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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올려야 하는데 이러저러한 일로 그러지 못하고 한달이 넘은 지금에서야 올린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추억은 살아 있으므로, 여행기를 적기에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대만 징이대학(靜宜大學, 정의대학)에서는 교환학생과 외국학생을 대상으로 대만문화체험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에서 유명한 문화를 손수 체험함으로써 대만에 대해서 더 친근하고 더욱 많이 알게끔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대만 문화를 손수 체험함으로써 대만에 대해 점점 빠져들고 있다. 나도 그렇고 ㅋㅋㅋㅋ

 

이 대만문화체험코스에는 2차례에 걸쳐서 1박 2일간 여행을 간다. 일단 수업의 일환이지만 일단 체험이 우선이므로 여행하는 재미로 이 여행을 가게 된다. 첫번째는 지난번 3월 4일부터 5일까지 다녀왔던 가오슝(高雄) 메이농(美濃)지역의 하카문화 체험과 타이난(臺南) 역사 문화 체험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4월 28일 부터 29일까지 가게 될 이란(宜蘭)지역 전통 예술문화 탐방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여행은 첫번째에 다녀온 하카문화, 타이난 역사문화 탐방이다.

 

사실, 이 여행을 가기 전에 상당히 부담이 됐었다. 토요일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으며, 2월에는 주말마다 가까운 곳이든 먼곳이든 여행을 다녀와서 정말로 힘들었다. 사실, 이 여행을 다녀온 다음에는 기력을 다했는지 며칠동안 몸이 좋지 않기도 했었다.

 

이날 타이중(臺中)시에는 조금씩 비가 와서 으슬으슬 추웠다. 대만의 늦겨울 날씨라는 것이 당연히 한국보다는 온도가 높지만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추위(춥지는 않은데, 공기가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뼈가 시리듯 기분 나쁘게 춥다.....)때문에 한껏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옷도 여러벌 준비를 했고 여러가지로 탄탄하게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한가지 잊고 있던게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남대만임을..-_-

 

중대만 까지는 기후상으로 아열대 기후에 속하고 어느정도 4계절이 남아있지만, 남대만지역은 기후상으로도 열대지역에 속한다. 겨울에도 2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인데, 이때는 오죽 했을까? 타이중에서 가오슝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실 좀 후회를 했다. 왜냐하면 휴게소에 내리니.. 그곳은 해가 비치고 여름 날씨가 펼쳐져 있었기 떄문이다.. 가오슝 메이농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날씨는 습하고 날씨는 매우 따듯했다. 여름이었다.

 

우리가 첫째날 방문한 곳은 메이농이었다. 메이농과 치산(旗山)지역은 예로부터 하카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하카족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원주민들은 아니다. 한족의 한 갈래로써 후한시기에 중원에서 살고 있던 명문가의 자손들이다. 그런데, 한나라가 망하고 삼국시기가 도래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서진시기에 영가의 난이 터져버리면서 이 명문가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남하한다. 그리고 그때의 풍습을 지키고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면서 1200년동안 살아오게 되는데, 바로 그들이 우리가 말하는 하카족이다. 현재도 중국의 푸젠(福建)성, 광둥(廣東)성 등지에 많이 사는데, 이곳에서 살던 하카족들이 명 이후부터 대만에 넘어오게 되면서 지금도 대만의 제 3의 민족으로써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대만의 전 총통인 리덩후이(李燈輝), 현 총통인 마잉주(馬英九)등이 하카인의 피를 물려받았다.

 

처음 간 곳은 하카의 민속촌이었다. 일단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하카 전통 음식점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일본인인 수잔, 그리고 한국인인 나와 수빈이를 제외하고는 홍콩계 스웨덴인인 에미를 빼고는 전부 서양인이었기 때문에 하카족의 전통식단에 대하여 기대반, 우려반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메이농 민속촌의 모습. 보다시피 하카지역의 건물의 모습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하카의 음식)

 위 사진에 보다시피, 하카의 음식은 중국의 음식과는 별 다른 것이 없게 보인다. 그러나, 중국음식보다 적은 기름을 써서 만든 음식들과 자연의 정취를 그대로 표현하려는 것이 하카 음식의 특색이다. 그 중에 가장 독특하게 생각했던 것은 튀김 비슷한 것이었는데, 겉에는 바삭바삭하게 실 모양으로 튀기고, 안에는 분홍색 고구마를 넣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서양 친구들도 다른 음식은 그냥 그랬지만, 이 음식만은 정말 맛있게 뚝딱 해치웠다.

