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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날이 밝았다!! 샤오동이 11시에 체크아웃이라고 해서 10시쯤에 일어나도 될것 같았지만, 8시 쯤에 눈이 떠졌고, 살며시 눈을 뜨고 보니 여자애들은 씻느라 동분서주하더라. 남자애들은 아직도 안일어난 상태이고..
 
 바깥을 보니 어제 보았던 야경은 사라지고 루깡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루깡의 모습, 전형적인 시골 읍내 모습이다.)

 지금 루깡은 저렇게 쇠락한 시골동네 같지만 1900년 초만 하더라도 인구 10만이 살던, 대만 제2의 도시였다. 바다와 가깝고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하천이 루깡의 중심으로 들어와서 굉장한 상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때 대만을 루깡을 중심으로 루깡 북쪽을 샹깡(上港), 루깡의 남쪽을 샤깡(下港)이라고 했을 정도니 당시 루깡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철도를 개설하면서 당시 대도시였던 루깡을 비껴가게 했는데, 이 결과로 루깡은 쇠락하게 되었다. 대신, 뜬 곳이 타이중이다. (웬지... 우리나라로 보자면 대전과 공주를 보는 느낌이다..) 지금 현재, 대만의 민속문화를 가장 잘 보존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루깡을 찾는다고 한다.

 씻고 와보니 남자애들도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빈이 말로는 나의 우렁찬 코고는 소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설쳤다고... 나는 배려한다고 굉장히 늦게 잤는데.. ㅠㅠ 코골이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나...

 모두 준비를 끝내고 10시 쯤에 호텔을 나왔다. 알고보니 이호텔 이 근방에서는 가장 유명한 호텔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묵고, 루깡에서 가장 유명한 천후궁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많은 조형물들이 있었고, 로비도 저렇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서 한컷.)

 먼저 밥을 먹으러 루깡 거리를 돌아다녔다. 토스트집에 들렀는데, 많은 사람들은 토스트와 전병을 시켜서 먹었다. 나는 어제 먹었던 밥이 소화도 안되고 토스트를 좋아하지 않아 간결하게 녹차만 먹었다. 그후에 루깡의 최고 명물인 천후궁을 관광하러 갔다. 천후궁에는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있었고 그 앞에는 폭죽을 마구 터뜨려서 화약냄새와 연기 그리고 전통음악, 그리고 가면행렬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중국 혹은 대만의 폭죽 소리를 처음 들었기 때문에 마치 테러현장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사진만 봐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보면 바닥에 붉은것이 막 흩어져 있는데, 폭죽을 쌌던 종이다. 그리고 간혹 뿌연 사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폭죽을 터뜨린 연기이다.. 그래도 대만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재밌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천후궁 앞의 화려한 등불, 음악 그리고 가면, 폭죽 등으로 악귀를 내쫓고 한해의 풍어와 재복을 빈다.)



 

(분위기를 더욱 느끼고 싶으신 분은 동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후궁은 어부들의 수호신인 마조여신을 모셔놓은 사당이다. 이 마조여신은 전설에 의하면 10c경의 푸젠성에 살던 한 아가씨였는데, 승천하여 선원들의 여신이 되었고 특히 해상구조등에서 특별한 영력을 펼쳤다고 한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마조여신을 천후로 봉했고 그 이후 그녀의 사당은 천후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마조여신은 농사를 많이 짓던 북쪽지역보다는 바다를 끼고 있던 남쪽지역에서 더 많이 추앙받았는데, 현재도 중국 대륙 남부의 연해,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까지 넓게 추앙받는다고 한다. 루깡의 천후궁은 대만에서는 가장 오래된 천후궁이며 그리고 가장 유명한 천후궁이라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사당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오오.. 경건하다..)

들어가자마자 큰 향로가 하나 있었다. 자유롭게 금액을 시주하고 향을 받아서 불을 붙이고 저렇게 향로에 넣는다. 중앙에 있는 향로는 보다시피 매우 크고 첫번째 향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저 향로에 먼저 절을 하고 향을 분향한다. 그리고 꽃는게 아니라 밑으로 던지더라.

(저 가운데 계신 분이 마조여신이다.)

