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단상

노대통령을 추억하며

괴나리 2012.05.23 12:55

 

 

1. 나는 원래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대구 출신이고, 주변 집안어른들이 거의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적어도 2005년, 고3때까지는 한나라당이 하는 일이 거의 다 옳은 줄 알았다. 그때까지 내가 보는 노대통령의 시각은 지금의 조중동이 보는 시각과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사실 노대통령이 2002년 당선됐을 때 부터 2008년 초 퇴임할때까지 그에 대해 한번도 좋은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2. 하지만 2006년 부터 들이 닥친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과 사회적인 일들은 나의 정치적 마인드를 좌향좌하게 만들었다. 재수하면서 본 학원 강사들의 비윤리적인 행태, 어느 집단에서에서 목격한 지나친 인텔리주의, 여러가지 사회적 공부 그리고 우리 가카의 뛰어나신 통치 실력이 나에게는 큰 화두로 다가왔고 그것을 통하여 나는 사회를 보는 눈이 더 넓어지게 되었고 여러가지로 변화가 되었다.

 

3. 2008년 노대통령께서 퇴임하셨다. 그리고 봉하로 돌아가신 그의 모습은 매우 소탈했고, 내가 기존의 본 위엄만 찾으려고 하는 전임 대통령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의 여러 전직대통령이 사회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을 부러워 했던 나는 그때부터 그의 모습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4. 2009년 2월 나는 군대를 갔다. 열심히 훈련을 받고 4월에 모 국군병원의 천주교 군종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훈련을 받던 중에 허리를 삐끗했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허리 통증이 심해진 상황이었다. 결국에는 걷지 못할정도까지 되어 염치불구하게도 선임과 함께 허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내려갔다. 아침일찍이었기 때문에 병원이 열릴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로비에 앉아서 티비를 보았는데, 그때 본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노대통령께서 검찰조사를 받을 가는 모습을 생중계 해준 것이었다.

 

5. 지나치게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그 선임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노 대통령을 신랄하게 까기 시작하였다. "빨갱이 새끼, 저런 새끼는 죽어야 한다." 이런 소리를 옆에서 마구 지껄였지만 나는 그의 힘없이 축처진 모습이 너무나도 안되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대통령에게서 불쌍함이 느껴졌고 그를 노리는 여러 사람들의 눈빛이 그려졌다. 너무나도 열이 받았고 분노했다. 그러나 이등병이 뭘 어떻게 하랴?

 

6. 5월 햇살 맑은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천주교 군종병인 나는 할일이 매우 많았다.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녀님께서 나를 다급하게 찾으셨다. 그래서 가보니 수녀님께서 티비를 가르키시며 단 한마디만 하셨다. '저것 봐!' 티비에는 '노대통령 서거'를 긴급타전하는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한나라의 대통령이 저리 허망하게 떠난단 말인가? 처음에는 실족하셨다는 얘기가 나왔고, 나는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빌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과연 누가 그분의 등을 떠민거였을까..? 나는 그 사실에 분노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당장이라도 군대의 담장을 뛰어넘어서 분향소라도 가서 향을 사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군인에 이등병이 뭘 어떻게.. 그분께서 영영 우리의 곁을 떠나시는 날, 나와 수녀님은 티비를 보며 서로 눈물을 지었다.

 

7. 얼마 후에 부대의 다른 선임이 인트라넷 홈페이지에 노대통령에 대해 추모하는 글을 몇자 적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대장은 그 선임을 불러 개인면담을 하였고, 그리고 그 글은 볼 수 없었다. 징계도 받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안받았을 수도 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1년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모셨던 국군통수권자였다. 하지만 그분을 떠나 보낸 후에 태도는 매우 어이가 없었다. 전임 국군통수권자에 대한 대우가 매우 개판이었다. 그저 현 정권과는 대비가 된다는 이유였을까? 아니면 그 때 때마침 북한에서 터뜨려준 핵실험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군대 내에서 전임국군통수권자를 대우하는 태도는 정말 형편 없었다. 그리고 순수하게 추모하고자 하는 의도 조차 묵살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서 정말 분노하였지만.. 이등병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8. 그 후 1년이 지나고, 상병이 되어 휴가를 나갔다. 나가자마자 산 것은 그때 마침 출판되었던 노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이다'였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그 분에 대해 정말 죄송했다. 이러한 삶을 살아오신 분인 줄도 모르고 그 동안 그분을 욕한 것에 대해 얼마나 통탄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브레이크 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에 화를 억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으며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을지는 몰라도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말 멋있는 남자였다.

 

9. 그 분이 떠난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나 역시도 군에서 제대를 하고 현재 대만에 나와있다.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시간도 꽤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겠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쯔위 사태와 양안 관계의 민감성 그리고 대만 선거  (5) 2016.01.16
3013년 환단고기  (0) 2013.08.07
노대통령을 추억하며  (0) 2012.05.23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