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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5 01:16 오늘의 일기

1. 목이 한쪽만 상당히 부었다. 그래서 굉장히 아팠다. 열도나고.. 지금은 그나마 많이 가라앉았는데.. 그래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1시 못되서 자리에 누웠고 잠을 잤는데, 계속 목이 아프고 더워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좀 끔찍한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니 새벽 5시더라. 근데 목도 굉장히 아프고 가슴까지 아파와서 '아 이렇게 계속 누워있다가는 진짜 죽겠구나.'싶어 일어나 책상에 내려왔다. 몸은 계속 좋지 않았지만, 잠도 오지 않아서 7시 40분까지 중용 책을 좀 읽고 인터넷 서핑을 하였다.

 

2. 트위터를 하는 중에 혜민스님이 새벽부터 남기신 글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내가 별로라는 사람에게 집착해서 어떻게든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보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요. 놓아주세요. 그러면 또 다른 인연이 어느 순간 만들어져요."

다 아는 사실인데, 실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마도 내가 대만 교환학생 생활에서 이따금씩 힘들어하는 것은 다 내가 차지하려는 집착과 소유감이 아닐까 싶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나를 부담스러워 하게 되는 거겠지. 집착을 줄이는 버릇을 키워야겠다.

 

3. 어쨌든 그래서 대만 영화 수업에서는 2시간 동안 내내 미친듯이 졸았다. 하지만 개발새발 영문법으로 쓴 레폿은 15점 만점에 15점. 아오. 좀 죄송했다.

 

4. 전각 수업이 다다음주면 종강이다. 그 다음주가 졸업주고, 이 수업이 4학년 수업이라 일찍 끝나게 되는 것이다. 참 재밌는 수업이었는데.... ㅠㅠ

 

5. 천충웨이 형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개하고 고양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뭐 우리집은 개를 4마리를 키우니까.. 그것에 대해서 얘기해 줬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마지막으로 개고기 먹어봤냐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먹어봤다고 했다. 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보는 눈빛이 참 ㅇㅇ..... 선생님까지도 놀라신듯. 대만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개고기 먹어봤다고 그런 눈빛 안했으면 좋겠다. 왜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알면 그렇게 쳐다 못볼텐데.. 그리고 개고기 먹어본지 3년정도 됐다. 군대에서 신부님께 어느 신도가 한상 차려오셔서 옆에 앉아서 그냥 몇점 주워먹었던것 뿐. 왜이래. 가카는 맨날 드셨는데.

 

6. 운동하러 갔는데 런닝머신에 올라간지 3분만에 정전이 됐다. 아마도 전력을 많이 써서 그러는듯. 체육관과 인접한 남자기숙사까지 정전이 되었다. 아우. 금새 회복이 안될것 같길래, 그냥 올라왔다. 그리고 땀 뻘뻘 흘리며 아까 못잔 잠을 한 1시간 정도 잤다. 전기는 3시간이 지난 6시 30분쯤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오늘 운동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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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5/11 22:17 오늘의 일기

1. 남들은 불금이나 나는 그저 피곤해서 축쳐져 있는 날일 뿐이다.

 

2. 얼마전부터 학교 체육관에 있는 헬스클럽과 수영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다 알다시피 나는 운동을 '살 뺄'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렇게 다시 운동을 열심히 시작하는 이유는 건강에 또 이상이 와서겠지. 뭐 심각한 이상이 왔다기 보다는 그냥 더우니까 몸이 쳐져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말아라. 하루에 헬스클럽에서 2시간, 수영장에서 1시간 운동을 하니 그야말로 몸이 개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굉장히 신식 시설을 매우 싼값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듯 하다. 한학기에 500달러 (약 20,000원)이니 좋지 않은가? 근데 가톨릭대학 휘트니스센터는 비용 얼마나 하는지? 이 글 보는 가톨릭대학생들은 좀 댓글로 남겨주시길.

 

3. 5월 26일에 시험보러 타이난에 간다. TOCFL이라는 어디선가 많이 본 시험인데, 토플은 아니고 화어문능력시험이라는 HSK의 대만판이라고 보면 되겠다. 화어중심 왕선생님께서 말하기 대회에 나가지 않은 나에게 자네는 말하기 능력은 좀 떨어져도(ㅜㅜ) 나머지 능력은 반에서 1등이니 가서 평가를 받아봐도 좋을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또 나도 졸업하려면 성적이 필요하다. HSK 5급 이상을 따야 졸업이 되는데, 미리 부터 비슷한걸로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시험을 봐야할 것 같고.. TOCFL은 1~5급이 있는데, 왕 선생님의 추천으로 무려 3급을 보게 되었다 ㄱ-.. 중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지 5개월 만에 무려 3급이라니!! 아오 부담된다. 하지만 하나 위안이 되는건 단어를 받아 들었는데, 모르는 단어가 많이 없다는 것이 좀 위안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시험에 합격해야겠다. 그리고, 4급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4. 말하고 싶고 토로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말할 대상이 없다. 한국인 동료가 있기는 한데 걔만 붙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생에다가 내가 그런 얘기를 하면 그냥 가볍게 흘려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고민을 털어 놓기가 힘들다. 뭐 다 나의 부족함 아니겠는가? 내가 극복해야할 일. 누구에게 토로하리오?

 

5. 요 근래 무척 덥다. 날씨가 33도 이상으로 올라가니 확연히 몸의 반응이 달라진다. 그냥 학교 건물에서 기숙사로 들어가는 얼마 안되는 거린데.. 땀이..... 어휴.. 그정도로 덥다. 5월이니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것인데.. 6,7,8월 어떻게 살까 싶다.

 

6. 화어중심 4차학기가 6월 4일부터, 여름반이 7월 1일부터 시작한다. 여름반을 하고 6월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4차학기와 여름반이 끝나는 날이 같아(;;;;;;;;) 거의 4차학기를 듣고, 8월 중순 이후에 한국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나를 기다리는 한국인들이여! 8월까지 기다리시오! 그때 찾아뵙겠소! 그리고, 6~8월 동안 기숙사에 들어 앉아서 중국어 공부를 거세게 해야겠다. 또 운동도 열심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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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5/09 16:47 단상

 성심교정이 성심국제캠퍼스로 바뀐지는 꽤 되었다. 아마 박영식 총장신부님께서 총장이 되시고 나서 국제관이 생기고 나자마자 바뀐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 학생들도, 지역 주민들도, 심지어 가톨릭대학교에 지망을 할 고등학생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학교 홈페이지 밑에 조그마하게 주소와 함께 적혀있는 명칭이 바로 '성심국제캠퍼스'이다. 이것을 보아할때 학교에서 추진한 '성심국제캠퍼스' 명칭 전환 시도는 '실패'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리고 왜 많은 학생들은 이 명칭에 대해서 달갑지 않은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것인가?

