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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출발만 너무 길게 써서 힘들어 뻗었다가 지금부터 여행기를 다시 이어가려고 한다. 근데 이건 여러분이 이해를 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거면 그렇게 길게 안썼을텐데 ㅠㅠ 대만에서 출발하는거니 괜히 신기해서 그랬다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어제까지는 출발부터 상해총영사관까지 얘기를 했고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볼까나?

 

3/31 (상해총영사관-중산공원(中山公園)-정안사(靜安寺)-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광치기념관(徐光啓紀念館)-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쉬자후이(徐家淮)-숙소)

 어제까지 상해총영사관에서의 부재자 투표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오늘은 그 이후의 얘기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 상해총영사관이 있는 러우산루역에서 중산공원역까지는 매우 가깝다. 바로 한정거장 거리이기 때문이다.

 

 

(중산공원역 내부 중산공원까지 가려면 지하도를 꽤 걸어야 한다.)

 

중산공원역의 긴 지하보도를 계속 걷다보면 중산공원쪽 출구가 나온다. 그쪽에 나오면 바로 중산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어제 비가 왔지만 이날은 매우 날이 맑아서 공원을 구경하기에는 매우 좋은 날이었다.

 

 

 

 

(중산공원 입구)

 

 중산공원은 들어가보니 매우 큰 공원이었다. 사장님께서 '여기 그냥 공원인데..'라고 하셨으나 이런 시내공원을 처음 보는 그저 눈이 휘둥그레 해질 뿐이었다. 공원 안에는 호수와 물길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유유자적 배를 타고 있었고,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또한 벚꽃까지 아주 흐드러지게 펴져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고, 휴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나왔다.

 

 

 

 

 

 

(한적한 공원의 모습)

 

 사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렇게 사진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말 평화로웠고 좋았다. 가족들은 모두 피크닉을 나와있고, 비누방울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왔다. 바로 영화에서 보던 그런 광경이 아닌가 싶다 싶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폭탄테러가 나던데....-_-) 그리고 드넓은 풀밭 뒤에 보이는 높은 빌딩은 그와 비교되어 공원은 더욱 한적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특이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바로 연날리기!)

 

 날도 좋고 바람도 이따금씩 불어서였을까? 노점상들은 연을 팔고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은 연을 날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많이 봤고 또 많이 날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장소에서 이렇게 연을 많이 날리는 것은 처음 봤다. 연의 스케일도 커서 연에 이어진 실을 묶은 실패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무지 컸다. 뭐 이건 나무 판자에 실을 엄청 묶어서 날리더라. 주로 연을 날리는 분들은 나이가 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동심이 흘러 나왔다. 또 여러가지 모양의 연이 많았는데, 가장 문화적 충격이 왔던 것은 앵그리버드(;;;;;;;;)모양의 연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역시..

 

 

 

 

(춤을 즐기시고 계시는 어르신들)

 

 드넓은 풀밭 뒤에는 이런 휴게시설도 있었는데, 맨 처음에는 이 석상을 보러 갔는데, 참 좋은 풍경을 보았다. 바로 댄스 동아리에 소속되신 분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르신 여러분이 이렇게 음악도 없는데 춤 연습을 하시고 계신거였다. 석상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이렇게 여가생활을 즐기고 계신 어르신들이 더 멋있었다.

 

 

 

 

(죽원에서는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해금 연주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중산공원에는 기둥도 의자도 지붕도 모두 대나무로 만든 죽원이라는 희한한 모양의 휴게시설이 있는데, 거기서 해금 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보니 여러 어르신 들이 해금 연주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여기 뿐만이 아니라 중산공원 곳곳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 분들을 보았는데, 모두 나이가 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한가롭게 이렇게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진 마지막에 나오신 어르신은 상해시 해금연주대회에서 당당하게 대상까지 타신 전력이 있으시다고 하니 얼마나 노력을 하셨는지 안보아도 알만하다.

 

 

(싸우는거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즐기고 계신거에요..)

 

(이렇게 자신의 특기를 공연하시는 분도 계셨다.)

