 게임 캐릭터 주제의 등불도 있었고 원피스, 스펀지밥등의 만화캐릭터 그 외에도 많은 주제를 담은 등불들이 휘향찬란하게 켜져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개념없이 사진도 막 찍었다.. ㄷㄷ)

 구경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11시였다. 하지만 등불과 야시장 때문인지 거리는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한국의 유흥가도 이 시간에는 불야성이지만 진짜 이렇게 온 가족들이 연인들이 부부가 아이들이 친구들이 이렇게 모두 어우러져서 이 시간까지 있는 경우는 한국에서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배도 고프고 하여 일행들은 야시장에 가서 구경을 하며 끼니를 때우기로 하였다.

(불야성인 야시장의 풍경)

 우리는 중국인들이 '아침'에 많이 먹는 여우자오를 먹기로 했다. 이건 원래 밀가루를 길게 만들어 기름에 튀겨서 두장국에 찍어먹는 것으로 이것을 먹으면 배가 든든하더라. 여기는 두장국이 아니라 행인차라고 하는 것을 먹는데 맛이 참 오묘했다. 맛은 있는것은 같은데 음..... 뭔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맛이.......-_-.. 수빈이는 맛이 이상하다고 전부 나한테 넘겨버려 결국 내가 다 먹어버리고야 말았다. 배 엄청 부르더라.

 식사를 대강 마치고 우리는 루깡 거리로 들어섰다. 시간은 12시로 향해 가는데.. 거리는 여전히 불야성이었다. 조금 피곤하여 아 자러가는구나.. 라는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기분이 순간 좋아지길래..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바로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갑자기 그 노래가 흥얼 거리면서 나오더라..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한국인 수빈이는 갑자기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의 고성방가를 시전하였다..-_- 그런데 샤오동은 우리를 데리고 다시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식당에는 사람이 여전히 많더라 ㄷㄷ.. 이 시각이면 우리는 먹는 시간이 아니라 자는 시간인데.. 아이들까지 이 늦은 시각까지 무언가를 먹는 것을 보고서 컬쳐쇼크를 받은 듯 하였다. 

 

(사람 가득한 식당과 주문을 기다리는 우리들)

샤오동과 째즈가 왔다갔다 거리면서 무언가를 막 시키길래 대체 무언가... 했더니.. 메뉴는 이러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이건 뭐 케이크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지.. 이런 생각을 하였는데 먹어보니 굴전과 굴탕이었다. 예로부터 이 루깡지역은 굴이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중국식 굴전과 굴탕은 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맛있었다. 즉석으로 만들어진 굴전은 입에 닿는 순간 향과 함께 사르르 녹았고 굴탕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더해져 맛있었다.. 다만 아까 먹은 행인차와 그 여우자오때문에 배가 많이 부르더라 ㅠㅠ

 모든 일정이 끝나고 천후궁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고급적인 호텔방에서 묵을 수는 없었다. 군대식으로 정렬된 18인실에서 묵었다. 편의상 왼쪽은 여자들이 오른쪽은 남자들이 썼는데.. 남자는 나, 스티븐, 샤오동, 째즈 4명이었기 때문에 두명은 2층에서 두명은 아래에서 매우 넓게 쓸 수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본 루깡의 모습)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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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