 

 1. 소통부재의 표본 '성심국제캠퍼스 명칭 변경'

 이 명칭이 본격적으로 선포되었던 2009년 9월 필자는 군대에 있었다. 아마 일병 2호봉쯤 됐던것 같은데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알다시피 엄청나게 고생하던 때이다. 그런데 친구와 전화를 하고 나서 들은 소식에 나는 그 고생을 잠시나마 잊을 만큼 실소를 했던 것 같다. 바로 교정 명칭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성심교정에서 성심국제캠퍼스로 바뀌었다는 친구의 말은 상당히 어이가 없다는 투로 들렸다. 당연히 갑자기 변경되어 버린 그 명칭은 학교 구성원들에게 정이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학교의 모토를 인바운드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동안 공사하면서 불려왔던 150주년 기념관을 하루아침에 International HUB로 바꾸고, 1995년부터 계속 해서 불려왔던 성심교정이라는 명칭을 하루아침에  학교홍보부서와 행정부에서 성심국제캠퍼스로 바꾼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것에 바로 순응하고 성심국제캠퍼스라고 할 것 같은가? 특히 학교 구성원들이 민감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적극적인 소통을 보여줬어야 할 것이다. 만일 명칭 변경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학교 구성원들을 여러가지 홍보수단을 통해서 설득해서라도 바꿔야 하지만, 학교의 행동은 마치 군대나 군사독재시절을 방불케 했다. 위에서 이름을 바꾼다니까 밑에서도 앞으로는 이렇게 써라. 이러는 것이다. 뭐 명령도 아니고..

 이와는 반대되는 예로 지금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새주소 사업이라는게 있다. 새주소 사업은 1996년 문민정부 시절에 국가경쟁력강화사업단이라는 곳에서 추진이 된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1997년에 몇개 기초자치단체에 시범사업을 시작한 후에 되는 경과를 보고서 계속 추진을 하였고, 2001년 국회에서 법령이 통과되고 나서도 여러가지 통합과정과 실시과정을 통하고 그다음 결정적으로 여러 홍보매체를 통해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한 다음에 결국에는 2014년에 전면적 실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새 주소 사업을 추진하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자그마치 18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하게 된 것이다. 만일 군사독재처럼 '필요하다!'해서 다 바꾸었으면 아마 3개월도 안되서 다 바뀌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것에 대해서 나오는 반작용을 시뮬레이션으로 해보고 그다음 경직되어 있는 국민정서를 설득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린 것이다. 물론, 성심국제캠퍼스로 바뀌는데에 십수년의 세월을 거쳐서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학생들 설득과 지역주민들 그리고 나중에 들어올 우리 후배들에게 홍보를 제대로 하는것이 우선이 되야할 것이다.

 

2. 국제캠퍼스라는 명칭을 쓸 만큼 국제적인가?

 가장 궁금했던 문제이다. 과연 우리교정이 국제캠퍼스라는 명칭을 들을 정도로 그렇게 국제화가 되었냐는 것이다. 물론, 학교의 의지를 나타낼 수는 있지만 우리학교의 국제화의 수준을 보면 글쎄.. 잘 모르겠다. 나와 같이 '국제화'이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학교에 돌아와 보니까 국제화라는 것을 딱 몇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첫번째, 외국인이 '조금' 많아졌구나. 두번째, GEO라는게 생겼네? 세번째, 국제관이 생겼구나. 딱 3가지다. 물론 총장신부님께서 국제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직접 느끼는 국제화 이후 3년간의 성적표는 대략 이러하다. 학교에 오는 유학생과 교환학생들도 굉장히 몇나라에만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과연 이것이 국제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중문과 2전공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학교에서 말하는 국제화는 국제화가 아니라 영미권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어는 국제 언어로써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교환학생을 와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진정한 국제화라면 다른 언어들도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화를 하기 위해서는 영문과나 국제학부처럼 중문과나 일문과 불문과에서도 원어로 하는 수업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같이 교환교수 1명만 원어민인데 이것을 과연 국제화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제2 글로벌 라운지가 있다고 해서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다 국제화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학교에 교환학생을 와보니 뼈저리게 느낀게 있었다. 학교 교류가 별로 안되서인지는 몰라도 (이 학교에 파견된 교환학생은 학교 유사이래 내가 최초다.) 학교 홍보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도서관에 교류학교 기증물품을 전시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도 다른 한국학교의 이름은 보이나 우리학교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가장 굴욕이었던 것은 학교 홍보를 그곳에 온 교환학생들과 함께 부스를 차려서 하게 되었는데, 우리학교 자료가 없었다. 대신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자료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그만큼 외국학교에서는 가톨릭대학교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차이를 모를정도로(우리나라 사람도 헷갈리곤 하더라.) 홍보와 교류가 안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봤을때 아직 우리학교는 국제캠퍼스라는 명칭을 써서는 안된다.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3. 학생들의 자세는 어떠한가?

 성심교정 학생들의 기본 논조는 이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캠퍼스라는 단어가 분교라는 의미기 때문에 짜증나요. 그래서 안되요.' 이런 자격지심에 똘똘 뭉쳐 있고, 논리가 없는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학교에게 이 명칭을 바꿀 명분만을 제공할 뿐이다. 생각해보자. 성균관대학교는 인문과학캠퍼스(명륜캠퍼스)와 자연과학캠퍼스(율전캠퍼스)가 있다. 학생들은 인문과학, 자연과학 붙이기 귀찮아서 그냥 명륜캠, 율전캠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오는 뭐 차별이 있던가?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가 있는데, 과연 그들이 본교와 떨어져 있다고 해서 차별을 느끼는가? 그런거 없다. 심지어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는 의대, 간호대다. 다른 영미권의 학교들은 우리학교 처럼 학교가 나눠져 있는 예가 많은데 다 Campus라고 부르더라.

 내가 지속적으로 언급하지만 이러한 것은 성신, 성의보다 못하다. 다른 학교들 보다 뒤쳐져 있다고 느끼는 우리 성심교정 학생들의 자격지심의 문제이다. 과가 아예 나누어져 있는데, 캠퍼스라는 명칭이면 어떻고 교정이라는 명칭이면 어떠하랴. 그러한 주장은 개인을 위해서라도 학교의 학생을 위해서라도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해서는 안되는 주장이다.