 

 또 중산공원에서는 여러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첫번째 사진과 같이 어르신들이 저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모습이었다. 도중에 막 큰소리를 지르시고 삿대질을 하시는 등 처음에는 싸우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에 서로 웃고 노래까지 같이 즐기시는 것을 보아서 그냥 재미난 이야기를 하신듯 하다. 그리고, 두번째 사진과 같이 어느 한 어르신 께서는 앰프까지 들고오셔서 공원에 온 사람들을 위해서 피리 공연을 하시고 계셨다. 이렇게 하시는게 직업이냐고 여쭤봤더니 직업은 아니고, 집에 있으면 할게 없어서 이렇게 나오셔서 종종 피리로 공연을 하신다고 하였다. 피리 연주가 수준급이셔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들어볼 사람은 한번 들어보자.

 

 

 

 

 

 

 

 

 

(중산공원은 참 아름다운 풍경이 많았다.)

 

 이때가 상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라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대만에서는 이것과 같은 벚꽃을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보던 벚꽃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비록 혼자였지만 상관 없어!) 그리고 이렇게 중산공원 곳곳에는 저렇게 돌로 만든 조형문들과 고풍스러운 다리가 있어 그 맛을 더욱 더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중산공원에 있는 것이 매우 좋았지만 시간의 압박도 있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에는 압박이 커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향한 곳은 정안사(靜安寺)였다. 출발하기 전에 샤오동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곳으로써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상해에 왔으면 한번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말에 바로 코스에 집어넣었고, 이렇게 향하게 되었다. 중산공원 역에서 2호선을 타고 2정거장만 가면 정안사역이 나온다. 처음에 정안사역에서 나왔는데 좀 어리둥절 하였다. 너무 높은 빌딩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과연 고풍스러운 절이 있나 싶었는데, 올라오니 깜짝 놀랐다. 빌딩 숲 사이에 이런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절이..

 

 

 

(오... 빌딩 숲 사이에 이런 절이..)

 

사실 중국 정부에서도 이 절을 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정안사는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기 때문이다. 삼국시기인 오나라때 중건된 절이니, 역사가 약 1800년정도 되었다는 얘기이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절이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에게 정안사는 잘 알려져 있고, 중국 정부에서도 이를 문화재로 당연히 지정을 해서 보존을 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30위안이고, 입장시간은 08:00~17:00이니 유념하기를 바란다.

 

 

 

 

 

(정안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안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향로와 뿌연 향연기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향을 피우고 사방으로 절을 하면서 자신의 바라는 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비록 개인의 신앙이지만 그 이상만큼 성스러워 보이는 것이 없더라.

 우리나라의 절과는 달리 절은 매우 화려했다. 일단 건물의 지붕이 황금색으로 매우 반짝였고, 지붕 양식또한 매우 건장했다. 그리고 때는 중국인의 명절은 청명절이었다. 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예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그 기회를 얻었다.

 

 

 

 

 

(경을 읽고 있는 스님들과 신도들)

 

 큰 법당으로 들어가니 저렇게 법회를 열고 있었다. 법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강론은 다 끝난것 같고 스님들과 신도들은 앉아서 경을 외우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매우 오묘했다. 같이 들어갔던 서양인들도 매우 오묘하고 신기한 이 분위기에 매우 매료된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법회와는 좀 다른 것은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사방에는 불상이 있었고 그 앞에서 신도들은 열심히 절을 드렸고, 또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 가만히 있는 사람, 무언가를 바치는 사람 등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앉아서 경을 읊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은박지를 접으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그것을 만드는 할머니께 무엇을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것이 지전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저승에서 잘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지전을 접어서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옆에 큰 포대를 두시고 그 지전을 접으시는 할머님은 한포대정도 집에 돌아가실거라고 말하시더라. 굉장히 대단하신 것같았다. 그리고 절이나 교회, 성당에서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우리네 할머님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은 늙었으니까 나의 자식들 또 이미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과 조상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 순수한 믿음이 생각나며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안사의 수많은 불상들)

 

 정안사에는 불상들이 매우 많았다. 절에 가서 불상 함부로 찍으면 안된다는 말을 들어서 '한국인 관광객인데 불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러니 사진을 찍으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하시며 대신 플래시만 터뜨리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렇게 불상을 찍을 수 있었다. 일단 불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의 사진은 관세음보살, 마지막사진은 석가모니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더라.. -_-  그 중에 흥미가 가는 불상이 있었는데, 세번째 사진의 불상이다. 나처럼 퉁퉁한 부처님이 앉아서 정이 가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한결 정이 갔다. 나도 저 부처님 처럼 사람들에게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것 같아서 그 앞에서 반성을 하였다.

