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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 숙소 - 딴수이역(淡水站) - 딴수이 옛 거리 (淡水老街) - 맥케이거리 (馬偕街) - 딴수이예배당(淡水禮拜堂) - 담강중학(淡江中學) - 구 딴수이해관 (淡水小白宮) - 진리대학 (真理大學, Oxford College) - 구 영국영사관(홍모성, 紅毛城) - 호미포대 (滬尾跑臺) - 딴수이 어인포구(漁人碼頭) - 타이베이 101 (臺北 101)


전날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매우 피곤했지만 모기가 몇마리인지도 파악이 안되고.. 호텔 로비로 가니.. 대문을 걸어놓고 주인 아주머니들이 다 주무시고(;;;;;) 계셔서 깨우지도 못했다. 결국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잠이 들었고 엄청나게 센 햇살에 10시쯤 기상했다.. 오늘은 딴수이를 가야하는데.. 라는 생각에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햇살은 매우 셌고 날은 더웠다. 시청역으로 걸어 나오는데, 멀리 보이는 힐튼호텔의 전광판에는 이미 10시 40분에 34도라는 무시무시한 숫자가 적혀있었다. 더위에 약한 나는 '아... 매우 힘든 여행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시정부역으로 나갔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장소 딴수이(담수, 淡水)는 타이난(臺南)과 더불어 대만에서 가장 먼저 개척된 곳이고 서구 문물도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아직도 그 정취가 남아 있어 다른 대만의 동네와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 있고, 풍경 역시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그런지 대만에서는 딴수이라는 지역을 좀 다르게 치고 있고,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기상이나 이런 곳에도 항상 딴수이는 따로 표기 된다. 그리고 이곳은 타이베이시에 속한 곳이 아니며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기도 같은 신베이시(新北市)에 속한 곳이다. 일제가 이곳에 협궤철도를 깔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접근이 매우 용이했던 곳이고 지금은 협궤철도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전철이 들어왔다. 타이베이역에서 40분정도 걸린다.


 나는 시청역에서 반남선(板南線)을 타고 타이베이역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담수선(淡水線)을 갈아탔다. 타이베이 지하철은 여러가지 전철노선이 같은 색깔로 움직이기 때문에 타이베이역에서 갈아타기 위해서는 행선지를 잘 알아봐야한다. 신베이터우(新北投)로 가는 전철과 딴수이(淡水)로 가는 전철이 따로 있으니 잘 알아보고 딴수이로 가는 노선을 타야한다.


 12시가 넘어 딴수이에 도착했다. 역시 관광지 답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내렸다.



(딴수이역, 淡水站)




(딴수이역에서 바로 내리면 볼 수 있는 딴수이허(淡水河))


 딴수이역에서 내리면 바로 왼편으로 딴수이허변공원이 있다. 딴수이허는 타이베이 주변에서 가장 큰 강으로써 산에서 흘러나온 딴수이허와 평야를 흐르는 따한시(大漢溪)와 합류하고 타이베이 시 서쪽에서 지룽허(基隆河)와 합쳐져서 딴수이에서 바다로 나가는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딴수이는 이 강의 하류에 있어 강의 모습과 바다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강의 모습과 산 정상을 살짝 가린 구름이 잘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딴수이허 공원에는 그 지역의 특산물인 호박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호박축제와 딴수이허의 모습)


 각지에서 생산해 낸 호박을 가지고 와서 전시회를 펼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행사를 조금 구경을 하다보니 딴수이허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지금 있는 곳은 강이지만 멀리는 바다가 보이는 모습에 나는 빨리 딴수이를 가보고 싶어졌다.