 

 식사를 마치고 찻집으로 이동을 했다. 찻집은 식당의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맑은 차를 파는 곳이 아니라 하카의 전통차인 밀차를 만드는 곳이었다. 밀차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는데,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차였다. 이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절구와 공이 그리고 각종 곡물이 필요한데, 각종 곡물을 절구에 넣고 갈아서 만든 분말로 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러한 차를 마셔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매우 신기해 했다.

 

 

(이것이 바로 밀차의 준비물, 각종 곡물과 콩가루가 준비가 되어 있고 절구, 공이등이 준비되어 있다.)

 

 

 

 

 

 

(준비가 되었으면 저렇게 공이를 원을 그리며 갈아주면 된다. 가는거 무쟈게 재밌다. 사진 위에서부터 위진, 그다음 내가 미친듯이 가는 모습)

 

 나는 예스퍼와 함께 켈리의 3남매를 돌보면서 밀차를 만들었는데, 애들이 엄청나게 좋아했다. 역시 애들이어서 그런지 갈다가 손대서 먹다가 갈다가 손대서 먹다가... 아마 어른이 그랬으면 나한테 한소리 들었을텐데, 귀여워서 그냥 두었다. (그러다가 밀차 분말 다 없어질 듯) 어쨌든 여러사람의 노력으로 분말을 곱게 갈아서 각자 마련된 컵에 넣었다. 여기서 기호에 따라서 찬물이나 더운물을 넣어도 되고, 설탕을 넣어도 된다더라.

 

 

(짜잔! 그렇게 만든 밀차다. 근데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이다....)

 

이윽고 밀차가 만들어졌고, 나는 그것을 시식하기에 이른다. 근데, 어디서 많이 맛보던 맛이지 않은가? 바로 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던게 있었으니. 바로 그것은 우리나라의 미숫가루였다. 옛날에 더운 여름날에 어머니가 얼음 동동 띄워서 만들어주시던 시원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그 미숫가루와 같았다. 하지만 쌀을 튀겨서 만든 튀밥을 차에 동동 띄우고 더운물로 먹는 이 밀차는 좀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애들 장난을 받아주다가 이윽고 이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나와 버스를 타고 메이농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찻집 앞에 이것이 있더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펌프로 노는 우리 켈리네 3남매)

 

바로 펌프였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펌프에 신기해 했고, 다른 서양인들도 매우 신기해 했다. 사진처럼 우리 귀여운 켈리네 3남매는 말할것도 없다. 옷 젖어가는지 모르고 놀더라.

 

그래서..

 

 

 

나도 이러고 놀았다.......(진정하세요 아저씨....)

 

다음 볼 곳인 메이농 마을을 보기 전에 가이드와 합류를 하였다. 가이드분은 나이드신 하카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메이농지역 토박이 이시며, 정년퇴임을 하시고 관광객을 위해서 가이드를 하시고 계시는 거였다. 젊은 우리들도 습하고 더운 날씨에 헉헉 댔는데, 이 할아버지는 매우 정정하고 당당하게 우리를 이끌고 돌아다니셨다.

 

 

(친절하신 가이드 할아버지. 원래 이렇게 생기신 분은 아닌데.. 사진이 참.... 죄송해요 할아버지 ㅠㅠ)

 

맨 처음 방문한 곳은 하카의 전통 사당이었다. 대만에는 어디서든지 사당을 볼 수 있다. 신의 종류도 많아서 불교 사당도 있고, 도교 사당도 있고, 마조여신의 사당도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족들의 평안을 빌곤 하는데, 하카인들도 역시 자신들의 사당을 지어놓고 신을 모셔놓았다.

 

 

 

 

(사당의 모습, 사당은 이렇게 큰 나무 아래에 모셔져 있다.)

 

갔을때는 아무도 없어 한적한 모습이었지만, 마을 축제가 있을 때는 여기가 중심이 되어 가장 왁자지껄 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신을 모셔놓은 신주는 큰 나무 아래에 있었다. 세계 어디든 큰 나무는 어디서든지 신으로 존경을 받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도 서낭당이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뭔가 재밌는 것을 꺼내셨는데...

 

 

(바로 이거.)

 

반달 모양의 빨간 뿔이었다. 이것은 운세를 점치는 하나의 도구인데, 신년이나 이럴때 이것으로 한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개인이 와서 고민이나 바라는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이용하여 점을 친다고 한다. 점을 치는 방법은 이러하다. 1. 자신의 소원을 빈다. 2. 저 뿔을 윷던지듯 바닥에 던진다. 3. 그럼 점이 나온다. (웬지 허무하다...-_-)  떨어진 저 뿔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 매우 좋은 운수이고 반대방향을 보고 있으면 매우 안좋은 점괘란다. 그리고 모두 한방향을 보고 있으면 그저 그런 운세라고 한다.