 

 정안사를 구경을 하고 나서 쉬자후이(徐家淮)로 향했다. 쉬자후이는 상해 서부의 중심권이다. 수많은 쇼핑센터와 높은 빌딩이 있는 쉬자후이는 명나라 때 서광계(徐光啓)라는 과학자이자 관리가 은퇴 후에 이곳에 자신의 일족을 살게끔 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특히 서광계는 서양 과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에서 서양의 문물이 처음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정안사에서 쉬자후이역을 가려면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한다. 7호선 정안사역에서 한 정거장을 가면 1,7호선 창쑤루(常熟路)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두정거장을 내려가면 쉬자후이(徐家淮)역에 도착한다. 쉬자후이는 앞서 말했다시피 서양의 문물이 최초로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의 문물과 현대의 문물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서양의 문물의 상징이자 쉬자후이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쉬자후이성당(徐家淮天主堂)으로 갔다. 쉬자후이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볼 수 있다.

 

 

 

(천주교 상해교구청과 쉬자후이 주교좌 성당)

 

 쉬자후이 성당은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불과 50여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현재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은 어딜까? 바로..... 우리나라 논산에 있는 군종교구 육군훈련소 김대건 성당.... 어쩔 수 없다..) 1607년에 로마식으로 지었던 이 성당은 아시아 선교의 전진기지로써 역할을 해왔고, 그와 함께 중국에 서양문물을 전달하는 주요 관문이 되었다. 또한 천주교신자였던 서광계가 이곳에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과학적인 성과를 냈던 장소기도 하다. 또한 한국 천주교와도 연관이 있는 곳인데, 바로 한국 천주교에서 2번째로 사제서품을 받으신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으신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의 성당은 1906년 재개발에 들어갔고 1910년에 지금의 성당을 지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상해에 상륙하고, 중국 공산당이 상해를 점령했을 때도 이러한 역사를 인정받아 쉬자후이 성당에서 가톨릭 전례를 허가 받았으나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첨탑이 잘려나갔고, 성당은 폐쇄가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에 다시 종교행사가 거행되면서 상해 천주교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공산당은 사제서품과 주교서품을 자기 맘대로 하고 있지..-_-..

 

 쉬자후이 성당은 관람시간이 따로 있다.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성당 내부를 관람할 수가 없다. 다만, 예외는 있는데, 천주교 신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관람시간에 관계 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나의 경우, 성당 앞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니 관리자 분이 관리소 안에 나와서 안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 저 한국에서 온 한국인 신자인데요.. 성당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러냐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셨다. 그 덕분에 뒤에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저놈은 왜 들어가고 우리는 왜 못들어감?'그렇게 실갱이가 벌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천주교 신자라고는 하지 말자.. 전적으로 양심에 걸린 문제니까..

 

 

 

 

 

(쉬자후이 성당 외부)

 

 쉬자후이 성당 외부를 보니 갑자기 우리나라의 명동성당이 생각이 났다. 좀 많이 주변이 다르긴 하지만 번화가의 중심지에 있고 각각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고 현재까지도 랜드마크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이 천주교를 탄압하고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와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도하는 모습 자체가 우리나라 신도들 보다 더 성스러워 보이더라. (하지만, 중국이 천주교를 탄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중국은 애국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그 조직의 성당에서의 종교활동은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공산당은 꾸준히 애국회를 통해서 중국천주교회에 엄청나게 간섭을 하고 있고, 교황청의 고유권한인 사제서품권, 주교서품권을 맘대로 이용해서 바티칸과 갈등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도 교황청의 말만을 따른 지하교회가 있는데, 그곳은 엄청나게 탄압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수많은 지하교회의 신부님과 주교님들은 중국 감옥 내에서 죽어가고 있다.)