(딴수이노가(淡水老街) 풍경)


 대만을 돌아다녀보면 관광지에 라오지에(老街)라는 곳이 많다. 한글로 풀면 옛 거리라는 뜻이나, 정작 가보면 옛 거리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라오지에는 바로 옛날부터 생성된 중심 거리라는 뜻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중심가라고 보면 되려나? 딴수이역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져 있는 딴수이라오지에는 너무나도 대만의 뜻과 잘 맞았다. 좁은 거리에 관광지임을 알려주듯 양쪽으로는 각종 식당과 기념품 점이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 나는 맥도날드에 들러서 초코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사서 먹으며 구경을 했다. 길을 걷다보니 조그마한 로터리 같은 것이 있었고 그 곳에는 얼굴만 있는 동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선교사 맥케이 기념 거리에 온것이다. 



(선교사 맥케이 얼굴상)


(맥케이가)


(맥케이가 세운 병원)


(맥케이가 처음에 와서 포교활동을 했던 딴수이장로교회)




 

 선교사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는 원래 캐나다 사람으로써 1871년에 대만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대만의 개항장이었던 딴수이에 정착한 그는 그곳에 병원과 학교등을 짓고 선교활동에 매진하였다. 그가 세운 병원과 학교는 대만 최초였으며,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 그의 이름을 딴 병원과 그가 세운 학교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결국 제몸을 돌보지 않고 봉사와 선교에 전념하다가 결국 1901년 후두암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업적의 기반은 개신교 신앙과 선교에 있지만 그는 그 이전에 봉사에 정말로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대만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그가 세운 병원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이전의 교회흔적 또한 남아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발전하여 맥케이의 흔적은 별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기념하는 것을 볼 때 그의 삶을 한번 재조명할 수도 있었으며 현재 한국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과연 올바른 행동인가도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마침, 장로교회 앞에서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보기 좋았다.


 맥케이가를 떠나 진리대학으로 가기 위해서 발을 옮겼다. 하지만 더운날씨와 언덕길은 나를 좀 힘들게 만들었다. 옆에는 예쁜 카페도 있었지만 혼자 다니는 나에게는 글쎄.... 그러나 언덕길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진리대학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생겼다 ㄷㄷ)


 길을 걷다보니 조금은 예쁜 길이 나타났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몰려 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바로 그곳에 담강중학(淡江中學)이라는 유명한 학교가 있었다. 왜 유명하냐하면.. 바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 무대인 학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아니면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은 실망하여 아래로 내려오니 하얀색 예쁜 건물이 나타났다. 뭐지... 하고 들어가 보니 소백궁(小白宮)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딴수이소백궁과 소백궁에서 본 딴수이허 모습)


딴수이소백궁은 이름과 같이 궁궐이 아니라 딴수이가 해외열강에 의하여 개항되었을때 청나라의 세관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청나라에서 지었지만 청나라 풍이 아니라 서양풍으로 지어 매우 예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얀 건물과 주황색 지붕으로 치장하여 매우 깔끔하여 주변의 딴수이허와 바다와 잘 어울렸다. 마치 지중해에 있는 건물이 생각이 났다. 그 안에는 현재 세관 업무에 대한 옛날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의자도 있고 냉방장치도 있어 더운 여름날 관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담강중학 앞길과 우연히 발견한 백파이프 부는 아저씨)


 소백궁에서 나와 진리대학쪽으로 향하는데, 길을 걷다보니 어디서 영국틱(;;;;;)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백파이프 음악 소리 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하고 다가가보니 웬 아저씨가 나무 그늘 밑에서 백파이프를 맹 연습 중이었다. 바로 옆집이 영국식 레스토랑(헐.. 영국식 요리...)이어서 그곳 주인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조금 감상하다가 진리대학으로 향했다.





(대만의 최초 고등교육기관인 진리대학)


 길을 쭉 걷다보니 고풍스럽게 생긴 문 앞에 당도하였다. 바로 진리대학인 것이다. 진리대학은 원래 'Oxford College'로 불렸다. 바로 앞서 말한 선교사 맥케이가 영어와 의학등 서양 학문을 가르고자 이 학교를 세운 것이었다. 교문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분수대와 옥스포드 칼리지 건물은 작았지만 매우 고풍스러웠다. 그리고 그 건물을 보며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이 생각 나서 조금은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학교를 돌아보니 꽤 작아서 이게 학교의 전부인가 싶었지만 원래 학교는 타이베이 시내에 있고 몇몇 학부만 딴수이에 있는 것이었다. 개신교 학교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의 예배당은 정말 컸다. 