 오히려 앞서 내가 주장했던 소통 부재의 문제와 국제화의 문제 그리고 절차상의 문제를 가지고 학교 측에 문의를 요구를 해야 맞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생각하고 말을 하는 총학과 학생들이 몇명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총학의 태도도 문제이다. 2009년에 국제관 준공식 할때 반짝 시위를 했다고만 알고 있다. 그 이후에 총학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뭐 개별적으로 했다고 한 것은 많을 것이다. 니가 잘 모르고 그딴 소리를 하고 있다. 학교에 관심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학교 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리고 내가 주변에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총학이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모르고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자기가 아무리 했어도 거의 전부의 구성원이 모른다. 이것은 안한것보다 못한것이다. 만일 이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면 저번에 미쉘 불매운동 했듯이 해라. 왜 그런가에 대해서 홍보물도 막 붙이고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라. (아 물론 감정적인 포스터 붙이기나 임기 다됐는데 나 이거는 했소 하는 전시행정은 절대 안된다.) 그리고 총학생회장이 직접 소통에 나서라. 저번 총학이 한일 중에 가장 쪽팔리고 어이없었던 것이 두근두근 미팅인지 소개팅인지 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을 줄테니 그래 니네가 와서 한번 떠들어 봐라.' 이런 태도로 보이게끔 만들어버렸다. 니콜스 5층에 틀어박혀 있는 총학방에 누가 올라가서 이야기 하겠는가? 그리고 홍보를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그 일부분에만 붙어있는 포스터를 누가 주의깊게 보겠는가? 당연히 참여인원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정말 이 문제를 비롯해서 학교의 문제를 알리고 학생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면 소통의 자리를 국제관 로비로 옮겨라. 그리고 그곳에서 학교 성심교정 변경문제를 논의해라. 처음에는 저게 뭐지? 이렇게 지나가던 학생들도 나중에는 점점 그곳에 모여들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거기서 모인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 집행부와 총장신부님께 전달해라. 그러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총학에서 페이스북에 이 문제에 대한 것을 투표로 올렸길래 생각이 나서 몇자 찌그려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성심교정이라는 이름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학교가 '캠퍼스'라는 외래어를 이용할때 우리는 교정이라는 정감가는 단어를 선택을 했기 때문에 더욱 이 명칭이 좋다고 한다. 만일 바꾼다면 성신교정과 성의교정도 성심교정과 같이 명칭을 동시에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신신학캠퍼스, 성의의학캠퍼스, 성심국제캠퍼스라고 말이다. 성심교정만 명칭을 변경한다면 '삼위일체의 하나의 큰 학교'라는 그 취지도 무색해질 뿐더러, 성심교정 구성원들에게 앞에서 설명했던 오해를 충분히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학교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대외적으로도 그리고 학교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졸속적으로 처리되어야 할일이 아니다. 꾸준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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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5/03 23:31 오늘의 일기

1. 오늘이 제일 덥다. 밖에는 습기가 가득차있고 안에도 열기가 엄청나다. 이거시 바로 대만의 더위인가.. 오늘 잠을 잘 수 있으려나..

 

2. 앞서 말했다시피 오늘 악부시 시험을 봤는데 글자 2개 틀려서 17점 맞았다. 18점 만점이니 굉장히 선방한 셈이다. 같은 한국인 동료 수빈이는 18점을 맞았다고 하니 그저 대단할 따름. 장선생님께서도 한국애들이 대만애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것 같다며 엄청나게 칭찬하셨다. 뭐 이렇게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겠지 ㅋㅋ 더 열심히 해야겠다 ㅋㅋ

 

3. 드디어 한국 학교에도 축제 시즌이 돌아오는가 보다. 뭐 사실, 축제라고 해서 학교 축제가 재미도 없거니와 별로 그런거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저 지나갔는데, 나이가 드니까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나이에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저 영감탱이 뭐야?'하겠지만. 역시 이번에 학교에 오는 가수들은 좀... 20대 초반에 맞춘 2AM과 20대에 맞춘 10cm가 온다는데.. 많은 남성동지들은 반발하고 있다. 왜 걸그룹이 안오는가? 걸그룹이 와야한다! 뭐 어짜피 나는 관계 없지만 나의 친구들의 피를 토하는 열변을 보니 내 마음이 끓어넘친다. 내년에는 볼 수 있겠지. 마지막 축제니까.

 

4. 오랜만에 야구가 볼만했다. 이렇게 야구 볼 맛이 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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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5/02 22:50 오늘의 일기

1. 아 덥다.. 낮보다 밤이 더 더운 것 같아 -_-

 

2. 어제는 햇빛이 쨍쩅했는데, 오늘은 또 소나기가 오다말다를 반복하였다. 며칠전에 대만 아이들에게 물어본 바로는 사시사철이 비가 많은데, 특히 봄철에 이런 소나기가 많다고 하더라. 우산을 항상 챙겨 다니라니, 그 말을 잘 들어야 할듯 하다.

 

3. 이번주는 별로 한일도 없는데 꽤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대만 온 이후에 이렇게 빨리 가는 일주는 처음이다.

 

4. 저번주에 악부시 수업에 들어갔는데, 교수님도 없으시고, 학생들은 앉아있다가 그냥 나가버려서 굉장히 당혹했던 적이 있었다. 또 그날 암기시험이 있는 날이어서 더 당황을 했다. 어제 장교수님께 여쭤보니 휴가를 내셔서 저번주에 수업이 없었다고.. 이메일 못봤냐고 말씀하시더라.. 학교 이메일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내용은 나오지 않으니 원.. -_- 아무래도 학교 이메일에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저번주에 봤어야 할 시험을 내일 봐야 하니.. 다시 암기모드로 들어가야 한다.. ㅠㅠ 나는 세상에서 외우는게 가장 싫다 ㅠㅠ

 

5. 아까 수업을 가려고 나오는데 한 방에서 애들 한 6명이 우르르 나와서 엘리베이터로 가더라. 어짜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하니, 나도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섰는데, 그 아이들이 먼저 탔다. 그러고 나더니 갑자기 키가 가장 큰애가 내가 들어오려는 것을 막더니 쏘리 그런다. 자리 없으니 다음꺼 타고 내려가라는 뜻이다. 만일 내가 들어가서 벨이 울리며 문이 안닫히게끔 생겼으면 나는 아예 타지를 않는데, 그 엘리베이터는 13인승이라 충분히 공간이 남아 있었다.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버튼을 누르면서 그 아이에게 한국말로 '시X, X까고 있네. 미친X이 어디서 X수작이야. 몸뚱이 저리 안치워?'하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고 그 아이를 밀며 '꺼져, X새야.'하면서 들어갔다. 내가 옆구리를 확 밀어버리니 그 남자애는 힘도 쓰지 못하고 밀려버리더라. 그리고 5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은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특히 나한테 밀린 그 남자에 나를 야려보는 눈빛이 강렬해서 나도 같이 야려보았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는 장난은 장난이 아니지. 내가 한 욕이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나의 말과 행동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 놈들은 오늘 나를 보고 뭐라 그랬을지 궁금하다.