 

 

 

 

 

(쉬자후이 성당 내부, 고해소, 성물판매소)

 쉬자후이 성당의 주보성인은 바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예수회의 창설자 이자 지금도 많은 곳에서 존경 받고 있는 성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좀 어울리지 않는데, 이 곳의 주보성인이 성이냐시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607년 당시에 처음 선교를 왔던 선교사들이 전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아주 유명했던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 역시 예수회 신부님이셨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한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내부는 보면 볼 수록 명동성당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시에 주님수난성지주일이었기 때문에 성당안은 이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이곳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되지만 관리소에 간곡한 호소를 하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가능하다.

 

 오랜만에 가는 큰 성당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조금 묵상을 할 수 있었고, 또 여러 중국 신자들도 묵주알을 굴리거나 묵상을 하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성물 판매소가 있길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묵주팔찌를 2개 샀다. 이 또한 관리자 아저씨의 배려로 조금 깎아서 살 수 있었으니.... 이는 필시 관리자 아저씨가 나를 잘 본 것임에 틀림 없어!!!

 

 쉬자후이성당을 나와서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오른쪽에 큰 여행안내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가지 팜플렛과 안내를 받았다. 원래는 다른 곳에 가려고 했었으나 (그 주변에 유명한 학교도 있고 여러가지 유적이 있다.) 학교는 문을 닫고 여러군데는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서광계의 묘가 있는 서광계기념관에 가기로 하였다.

 

 

 

(서광계 기념관 가는 길)

 

 이곳 쉬자후이는 서광계의 동네라는 말이 맞다. 앞서 설명한 유래도 그렇고 곳곳에 저렇게 서광계의 동상이 있어 쉬자후이에서 서광계는 어느 위치의 인물이며 상해인들이 얼마나 서광계를 존경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서광계 기념관 정경)

 

 서광계 기념관은 마치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한 가운데에는 서광계의 묘가 조성이 되어 있었고 주변으로는 서광계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동상이 놓여 있었다. 또한 많은 나무 아래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저렇게 장기를 두시거나 마작을 하셨다. 서광계의 묘 앞에는 굉장히 특이한 것이 있다. 서광계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증명시키다 시피 큰 십자가가 그의 묘역 앞에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라틴어와 중국어로 된 주님의 기도가 새겨져 있었다. 다소곳하게 묵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어르신들이 여러가지 놀이를 즐기고 계셔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과학자로서의 서광계의 모습을 저렇게 보여주고 있는데, 서광계는 서양역법을 중국에 도입해서 중국에 굉장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고 거의 최초로 서양인들과 엄청난 교류를 맺었던 사람이기에 중국에도 지금까지 회자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서광계 기념관을 떠나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강남지역에는 수상마을이 굉장히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곳이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抗州).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패키지 여행으로 가는 곳이고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상해에서 쑤저우는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그곳을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상해 근교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치바오라오쟈(七寶老街)에 가기로 하였다. 쉬자후이역에서 9호선을 타고 약 20분 정도를 가면 치바오라오쟈가 있는 치바오(七寶)역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상해의 근교여서 그런지 쉬자후이와는 완벽히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딱봐도 변두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치바오라오쟈에 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사람은 매우 많았다.

 

 

 

 

(치바오라오쟈 입구)

 지하철역에서 약 5분정도 걸으니 치바오라오쟈 입구가 나왔다. 별로인 모습에 실망할 뻔했지만 이것은 치바오라오쟈의 그저 입구일 뿐이었다. 치바오의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안으로 더욱 들어가야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치바오라오쟈)

 

 조금 더 걸으니 바로 아치형 다리가 나왔는데 '아 이곳이 치바오라오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다리에 올라가서 건너려고 하니 그 주변에 들어오는 경치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배와 아치형 다리는 그야말로 절묘한 조합을 이루었다. 그다음 바로 관광지역 옆이 주거지역이었기 때문에 강 주변에 널려 있는 빨래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단점이 있다면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거.