 진리대학을 구경한 후에 바로 비탈길을 내려오니 고풍스러운 건물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홍모성(紅毛城, 홍마오청)이라고 불리는 구 영국영사관이었다.





(홍모성의 모습)


 홍모성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 중 하나이다. 17c에 외부세계가 대만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타이난과 딴수이이며, 타이난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군대가 들어와서 안평고보라는 요새를 세웠고, 1629년 딴수이에 스페인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이곳에 도밍고 요새라는 성을 세웠는데 바로 그것이 홍모성이다. 타이난의 안평고보는 1660년대에 복명운동을 하던 정성공에 의해 외국인들이 쫓겨났지만 이곳은 스페인, 네덜란드, 청나라, 영국 순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서양의 건물 모습으로 개축이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주인이 일본으로 바뀌긴 했지만 다시 영국이 이 건물을 되찾으며 영국 대사관으로 이용을 했지만, 1972년 영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고 대만과 단교하면서 이 건물은 호주대사관으로 이용이 되었고, 호주 역시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를 하자 1980년에 건물 전체가 대만 정부로 이관이 되어 역사 유적으로 개조되었다. 그래서 홍모성 입구에는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일본, 호주, 대만 국기가 차례대로 걸려 있었다.







(홍모성 내부에 있는 전시물)


 홍모성 내부에는 그곳의 역사를 알 수 있을 만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입에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상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동상들은 사람사이즈로 만들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홍모성 본청의 내부로 들어가면 영국 영사관 시절의 유물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정말로 고풍스러웠으며 멋있었다. 그리고 현대로 들어와서 대만이 많은 국가들과 단교를 해야만 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불쌍해 지기도 하였다. 만일 많은 나라들이 대만과 단교를 하지 않았었다면 이 건물은 여전히 영국의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 있었겠지..




날씨는 너무나 좋았지만 너무나 더웠다. 당시 날씨가 38도까지 올라간 날이어서 왠만해서는 지치지 않는 나도 너무나 힘들어서 홍모성 기념품점 앞에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조금 쉬었다. 하지만 이것이 고난의 시작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어쨌든 조금 쉬고 호미포대로 향하였다.


 호미포대는 너무나 멀었다. 지도에는 가까이 나왔지만 너무 덥고 정신이 없는 상태여서 더욱 길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호미포대를 걷는 중간에 하변공원으로 조금 빠져서 딴수이 허와 해변을 구경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더웠다.







(딴수이허 공원의 여러 풍경들.. 그물을 정리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딴수이허는 동중국해와 맞닿아 있었고 이곳의 풍경은 강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낚시하는 사람,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 작은 배들이 있어 공원이 아니라 하나의 포구를 보는 듯 했다. 마침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부탁하여 나도 사진을 찍었고 그 사람들에게도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좋은 여행하세요!' 하고 헤어졌는데 이렇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허물없이 헤어지는 것도 혼자다니는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아유 덥다. 죽겠다. 이런 말을 혼자 하면서 바닷길과 산길을 조금 올라 호미포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미포대의 모습)