 

사당을 구경하고 나서 메이농요(美濃窯)에 갔다. 메이농 지방은 예로부터 흙이 좋아서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메이농의 가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메이농요이다. 지금은 상업적으로 바뀌어서 이곳에서 도자기를 손으로 직접 만들어 대량 생산을 하고, 이곳의 사장님은 대만에서 알아주는 도예가라 하신다. 메이농의 주요 관광코스로 꼽힐 만큼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메이농요는 대문부터 이렇게 꽃이 많았다. 매우 아름다웠다.)

 

 

 

 

(참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많이 있었다. 담벼락도 전부 도자기로 만들었다.)

 

들어가니 주인장이 만든 도자기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곳 사장님은 대만에서 엄청 유명한 도예가여서 대만 주요 공공시설의 테라코타와 작품들을 이 분이 많이 만드셨다고 한다. 메이농 전통의 방식 그대로 말이다. 가장 대단했던건 10m정도되는 작품을 직접 구워서 혼자서 다만드셨다고.. 참 대단하시다. 도자기도 팔았는데 참 예쁜게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것은 찻잔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사지는 못했다.

 

하카특유의 문화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종이 우산이 아닐까 싶다. 종이로 만든 우산이라.. 참으로 희한하게 여겨지겠지만, 종이로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한지로 우산을 만들 수 있더라. 이곳 대만에는 하카어로 만드는 하카텔레비전이 있는데, 거기 마스코트가 종이우산일 정도로 종이우산은 하카인들의 예술품이고 자부심이고 마스코트였다. 우선 종이우산을 구경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통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카의 전통집이다. 처음부터 집의 중심인 사당에 들어가기까지의 모습이다.)

 

하카의 전통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의 집보다 상당히 화려했다. 지붕부터 저렇게 장식이 많아 상당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빨간색을 많이 써서 그 화려함이 더욱 부가되었다. 그리고 하카의 전통집은 저렇게 한 가족의 집이 아니라 집 가운데에 사당을 두고서 주변에 많은 가족들이 몰려사는 공간이었다. 일종의 그시기의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마도 집안 사당에는 조상님을 모셔두고 있는 것을 보아 같은 씨족이 살고 있지 않나 싶었다. 지금도 역시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당을 지나고 나니 드디어 전통우산을 만드는 공방에 도착했다.

 

 

 

 

 

(하카인들의 종이우산. 예쁘다.)

 

하카인들의 종이우산은 은은한 단아함이 있었다. 모든 우산에는 저렇게 예쁜 그림이 있었는데, 한층 멋을 살려주었다. 우산 공방에는 우산을 만들고 있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직접 사모님이 우산을 손수 만들고 계시더라. 비가 많은 이 메이농지역에서 우산은 필요 물품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많이 나는 대나무와 손쉽게 만들 수 있었던 종이로 저렇게 우산을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이 우산을 만드시는 모습)

 

 하카인들의 전통종이우산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일단 좋은 대나무를 구해 저렇게 쪽을 나눈 다음에 말린다, 다 마르면 저렇게 살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몇겹 붙인다. 그리고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우산의 대와 대를 엄청나게 튼튼하게 실로 연결한다. 그리고 종이 위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나 글을 적는다. 그리고 바로 쓰면 비올때 비가 다 새버리겠지. 여기서 특별한 과정이 들어간다. 며칠에 걸쳐서 우산에 종이부분에 기름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저렇게 하면 물이 종이를 뚫고 지나가지 못할 뿐더러 몇겹으로 겹쳐져 있는 종이가 더욱 튼튼해져서 마치 플라스틱 처럼 변한다. 그리고, 이 그림이 더욱 고풍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카인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우산을 하카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우리는 조그마한 종이인형과 종이우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만든 종이인형)

 

나는 원래 손재주가 정말 없는 놈이라 뭘 만드는 것을 잘못하는데, 이 종이인형은 숙소 주인 아주머니의 영도에 따라서 정말 예쁘게 만들어졌다. 저렇게 만들어서 책갈피로 쓸 수 있었다. 원래 이것은 하카의 전통 방법인데, 하카스타일로 만들기는 좀 어렵다고.. 일본스타일의 인형을 만들었다.. 어쨌든 참 예쁘게 된듯?

 

그다음 종이우산 만들기였다. 뭐 별것은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우산에 그저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그리기를 정말로 못하기에 -_-; 또 희대의 역작이 하나 나와버리고야 말았다.

 

 

 

 

 

 

(포즈는 뭔가 하나 나올 분위기인데...... 참..... -_-)

 

여자애들은 되게 예쁘게 잘 만들더라.. 그러나 나는 ㄱ-.... 이 우산은 바로 주인 아주머니가 기름을 바르고 말려서 다음날 상자에 넣어주셨다. 비록 전통방식을 아주 약간 따라하긴 했지만, 매우 재밌었던 활동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해결하고 메이농을 떠나야 했다. 바로 역사도시 타이난에 가기 위해서이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해서 알 수 없었는데, 숙소의 아침은 매우 아름다웠다.