 

6. 대만에 한국 드라마가 많이 보급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아이들이 한국드라마를 좋아하고, 나보다 현재 한국에서 하는 드라마를 더 잘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한가지 웃긴것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말투가 한국사람들의 전체의 말투인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말투를 알고 있겠지만, 상당히 남성적이고 향토적이며 각지방의 사투리가 조금씩 들어가있는 나의 말투는 이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말하는거 아님? 근데 너는 왜이럼? 이런 질문도 들어봤고, 대만사 교수님과 한 아이는 나보고 북한사람 아니냐고(;;;;;;;;;;;;;;) 물어보기까지 하더라.. 근데 뭐 한국 드라마 말투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투는 아니니까.. 나는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다. 생각해봐라. 내가 한류스타들의 말투를 한다면... 그 얼마나 언발란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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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5/02 00:03 오늘의 일기

1. 벌써 5월이네. 내가 대만에 온지도 90일 정도 되었다는 뜻이다. 엄청 흘러간것 같은데.. 아직도 그정도 밖에 안됐나? ㄷㄷ...

 

2. 아마 한국에 8월에 들어갈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나는 7월 1일에 화어중심이 개강하는 줄 알고 6월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건 여름학기 화어중심을 얘기하는거고 4학기 화어중심은 6월 4일에 개강이다. 그렇게 되면 8월 중순에나 끝날듯.. -_-.. 아 안돼....-_- 나 한국 가고싶다고.. 처리할 일도 있고..

 

3. 요즘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옛날 사진들을 보고 추억에 잠긴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그리고 나와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대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생각에 잠긴다. 어느덧 나도 이런 것을 보고 추억에 젖는 나이가 되었구나.

 

4. 대륙 교환학생인 샤오동이 자기네 집단에 끼워주려고 무단히 노력을 하는데, 너무 일이 꼬인다. 오늘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펑후에 간다고 같이 가자고 문자가 왔는데.. 25일에 발표가 있어서 못가게 되었고..  6월 14일에 훠궈를 먹자고 했는데.. 6월 15일에 마지막 기말고사가 있어서.. fail! 참... 이렇게 어긋날 수도 있구나. 또 요즘 계속 긴축재정하고 있는데, 가서 돈을 펑펑쓰면....-_-..

 

5. 오늘 대만은 34도까지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햇빛이 장난이 아니다. 이거시 바로 대만의 햇빛이구나.. 싶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맑아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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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26 17:07 단상

 내가 이런 글을 쓰면 학교에 대한 망신이려나? 하지만 중간고사 이맘때 쯤, 아니면 조중동에서 대학평가를 발표할 쯤에는 학교(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커뮤니티에서는 일진 광풍이 돈다. 뭐 대학서열이 쭉 붙는가 하면 뭐 어느대학 붙었는데 자퇴하고 다시 이 학교에 왔네 안왔네 하면서 전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영양가도 없는 그저 시간을 축내는 그러한 논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평가 자체가 그저 학교의 객관적인 전체평가를 본다는 점에서는 찬성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과정에서는 정말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반대이다. 내가 어느학교를 다니든 뭘 하든 내가 열심히 하면 되는거 아닌가?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학벌사회에서 이걸 꼭 무시할순 없지만 현재는 예전보다는 많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쟁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말도 안되고 희한한 논쟁이 꼭 2차전으로 펼쳐진다. 바로 성신 vs 성심 vs 성의. 물론, 성신교정 학생들이나 성의교정 학생들이 들으면 뭐 그런걸로 논쟁을 펼치냐고 이야기를 할것이다. 하지만 성심교정학생들에게는 꽤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이번에 대학평가는 성의교정의 비율이 들어가서 그런 것이다. 성의교정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학교는 돈이 많다고는 하는데 성심교정은 항상 이따위로 돈도 안쓴다. 전부 성신교정, 성의교정으로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전에 총장했던 신부님은 가톨릭대학교의 명성을 성심교정이 다 까먹는다고 했다더라.', '성의교정학생들은 우리를 같은 학교 학생으로 취급 자체를 안한다더라.', '어떻게 우리와 같은 천민이 성의교정 학생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겠는가?' 등의 별 희한한 얘기가 광풍으로 불어닥친다. 그래서 열등감으로 폭발하다가 분노하다가 자조하다가 끝난다. 이 얼마나 영양가 하나 없는 논쟁인가?

 

 나는 작년에 몽골로 국제봉사단을 다녀왔는데 의료팀으로 가게 되었다. 일단 사회팀처럼 집을 지어주고 교육을 시켜주는 것도 매우 좋지만 뭔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싶었고 내가 응급처치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도움이 되고 싶어 의료팀으로 지원을 했다. 원래 의료팀으로 지원을 했던 3명, 사회팀에서 의료팀으로 소속을 바꾼 4명, 총 7명이 성심교정에서 의료팀으로 뽑혔고 약 23명 정도가 성의교정에서 왔다. 또 간호대 소속인 7명의 학생이 사회팀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 다른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의대에 대한 근거없는 소문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또 여러 안좋은 얘기도 들었다. '만일 성심교정 학생들에게 부당한 일이 생기는 경우에 나는 반드시 이를 강력하게 저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본 성의교정 사람들은 오히려 성심교정 사람들보다 인간미가 흘렀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정말로 친해졌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동체의 습관이 우리에게 피해나 주지 않을까 오히려 우리 눈치를 봤던것 같다. 우리도 그동안 들었던 그러한 희한한 소문과 다르게 서로를 배려하고 재밌게 지냈다. 그리고 그들은 국제봉사단이 끝나고 쌩하고 헤어진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러 곳에서 만나고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 사랑하면서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다. (작년까지는 학생들이었는데.. 지금은 전부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이네 ㅋㅋㅋ)

 