 

 치바오라오쟈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난리가 난다. 길은 좁은데 양옆으로는 상점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정말 가만히 서있어도 앞으로 가는 이 느낌은 바로 신도림역에서나 느낄 수 있는 느낌이었다. 치바오라오쟈는 원래부터 만두가 상당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만두를 사서 먹었는데, 상당히 맛있더라. 그리고 양옆으로 족발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치바오라오쟈의 갖가지 볼거리)

 

 치바오라오쟈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상당히 먹을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게 흠이고, 그다음에 제대로 된 기념품이 없는 것도 흠이었다. 오로지 먹을것만;;;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것을 보았다. 어떤 걸인이 구걸을 하는데, 그냥 구걸을 하는게 아니라 길바닥에 백묵으로 저렇게 글을 쓰고 구걸을 하더라. 거의 20m에 걸쳐 쓴 저 글씨는 상당히 명필이었다. 또 여러가지 글을 쓰시는듯 지웠다 썼다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매우 신기하였다. 또한 다리에서 넘어가니 저렇게 돌에 여러가지 문양과 글을 새겨주고 목걸이로 만들어주기도 하더라. 도중에는 '사랑해'라는 한글 구절이 새겨져 있기도 하여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값도 비교적 싸고 치바오라오쟈에서는 특색있는 기념품이 없길래 돌에 나무와 이름을 새겼다. 처음에는 35위안을 불렀으나.. 결국에는 15위안까지 깎아서.....-_-; 길거리에서 만들어주는 것이긴 하지만 전각 솜씨가 정말 훌륭하시더라.

 

 치바오라오쟈는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져 있었다. 더 있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다시 쉬자후이로 돌아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밤의 쉬자후이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자후이에 도착하니 아직도 날을 밝았다. 5시쯤에 도착했으니 아직도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쉬자후이 성당 앞 관광안내소. 커피숍까지 겸비하고 있어 시간때우기 상당히 좋다.)

 

 쉬자후이 성당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는데, 6시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다리도 아프고 그래서 라떼하나 시켜놓고 6시까지만 있기로 하고 앉아서 멍을 때리거나 갈 곳을 궁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쉬자후이의 어디로 가야할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윽고 5시 40분이 되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쉬자후이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ㅇ_ㅇ? 성당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뭔가 있나 했는데, 나를 알아본 성당 관리자 아저씨가 나오시면서 '20분 후에 특전미사가 있으니 들어가서 미사를 보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이런 기회가 있다니! 알고보니 쉬자후이성당에는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특전미사가 거행된다고 한다. 나는 결국 이 미사에 시간에 맞춰서 잘 오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셨나? 싶기도 하고 정말 감사하며 성당에 다시 들어갔다.

 

 

 

 

 

(쉬자후이 성당 미사와 쉬자후이 성당 야경)

 

 처음 중국땅에서 드리는 미사는 그야말로 정말 엄청난 은혜였다. 또한 여러가지의 미사양식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였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이기 때문이 매우 큰 미사여서 향이 등장하였는데, 우리나라 같이 향때문에 이리저리 사라졌다가 다시나타는 복사들이 계속 옆에 서있었다. 그것도 향을 미사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흔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대만에서 드리는 미사와 중국에서 드리는 미사경문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상당히 주목이 가는 부분이었다. 1시간이 좀 넘는 미사가 끝나고 나니 드디어 날이 어두워졌다. 예쁜 쉬자후이 성당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쉬자후이 시내로 향할 수 있었다.

 

 

 

 

 

 

 

 

 

 

(쉬자후이의 야경.. 오오)

 

 쉬자후이의 야경은 정말 휘향찬란했다. 깜짝 놀랐다. 이것이 바로 상해의 야경이구나! 싶었다. 쉬자후이는 원래 쇼핑센터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쇼핑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니와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다녔다. 특히 전기를 이용한 엄청난 양의 네온싸인이 너무 번쩍번쩍 거려서 다소 위압적이기 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날 간 와이탄과 푸동과 비교하면 흠..... 어쨌든 매우 멋있는 이 거리에 넋이 나간채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전공이 중국학이라고 하니 중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많이 들었다. 책에서 본 내용과 직접 듣는 얘기는 역시 다르더라. 그리고 상하이가 중국 경제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물가가 비싼지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진진했다.

 

(어우.. 너무 길어집니다 ㅋ 다음 3편(와이탄,포동)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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