 

 

 

 

 

 

 

(예술인의 집, 인자산장)

 

이 풍경을 보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하였고, 덥지만 않으면 정말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하여 타이난에 도착하였다. 타이난은 현재 대만의 제 4의 도시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구정도 되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대만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역사에 기록되기 이전에도 원주민들이 살아왔지만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6c때이다. 바로 네덜란드인이 이 곳 타이난에 와서 질란디아라는 식민지를 세우고 개척했다. 그들보다 조금 늦게 스페인 인들이 타이베이 근교에 상륙하여 그곳에 또 식민지를 세웠다. 바로 네덜란드인들이 이곳을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의 Formosa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대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타이난에서는 여러가지 역사 고적들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타이난 문묘(臺南文廟)와 옛 네덜란드 총독부였던 안평고보(安平古堡)를 가기로 하였다.

 

 

 

 

 

(타이난 문묘. 맨 마지막은 영정사진이 아닙니다. -_-)

 

 타이난이 가장 오래된 도시 답게, 이 곳에도 가장 오래된 문묘가 있다. 문묘란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우리로 따지면 서원이나 향교정도 되겠다. 이곳에서 제사 뿐만 아니라 교육도 담당했으니까.. 공원처럼 꾸며진 문묘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엄숙한 사당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앞에서 운동하고 재밌게 노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공자님도 엄숙함 보다는 이런 자유로운 모습을 좋아하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곳이 얼마나 유명한지 우리가 갔을 때, TV프로그램에서 촬영을 와있었다. 나는 뭐 변장한 사람이 돌아다니길래 그냥 옛모습을 재현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무슨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것 같았다. 조금 그들을 구경하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문묘 길 건너에는 문묘노가라고 해서 오래된 야시장이 있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아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듯 싶었다.

 

 두번째 간 곳은 안평고보였다.

 

 

 

 

 

 

 

 

안평고보는 대만인들에게 역사의 공간이자 자부심의 공간이다. 이곳에 1624년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와 질란디아라는 총독부를 세우고 대만 남부를 다스렸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항구로써의 기능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대륙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정성공이라는 인물이 복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대륙에서의 세력을 잃고 대만으로 들어왔다. 정성공은 165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본거지인 안평고보를 치열한 전투끝에 차지하고 네덜란드인을 몰아냈고, 이곳에서 정씨왕국을 세우게 된다. (얼마 못가서 청나라가 들어오긴 하지만) 지금도 대만의 많은 길 이름이 성공로 이며, 성공구도 있고 심지어 국립성공대학까지 있을 정도로 정성공이 대만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정성공의 동상 밑에 민족영웅이라고 불리고 있고, 지금 현재까지도 국성야(國姓爺)라는 별칭으로 국부로써 추앙받는다. 이곳에는 당시의 유물들과 허물어진 서양식의 성벽 그 다음에 당시 네덜란드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들이 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이곳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 매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었다.

 

안평고보 앞에는 시장이 있는데, 참으로 복잡하고 맛있는것도 많이 팔았다. 약 2시간정도의 자유시간을 갖게된 우리는 서로 흩어져서 안평고보 근방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나는 혼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안평고보에서 얼마 안떨어진 천후궁에는 엄청난 수의 신자들이 몰려들었고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려서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다. (비하의 의미가 아님)

 

 

 

 

 

 

 

 

(안평고보 근처의 볼거리, 안평천후궁, 안평성당, 안평 옛 성터 그다음 수많은 묘지들)

 

안평고보는 또 천주교가 대만에 맨 처음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성당과 함께 천주교 기념관이 있다. 천주교 기념관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성당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기도도 하고 신부님도 만나서 차도 한잔 하였다. 또 안평고보 근처에는 옛 성벽과 포대가 남아 있는데, 그 양식이 동양식이 아니라 서양식의 모습으로 남아있어서 매우 신기하였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것은 수많은 묘지들이었다. 그것도 안평 성당 앞에 엄청난 숫자의 묘지들이 있었는데,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까지 묻힌 묘지라고 한다. 시내에 저렇게 묘지가 있는 것을 봐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연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이번 여행을 하고 나서 참 재미 있었고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있었다. 뭐랄까 시간에 쫓겨서 돌아다닌다는 기분이 들었고 체험도, 역사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그 점이 아쉬웠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참 짧은 시간이지. 그래서 시간이 나면 타이난이나 메이농을 다시한번 와보려고 한다. 그때 다시 기분이 좋았다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은 대만의 최남단 컨딩 여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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