 알고보니 어느학교나 의대, 간호대 그리고 다른 학과들은 간극이 있었다. 아예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울타리에 있는 학교들도 그런것 같더라. 당연하다. 생활 시스템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간극을 좁힐 수 있고 만날 수 있겠나. 그리고 의대 자체의 자부심도 상당히 많고 그 문화에서 형성되어온 자기만의 질서도 엄격한데 그에 비해서 자유로운 일반 학과의 문화와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을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일단 선입견이 너무 강하다. '우아. 우리같은 천민이 어떻게 성의교정 애들하고 노니. 걔네들은 우리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을거야.', '우리랑 말이 안통하는 집단들이야.', '아, 성의교정 그새끼들? 그새끼들 지들 몸편한것만 알지. 남들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집단이야.'(전부 직접들은 얘기들이다.) 이런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성의교정 학생들도 의대생, 간호대생 이전에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과 사귀는데 그렇게 계급을 나누고 척을 지고 사귈까.. '걔네들은 원래 그럴 것이야.' 라는 그러한 선입견 자체가 그들을 오히려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전부 다 모이는 자리가 생겼는데, 내가 성심교정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갔다. 그런데, 그런식으로 얘기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성심교정 학생들은 자신이 성의교정보다 못하다는 자격지심, 그리고 의대생, 간호대생들은 원래 그럴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하는 그런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보이고 그래야 의대생, 간호대생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 것이다. 다들 우리나라의 학벌 사회를 비판을 하지만, 우리가 이런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비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봐온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은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왜곡된 시선을 털어버릴 차례다.

 

 그리고, 학교의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학교라면서 내가 알기로는 모든 시스템 자체가 통합이 되어있지 않다고 들었다. 학생의 교류, 복지, 수업 등등의 모든 문제가 서로 다른 학교 처럼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통합된지 거의 20년이 되가지만 계속 이렇게 된다면 오히려 이러한 간극을 더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모든 행정시스템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교육학 과목이 지금은 전부 따로 개설이 되어 있는데, 한 교정으로 통합하여 개설한다든지, 서로의 교정에 교양수업들을 서로 교차해서 수강할 수 있다던지 하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것 같다. (성신교정은 그 특수성 때문에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또한 총학에서도 노력을 해야한다. 총학과 학교에서 주최하는 3개교정 통합행사가 거의 없다. (3개교정 등반대회, 3개교정 체육대회, 국제봉사단-국제봉사단은 일부 뽑힌 사람만 교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곳은 등반대회와 체육대회밖에 없다. 또 체육대회는 통합축제로 바뀌면서 없어졌다.) 이것은 반드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3개교정 간담회라던가 동아리 끼리의 교류라던가(같은 학교면서 교정마다 같은 종류의 동아리가 있다. 이를 통합시키지는 못하겠지만 교류를 통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우리학교는 교목실도 있으니 교목실 끼리의 교류 같은 것을 점점 늘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괜히 크게 하려고 저번처럼 통합축제로 바꿨다가 작년처럼 일이 이상하게 되서 통합축제 자체가 없어지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고, 차근차근 아래에서부터 교류하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여러가지의 글을 보고서 답답해 주제넘게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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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24 00:23 오늘의 일기

1. 오늘 위가 너무 아팠다. 거기다가 감기까지 와서 진짜 죽을 뻔했다. 화어중심만 가고, 수업 두개를 다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거의 시체로 누워있었다. 아파서 잠도 안오고.. 조수빈에게 갤포스 있냐고 물어봤더니 찾아보니까 없단다.... 아 좌절 했더니.. 학교 안에 병원이 있으니 가보란다. 병원을 가니까 위염이 발생한것 같다고 한다. 약을 주면서 더 알고 싶으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시더군.. 아마도 요즘 신경 쓸 일이 많고 멘붕이 계속 이어져서 그게 위병으로 도진 모양.. 아 이러면 안되는데... 어쨌든 약을 좀 먹고 나니까 조금 괜찮아졌다.

 

2. 그래도 내일 소동파 시간에 소동파의 시 寒食雨二首 암기 시험이 있다. 젠장. 몸도 아픈데 이걸 외워야 하니 진짜 힘들어 죽을 뻔했다. 그리고 내가 워낙 머리가 나쁜지라, 암기가 잘 안된다 -_- 그래도 집중하여 암기를 하니 좀 되긴 되더라. 거의 다 외웠다. 좀만 더 외우고 내일 완벽하게 외우고 겁나 좍좍 쓰고 와야겠다.

 

3. 외우기도 많이 했고, 아프기도 하니 일찍 자야겠다. 내일 좀 건강히 학교에 좀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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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22 00:03 오늘의 일기

1. 위대한령도자이신 명옹께서 요즘들어 우울해 하는 나를 한국에서 헤아리시고 DJ처리의 아자아자 녹음본을 보내주셨다. 4시간 동안 종일 리믹스음악이 들어가는 이 라디오프로그램은 요즘 운수업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를 하고 있다. 아 이런 음악을 들으니까 좀 살것 같다. 나는 원래 이런 놈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자!

 

2. 요즘 블로그에 상해 여행기를 업로드하고 있는데, 아오 이것도 엄청나게 힘들다.... -_- 여행기 무서워서 여행 가겠나?

 

3. 오늘 종일 앉아서 이것저것 했다. 아직 화요일, 목요일에는 암기시험도 있어서 그것도 공부를 했고, 책 좀 보다가 엎어져서 자기도 하였다. 아마도 facebook에 하루종일 켜져 있어서 내가 페북만 하는 줄 알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냥 켜놓고만 있을 뿐. 어쨌든 정식 시험은 끝났으나 아직까지 내가 가장 약한 암기 시험이 남아있으니 두려울 뿐이다.

 

4. 5/23에 화어중심이 종료되는데, 5/24에 어디 놀러간단다. 이때 목요일인데..? 수업있는데.....? 왕라오스에게 다시한번 물어봐야겠다.

 

5. 아이폰으로 뭣좀 다운받으러 갔다가 카카오스토리라는 것이 있어서 다운 받았다. 근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6. 이번주부터 잠시 중단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몸이 찌뿌두둥한게 힘들어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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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4/21 17:28 旅遊記

 어제 출발만 너무 길게 써서 힘들어 뻗었다가 지금부터 여행기를 다시 이어가려고 한다. 근데 이건 여러분이 이해를 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거면 그렇게 길게 안썼을텐데 ㅠㅠ 대만에서 출발하는거니 괜히 신기해서 그랬다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어제까지는 출발부터 상해총영사관까지 얘기를 했고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볼까나?

 

3/31 (상해총영사관-중산공원(中山公園)-정안사(靜安寺)-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광치기념관(徐光啓紀念館)-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자후이(徐家淮)-숙소)

 어제까지 상해총영사관에서의 부재자 투표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오늘은 그 이후의 얘기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 상해총영사관이 있는 러우산루역에서 중산공원역까지는 매우 가깝다. 바로 한정거장 거리이기 때문이다.