 호미포대는 딴수이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청나라의 요새이다. 이곳에서 많은 전투도 벌였고 나중에는 개항장인 딴수이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식민지 이후에 버려졌다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다시 역사유적으로 복원한 곳이다. 들어가니 당시의 성벽이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었다. 포대 안으로 들어가니 그 곳에는 당시의 사진과 유적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은 시원했지만 습도가 너무 높아서 벽에서는 물이 흐르고 제습기와 선풍기를 엄청나게 틀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채 윗부분으로 올라가보니 당시에 포를 두었던 곳과 지휘부가 그대로 복원이 되어 있었다. 일반 관광객들은 잘 모르겠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 이런 곳에 가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와서 어인포구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딴수이에서 가장 끝에 있는 포구로 그곳에 있는 육교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점 문화재의 간격은 멀어졌다. 아까 홍모성에서 호미포대에 가는것보다 훨씬 먼 거리를 다녔다. 나중에 알고보니 딴수이역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고 하던데.. 차라리 그것을 타고 이곳에 달려오는 편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타들어가고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자리잡았다.







(어인포구 모습)


 아까는 딴수이허와 겹쳐 강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면 어인포구에 와보니 강의 모습이 없어지고 대양의 모습이 펼쳐졌다. 너무나 덥고 목이 마르고 힘들었지만 다른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힘이 났다. 바로 옆에 리조트도 있었는데 고기를 잡고 파는 어항의 모습 대신에 관광지로써의 항구의 모습이 보였다. 옆 리조트에 방을 잡고 밤에 오면 정말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에도 담고 나의 아이폰을 찾는 순간..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아이폰을 찾을 수 없었다. 어.. 어떻하지? 매고 있었던 가방에도 뒤졌지만 나의 아이폰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대만 핸드폰으로 아이폰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도 않았고.. 울리지도 않았다. 나의 정신은 이미 멘붕상태.. 어떻게 하지.. 하다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딴수이역으로 가려는 일정을 포기하고 홍모성까지 다시 꼼꼼히 살펴보며 걷기로 하였다.. 


 애가 타는 나는 정말 애절한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별별 생각을 하면서 호미포대로 갔지만 관리자도 모르겠다고 하고 돌아다녀도 나의 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엉엉 어떡해..


 마지막 심정으로 홍모성으로 들어갔다. 홍모성을 뒤져봐도 내폰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면서 돌아가다가 관리사무소 앞에서 정말 마지막 심정으로 아이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그러자 안에 있던 관리소 직원이 받는 것이 아닌가! '오오 내꺼!!!' 한국말로 외치면서 들어갔다. 직원들은 놀랐지만 그래도 당신이 이물건의 주인인지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나는 내 여권과 거류증을 보여주고 다시 핸드폰으로 아이폰에 전화를 걸어 내 신원을 확인 하였다. 직원의 얘기는 기념품점 앞 테이블에서 어떤 관광객이 아이폰을 주워서 관리사무소에 맡겼다고.. 왜 물건을 두고 다니냐고 말했다. 그래서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었어요 ㅠㅠㅠㅠㅠ 라고 하니 날씨가 덥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을 쓰고 다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주시는 쥬스 한잔은 정말 꿀맛이었다. 

 

 긴장이 풀린 나는 더이상 딴수이역까지 걸어가기에는 무리라고 판단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니 그래도 정말 즐겁더라.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7시에 과 동기인 영주와 타이베이 101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땀에 쩔은 이꼴로 만나기에는 너무 민폐인것 같아서 빨리 씻고 타이베이 101로 나갔다. 조금은 늦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를 외국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타이베이 101 쇼핑몰을 구경하면서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타이베이 101 명품관의 모습 ㄷㄷ)


 타이베이 101의 1층부터 5층까지는 명품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각종 명품 브랜드 매장이 있었는데, 평소 명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도 멋있었다. 여자들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달까? 비록 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지만 명품 매장 외관만 구경하기에도 너무나도 신기했다.


 결국 영주와 만나 타이베이 101 지하 딘타이펑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영주는 공부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해외인턴으로 타이트라(대만의 코트라와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를 옮겨 술을 먹기로 했는데, 영주 집 근처에 마치 한국식 포장마차와 같은 곳이 있어 그곳에서 새벽 3시까지 술을 먹고 헤어졌다. 오랜만에 한국식으로 술을 먹으니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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