(애정을 관장한다는 신)



(천후궁 가운데에는 저렇게 분수가 있는데 용의 입에 동전을 넣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경건하게 참배하는 대만인들)

(붉은 등불들)

 바깥도 시끄럽고 경내도 약간은 시끄러웠지만, 대만인들의 참배는 굉장히 성스러웠다. 향을 들고 연속적으로 허리를 굽히는 절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이 사람들의 각각의 소원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천후궁 구경을 하고 본격적으로 루깡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루깡의 거리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런정도의 거리를 굳이 비교하자면 아마 서울의 명동이나 대구의 동성로 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만 등불축제와 겹쳐서 사람들은 더욱 많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거리마다 용모양으로 된 등불이 많이 걸려 있었다.


 약 3km정도를 걸어다녔는데, 용모양의 등불은 저렇게 계속 이어져 있더라. 오오.. 정말 대단했다. 중국아이들도 이러한 광경은 처음 보았는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리에는 맛있는 음식도 되게 많았다. 갖가지 음식이 많았는데, 특히 이 루깡은 만두가 유명하다고 한다. 일부 만두집 앞에는 사람들이 무쟈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 많은 인파를 뚫고 가던 중에 루깡민속전시관에 들렀다. 샤오동과 스티븐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지 다른 곳으로 갔고 우리들은 이 루깡민속전시관에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려고 하려 했는데, 우리 이쁜 발레리아가 자기가 수빈이와 나의 입장료를 내겠다고 하였다. 땡큐 발레리아!! 하니 특유의 귀여운 표정으로 웰컴을 외친다.

(루깡 민속문물전시관 내부)
길거리에 있던 민속전시관이 매우 후줄근하게 생겼길래 별기대 안하고 들어갔으나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건물이 고풍스럽길래 놀랐다. 내부에 있는 민속유물들도 굉장히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청천백일만지홍기)


(기념으로 2컷 찍었다-_-)




 


 

(이런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었다.)


신나게 관람을 하였다. 사실 민속문물에 대한 관심 보다는 루깡의 역사가 더 끌렸고, 참고로 이 전시관의 구조가 더욱 관심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 곳은 원래 어떤 분의 저택이었다. 이 분은 원래 루깡의 민속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루깡의 민속문물을 수집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 공로로 리덩후이(李登輝)총통에게 표창을 받았고, 돌아가실때 자신의 집을 민속문물전시관으로 만들라고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한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민속 전시관의 관람을 끝마친뒤 우리는 롱샨사(龍山寺)로 향했다. 아까 천후궁은 마조여신의 사당이라면 롱샨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불교 사찰이다. 루깡에는 이와같이 사찰이나 사당들이 굉장히 많은데, 앞서 말했다시피 이 곳이 대도시 였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징표인 것이다.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된 사찰이었다. 목조건물의 단청이 다 떨어져 나갈정도의 건물들이었지만 사람들도 많았으며, 그 나름대로의 풍미도 있었다. 또 절의 구조 또한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은 신발을 벗고 마루로 들어가야 하지만, 대만의 절들은 그대로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아마도 우리는 그야말로 몸 전체를 이용하는 절을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허리를 간략하게 계속 굽히는 절을 하는 모양이라서 그런 듯 하다. 이곳도 등불축제의 하나의 코스로 이용되어서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고, 커다란 홍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로 모유항(摸乳巷)이라는 불순한 이름의 거리에 들렀다. 모유(母乳)가 아니라 모유(摸乳)다. 이 이름의 유래가 이렇다. 길의 너비가 매우 좁아서 두사람이 지나가면 서로의 가슴을 만질 수밖에 없다는(;;;;;;;;)것에서 유래한다. 이곳은 최근에 생긴 길이 아니라 루깡이 예전에 번성할 때부터 있었고, 지금은 역사도 있지만 그 이름 때문인지 관광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길이다.


 정말 좁았다. 내가 들어가니 내 덩치에 길 너비가 딱 맞더라. 다른방향 출구에서 사람이 들어온다면 불가피하게 가슴을 만져야하는... 그러한 상황이 올만한 장소였다.

 모유항 탐방까지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엄청 걸어다녀서 조금은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대만의 민속문화를 체험하고 눈과 입이 호강함으로써 매우 좋았던 나의 첫번째 대만 여행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와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등불축제때 보다도 음력 3월 23일 마조여신 탄신일 때는 진짜 엄청나다고 하니 나중에 한번 다시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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