 

 

(중산공원역 내부 중산공원까지 가려면 지하도를 꽤 걸어야 한다.)

 

중산공원역의 긴 지하보도를 계속 걷다보면 중산공원쪽 출구가 나온다. 그쪽에 나오면 바로 중산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어제 비가 왔지만 이날은 매우 날이 맑아서 공원을 구경하기에는 매우 좋은 날이었다.

 

 

 

 

(중산공원 입구)

 

 중산공원은 들어가보니 매우 큰 공원이었다. 사장님께서 '여기 그냥 공원인데..'라고 하셨으나 이런 시내공원을 처음 보는 그저 눈이 휘둥그레 해질 뿐이었다. 공원 안에는 호수와 물길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유유자적 배를 타고 있었고,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또한 벚꽃까지 아주 흐드러지게 펴져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고, 휴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나왔다.

 

 

 

 

 

 

(한적한 공원의 모습)

 

 사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렇게 사진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말 평화로웠고 좋았다. 가족들은 모두 피크닉을 나와있고, 비누방울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왔다. 바로 영화에서 보던 그런 광경이 아닌가 싶다 싶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폭탄테러가 나던데....-_-) 그리고 드넓은 풀밭 뒤에 보이는 높은 빌딩은 그와 비교되어 공원은 더욱 한적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특이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바로 연날리기!)

 

 날도 좋고 바람도 이따금씩 불어서였을까? 노점상들은 연을 팔고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은 연을 날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많이 봤고 또 많이 날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장소에서 이렇게 연을 많이 날리는 것은 처음 봤다. 연의 스케일도 커서 연에 이어진 실을 묶은 실패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무지 컸다. 뭐 이건 나무 판자에 실을 엄청 묶어서 날리더라. 주로 연을 날리는 분들은 나이가 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동심이 흘러 나왔다. 또 여러가지 모양의 연이 많았는데, 가장 문화적 충격이 왔던 것은 앵그리버드(;;;;;;;;)모양의 연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역시..

 

 

 

 

(춤을 즐기시고 계시는 어르신들)

 

 드넓은 풀밭 뒤에는 이런 휴게시설도 있었는데, 맨 처음에는 이 석상을 보러 갔는데, 참 좋은 풍경을 보았다. 바로 댄스 동아리에 소속되신 분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르신 여러분이 이렇게 음악도 없는데 춤 연습을 하시고 계신거였다. 석상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이렇게 여가생활을 즐기고 계신 어르신들이 더 멋있었다.

 

 

 

 

(죽원에서는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해금 연주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중산공원에는 기둥도 의자도 지붕도 모두 대나무로 만든 죽원이라는 희한한 모양의 휴게시설이 있는데, 거기서 해금 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보니 여러 어르신 들이 해금 연주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여기 뿐만이 아니라 중산공원 곳곳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 분들을 보았는데, 모두 나이가 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한가롭게 이렇게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진 마지막에 나오신 어르신은 상해시 해금연주대회에서 당당하게 대상까지 타신 전력이 있으시다고 하니 얼마나 노력을 하셨는지 안보아도 알만하다.

 

 

(싸우는거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즐기고 계신거에요..)

 

(이렇게 자신의 특기를 공연하시는 분도 계셨다.)

 

 또 중산공원에서는 여러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첫번째 사진과 같이 어르신들이 저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모습이었다. 도중에 막 큰소리를 지르시고 삿대질을 하시는 등 처음에는 싸우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에 서로 웃고 노래까지 같이 즐기시는 것을 보아서 그냥 재미난 이야기를 하신듯 하다. 그리고, 두번째 사진과 같이 어느 한 어르신 께서는 앰프까지 들고오셔서 공원에 온 사람들을 위해서 피리 공연을 하시고 계셨다. 이렇게 하시는게 직업이냐고 여쭤봤더니 직업은 아니고, 집에 있으면 할게 없어서 이렇게 나오셔서 종종 피리로 공연을 하신다고 하였다. 피리 연주가 수준급이셔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들어볼 사람은 한번 들어보자.

 

 

 

 

 

 

 

 

 

(중산공원은 참 아름다운 풍경이 많았다.)

 

 이때가 상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라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대만에서는 이것과 같은 벚꽃을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보던 벚꽃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비록 혼자였지만 상관 없어!) 그리고 이렇게 중산공원 곳곳에는 저렇게 돌로 만든 조형문들과 고풍스러운 다리가 있어 그 맛을 더욱 더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중산공원에 있는 것이 매우 좋았지만 시간의 압박도 있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에는 압박이 커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향한 곳은 정안사(靜安寺)였다. 출발하기 전에 샤오동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곳으로써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상해에 왔으면 한번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말에 바로 코스에 집어넣었고, 이렇게 향하게 되었다. 중산공원 역에서 2호선을 타고 2정거장만 가면 정안사역이 나온다. 처음에 정안사역에서 나왔는데 좀 어리둥절 하였다. 너무 높은 빌딩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과연 고풍스러운 절이 있나 싶었는데, 올라오니 깜짝 놀랐다. 빌딩 숲 사이에 이런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절이..

 

 

 

(오... 빌딩 숲 사이에 이런 절이..)

 

사실 중국 정부에서도 이 절을 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정안사는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기 때문이다. 삼국시기인 오나라때 중건된 절이니, 역사가 약 1800년정도 되었다는 얘기이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절이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에게 정안사는 잘 알려져 있고, 중국 정부에서도 이를 문화재로 당연히 지정을 해서 보존을 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30위안이고, 입장시간은 08:00~17:00이니 유념하기를 바란다.

 

 

 

 

 

(정안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안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향로와 뿌연 향연기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향을 피우고 사방으로 절을 하면서 자신의 바라는 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비록 개인의 신앙이지만 그 이상만큼 성스러워 보이는 것이 없더라.

 우리나라의 절과는 달리 절은 매우 화려했다. 일단 건물의 지붕이 황금색으로 매우 반짝였고, 지붕 양식또한 매우 건장했다. 그리고 때는 중국인의 명절은 청명절이었다. 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예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그 기회를 얻었다.

 

 

 

 

 

(경을 읽고 있는 스님들과 신도들)

 

 큰 법당으로 들어가니 저렇게 법회를 열고 있었다. 법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강론은 다 끝난것 같고 스님들과 신도들은 앉아서 경을 외우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매우 오묘했다. 같이 들어갔던 서양인들도 매우 오묘하고 신기한 이 분위기에 매우 매료된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법회와는 좀 다른 것은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사방에는 불상이 있었고 그 앞에서 신도들은 열심히 절을 드렸고, 또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 가만히 있는 사람, 무언가를 바치는 사람 등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앉아서 경을 읊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은박지를 접으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그것을 만드는 할머니께 무엇을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것이 지전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저승에서 잘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지전을 접어서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옆에 큰 포대를 두시고 그 지전을 접으시는 할머님은 한포대정도 집에 돌아가실거라고 말하시더라. 굉장히 대단하신 것같았다. 그리고 절이나 교회, 성당에서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우리네 할머님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은 늙었으니까 나의 자식들 또 이미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과 조상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 순수한 믿음이 생각나며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안사의 수많은 불상들)

 

 정안사에는 불상들이 매우 많았다. 절에 가서 불상 함부로 찍으면 안된다는 말을 들어서 '한국인 관광객인데 불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러니 사진을 찍으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하시며 대신 플래시만 터뜨리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렇게 불상을 찍을 수 있었다. 일단 불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의 사진은 관세음보살, 마지막사진은 석가모니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더라.. -_-  그 중에 흥미가 가는 불상이 있었는데, 세번째 사진의 불상이다. 나처럼 퉁퉁한 부처님이 앉아서 정이 가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한결 정이 갔다. 나도 저 부처님 처럼 사람들에게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것 같아서 그 앞에서 반성을 하였다.

 

 정안사를 구경을 하고 나서 쉬자후이(徐家淮)로 향했다. 쉬자후이는 상해 서부의 중심권이다. 수많은 쇼핑센터와 높은 빌딩이 있는 쉬자후이는 명나라 때 서광계(徐光啓)라는 과학자이자 관리가 은퇴 후에 이곳에 자신의 일족을 살게끔 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특히 서광계는 서양 과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에서 서양의 문물이 처음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정안사에서 쉬자후이역을 가려면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한다. 7호선 정안사역에서 한 정거장을 가면 1,7호선 창쑤루(常熟路)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두정거장을 내려가면 쉬자후이(徐家淮)역에 도착한다. 쉬자후이는 앞서 말했다시피 서양의 문물이 최초로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의 문물과 현대의 문물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서양의 문물의 상징이자 쉬자후이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으로 갔다. 쉬자후이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볼 수 있다.

 

 

 

(천주교 상해교구청과 쉬자후이 주교좌 성당)

 

 쉬자후이 성당은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불과 50여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현재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은 어딜까? 바로..... 우리나라 논산에 있는 군종교구 육군훈련소 김대건 성당.... 어쩔 수 없다..) 1607년에 로마식으로 지었던 이 성당은 아시아 선교의 전진기지로써 역할을 해왔고, 그와 함께 중국에 서양문물을 전달하는 주요 관문이 되었다. 또한 천주교신자였던 서광계가 이곳에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과학적인 성과를 냈던 장소기도 하다. 또한 한국 천주교와도 연관이 있는 곳인데, 바로 한국 천주교에서 2번째로 사제서품을 받으신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으신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의 성당은 1906년 재개발에 들어갔고 1910년에 지금의 성당을 지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상해에 상륙하고, 중국 공산당이 상해를 점령했을 때도 이러한 역사를 인정받아 쉬자후이 성당에서 가톨릭 전례를 허가 받았으나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첨탑이 잘려나갔고, 성당은 폐쇄가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에 다시 종교행사가 거행되면서 상해 천주교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공산당은 사제서품과 주교서품을 자기 맘대로 하고 있지..-_-..

 

 쉬자후이 성당은 관람시간이 따로 있다.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성당 내부를 관람할 수가 없다. 다만, 예외는 있는데, 천주교 신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관람시간에 관계 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나의 경우, 성당 앞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니 관리자 분이 관리소 안에 나와서 안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 저 한국에서 온 한국인 신자인데요.. 성당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러냐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셨다. 그 덕분에 뒤에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저놈은 왜 들어가고 우리는 왜 못들어감?'그렇게 실갱이가 벌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천주교 신자라고는 하지 말자.. 전적으로 양심에 걸린 문제니까..

 

 

 

 

 

(쉬자후이 성당 외부)

 

 쉬자후이 성당 외부를 보니 갑자기 우리나라의 명동성당이 생각이 났다. 좀 많이 주변이 다르긴 하지만 번화가의 중심지에 있고 각각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고 현재까지도 랜드마크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이 천주교를 탄압하고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와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도하는 모습 자체가 우리나라 신도들 보다 더 성스러워 보이더라. (하지만, 중국이 천주교를 탄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중국은 애국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그 조직의 성당에서의 종교활동은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공산당은 꾸준히 애국회를 통해서 중국천주교회에 엄청나게 간섭을 하고 있고, 교황청의 고유권한인 사제서품권, 주교서품권을 맘대로 이용해서 바티칸과 갈등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도 교황청의 말만을 따른 지하교회가 있는데, 그곳은 엄청나게 탄압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수많은 지하교회의 신부님과 주교님들은 중국 감옥 내에서 죽어가고 있다.)

 

 

 

 

 

(쉬자후이 성당 내부, 고해소, 성물판매소)

 쉬자후이 성당의 주보성인은 바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예수회의 창설자 이자 지금도 많은 곳에서 존경 받고 있는 성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좀 어울리지 않는데, 이 곳의 주보성인이 성이냐시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607년 당시에 처음 선교를 왔던 선교사들이 전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아주 유명했던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 역시 예수회 신부님이셨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한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내부는 보면 볼 수록 명동성당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시에 주님수난성지주일이었기 때문에 성당안은 이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이곳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되지만 관리소에 간곡한 호소를 하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가능하다.

 

 오랜만에 가는 큰 성당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조금 묵상을 할 수 있었고, 또 여러 중국 신자들도 묵주알을 굴리거나 묵상을 하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성물 판매소가 있길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묵주팔찌를 2개 샀다. 이 또한 관리자 아저씨의 배려로 조금 깎아서 살 수 있었으니.... 이는 필시 관리자 아저씨가 나를 잘 본 것임에 틀림 없어!!!

 

 쉬자후이성당을 나와서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오른쪽에 큰 여행안내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가지 팜플렛과 안내를 받았다. 원래는 다른 곳에 가려고 했었으나 (그 주변에 유명한 학교도 있고 여러가지 유적이 있다.) 학교는 문을 닫고 여러군데는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서광계의 묘가 있는 서광계기념관에 가기로 하였다.

 

 

 

(서광계 기념관 가는 길)

 

 이곳 쉬자후이는 서광계의 동네라는 말이 맞다. 앞서 설명한 유래도 그렇고 곳곳에 저렇게 서광계의 동상이 있어 쉬자후이에서 서광계는 어느 위치의 인물이며 상해인들이 얼마나 서광계를 존경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서광계 기념관 정경)

 

 서광계 기념관은 마치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한 가운데에는 서광계의 묘가 조성이 되어 있었고 주변으로는 서광계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동상이 놓여 있었다. 또한 많은 나무 아래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저렇게 장기를 두시거나 마작을 하셨다. 서광계의 묘 앞에는 굉장히 특이한 것이 있다. 서광계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증명시키다 시피 큰 십자가가 그의 묘역 앞에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라틴어와 중국어로 된 주님의 기도가 새겨져 있었다. 다소곳하게 묵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어르신들이 여러가지 놀이를 즐기고 계셔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과학자로서의 서광계의 모습을 저렇게 보여주고 있는데, 서광계는 서양역법을 중국에 도입해서 중국에 굉장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고 거의 최초로 서양인들과 엄청난 교류를 맺었던 사람이기에 중국에도 지금까지 회자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서광계 기념관을 떠나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강남지역에는 수상마을이 굉장히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곳이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抗州).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패키지 여행으로 가는 곳이고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상해에서 쑤저우는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그곳을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상해 근교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에 가기로 하였다. 쉬자후이역에서 9호선을 타고 약 20분 정도를 가면 치바오라오쟈가 있는 치바오(七寶)역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상해의 근교여서 그런지 쉬자후이와는 완벽히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딱봐도 변두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치바오라오쟈에 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사람은 매우 많았다.

 

 

 

 

(치바오라오쟈 입구)

 지하철역에서 약 5분정도 걸으니 치바오라오쟈 입구가 나왔다. 별로인 모습에 실망할 뻔했지만 이것은 치바오라오쟈의 그저 입구일 뿐이었다. 치바오의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안으로 더욱 들어가야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치바오라오쟈)

 

 조금 더 걸으니 바로 아치형 다리가 나왔는데 '아 이곳이 치바오라오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다리에 올라가서 건너려고 하니 그 주변에 들어오는 경치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배와 아치형 다리는 그야말로 절묘한 조합을 이루었다. 그다음 바로 관광지역 옆이 주거지역이었기 때문에 강 주변에 널려 있는 빨래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단점이 있다면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거.

 

 치바오라오쟈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난리가 난다. 길은 좁은데 양옆으로는 상점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정말 가만히 서있어도 앞으로 가는 이 느낌은 바로 신도림역에서나 느낄 수 있는 느낌이었다. 치바오라오쟈는 원래부터 만두가 상당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만두를 사서 먹었는데, 상당히 맛있더라. 그리고 양옆으로 족발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치바오라오쟈의 갖가지 볼거리)

 

 치바오라오쟈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상당히 먹을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게 흠이고, 그다음에 제대로 된 기념품이 없는 것도 흠이었다. 오로지 먹을것만;;;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것을 보았다. 어떤 걸인이 구걸을 하는데, 그냥 구걸을 하는게 아니라 길바닥에 백묵으로 저렇게 글을 쓰고 구걸을 하더라. 거의 20m에 걸쳐 쓴 저 글씨는 상당히 명필이었다. 또 여러가지 글을 쓰시는듯 지웠다 썼다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매우 신기하였다. 또한 다리에서 넘어가니 저렇게 돌에 여러가지 문양과 글을 새겨주고 목걸이로 만들어주기도 하더라. 도중에는 '사랑해'라는 한글 구절이 새겨져 있기도 하여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값도 비교적 싸고 치바오라오쟈에서는 특색있는 기념품이 없길래 돌에 나무와 이름을 새겼다. 처음에는 35위안을 불렀으나.. 결국에는 15위안까지 깎아서.....-_-; 길거리에서 만들어주는 것이긴 하지만 전각 솜씨가 정말 훌륭하시더라.

 

 치바오라오쟈는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져 있었다. 더 있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다시 쉬자후이로 돌아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밤의 쉬자후이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자후이에 도착하니 아직도 날을 밝았다. 5시쯤에 도착했으니 아직도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쉬자후이 성당 앞 관광안내소. 커피숍까지 겸비하고 있어 시간때우기 상당히 좋다.)

 

 쉬자후이 성당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는데, 6시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다리도 아프고 그래서 라떼하나 시켜놓고 6시까지만 있기로 하고 앉아서 멍을 때리거나 갈 곳을 궁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쉬자후이의 어디로 가야할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윽고 5시 40분이 되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쉬자후이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ㅇ_ㅇ? 성당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뭔가 있나 했는데, 나를 알아본 성당 관리자 아저씨가 나오시면서 '20분 후에 특전미사가 있으니 들어가서 미사를 보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이런 기회가 있다니! 알고보니 쉬자후이성당에는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특전미사가 거행된다고 한다. 나는 결국 이 미사에 시간에 맞춰서 잘 오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셨나? 싶기도 하고 정말 감사하며 성당에 다시 들어갔다.

 

 

 

 

 

(쉬자후이 성당 미사와 쉬자후이 성당 야경)

 

 처음 중국땅에서 드리는 미사는 그야말로 정말 엄청난 은혜였다. 또한 여러가지의 미사양식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였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이기 때문이 매우 큰 미사여서 향이 등장하였는데, 우리나라 같이 향때문에 이리저리 사라졌다가 다시나타는 복사들이 계속 옆에 서있었다. 그것도 향을 미사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흔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대만에서 드리는 미사와 중국에서 드리는 미사경문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상당히 주목이 가는 부분이었다. 1시간이 좀 넘는 미사가 끝나고 나니 드디어 날이 어두워졌다. 예쁜 쉬자후이 성당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쉬자후이 시내로 향할 수 있었다.

 

 

 

 

 

 

 

 

 

 

(쉬자후이의 야경.. 오오)

 

 쉬자후이의 야경은 정말 휘향찬란했다. 깜짝 놀랐다. 이것이 바로 상해의 야경이구나! 싶었다. 쉬자후이는 원래 쇼핑센터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쇼핑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니와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다녔다. 특히 전기를 이용한 엄청난 양의 네온싸인이 너무 번쩍번쩍 거려서 다소 위압적이기 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날 간 와이탄과 푸동과 비교하면 흠..... 어쨌든 매우 멋있는 이 거리에 넋이 나간채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전공이 중국학이라고 하니 중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많이 들었다. 책에서 본 내용과 직접 듣는 얘기는 역시 다르더라. 그리고 상하이가 중국 경제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물가가 비싼지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진진했다.

 

(어우.. 너무 길어집니다 ㅋ 다음 3편(와이탄,포동)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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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