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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1:06 旅遊記

 드디어 날이 밝았다!! 샤오동이 11시에 체크아웃이라고 해서 10시쯤에 일어나도 될것 같았지만, 8시 쯤에 눈이 떠졌고, 살며시 눈을 뜨고 보니 여자애들은 씻느라 동분서주하더라. 남자애들은 아직도 안일어난 상태이고..
 
 바깥을 보니 어제 보았던 야경은 사라지고 루깡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루깡의 모습, 전형적인 시골 읍내 모습이다.)

 지금 루깡은 저렇게 쇠락한 시골동네 같지만 1900년 초만 하더라도 인구 10만이 살던, 대만 제2의 도시였다. 바다와 가깝고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하천이 루깡의 중심으로 들어와서 굉장한 상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때 대만을 루깡을 중심으로 루깡 북쪽을 샹깡(上港), 루깡의 남쪽을 샤깡(下港)이라고 했을 정도니 당시 루깡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철도를 개설하면서 당시 대도시였던 루깡을 비껴가게 했는데, 이 결과로 루깡은 쇠락하게 되었다. 대신, 뜬 곳이 타이중이다. (웬지... 우리나라로 보자면 대전과 공주를 보는 느낌이다..) 지금 현재, 대만의 민속문화를 가장 잘 보존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루깡을 찾는다고 한다.

 씻고 와보니 남자애들도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빈이 말로는 나의 우렁찬 코고는 소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설쳤다고... 나는 배려한다고 굉장히 늦게 잤는데.. ㅠㅠ 코골이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나...

 모두 준비를 끝내고 10시 쯤에 호텔을 나왔다. 알고보니 이호텔 이 근방에서는 가장 유명한 호텔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묵고, 루깡에서 가장 유명한 천후궁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많은 조형물들이 있었고, 로비도 저렇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서 한컷.)

 먼저 밥을 먹으러 루깡 거리를 돌아다녔다. 토스트집에 들렀는데, 많은 사람들은 토스트와 전병을 시켜서 먹었다. 나는 어제 먹었던 밥이 소화도 안되고 토스트를 좋아하지 않아 간결하게 녹차만 먹었다. 그후에 루깡의 최고 명물인 천후궁을 관광하러 갔다. 천후궁에는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있었고 그 앞에는 폭죽을 마구 터뜨려서 화약냄새와 연기 그리고 전통음악, 그리고 가면행렬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중국 혹은 대만의 폭죽 소리를 처음 들었기 때문에 마치 테러현장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사진만 봐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보면 바닥에 붉은것이 막 흩어져 있는데, 폭죽을 쌌던 종이다. 그리고 간혹 뿌연 사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폭죽을 터뜨린 연기이다.. 그래도 대만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재밌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천후궁 앞의 화려한 등불, 음악 그리고 가면, 폭죽 등으로 악귀를 내쫓고 한해의 풍어와 재복을 빈다.)



 

(분위기를 더욱 느끼고 싶으신 분은 동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후궁은 어부들의 수호신인 마조여신을 모셔놓은 사당이다. 이 마조여신은 전설에 의하면 10c경의 푸젠성에 살던 한 아가씨였는데, 승천하여 선원들의 여신이 되었고 특히 해상구조등에서 특별한 영력을 펼쳤다고 한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마조여신을 천후로 봉했고 그 이후 그녀의 사당은 천후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마조여신은 농사를 많이 짓던 북쪽지역보다는 바다를 끼고 있던 남쪽지역에서 더 많이 추앙받았는데, 현재도 중국 대륙 남부의 연해,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까지 넓게 추앙받는다고 한다. 루깡의 천후궁은 대만에서는 가장 오래된 천후궁이며 그리고 가장 유명한 천후궁이라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사당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오오.. 경건하다..)

들어가자마자 큰 향로가 하나 있었다. 자유롭게 금액을 시주하고 향을 받아서 불을 붙이고 저렇게 향로에 넣는다. 중앙에 있는 향로는 보다시피 매우 크고 첫번째 향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저 향로에 먼저 절을 하고 향을 분향한다. 그리고 꽃는게 아니라 밑으로 던지더라.

(저 가운데 계신 분이 마조여신이다.)

(애정을 관장한다는 신)



(천후궁 가운데에는 저렇게 분수가 있는데 용의 입에 동전을 넣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경건하게 참배하는 대만인들)

(붉은 등불들)

 바깥도 시끄럽고 경내도 약간은 시끄러웠지만, 대만인들의 참배는 굉장히 성스러웠다. 향을 들고 연속적으로 허리를 굽히는 절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이 사람들의 각각의 소원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천후궁 구경을 하고 본격적으로 루깡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루깡의 거리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런정도의 거리를 굳이 비교하자면 아마 서울의 명동이나 대구의 동성로 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만 등불축제와 겹쳐서 사람들은 더욱 많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거리마다 용모양으로 된 등불이 많이 걸려 있었다.


 약 3km정도를 걸어다녔는데, 용모양의 등불은 저렇게 계속 이어져 있더라. 오오.. 정말 대단했다. 중국아이들도 이러한 광경은 처음 보았는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리에는 맛있는 음식도 되게 많았다. 갖가지 음식이 많았는데, 특히 이 루깡은 만두가 유명하다고 한다. 일부 만두집 앞에는 사람들이 무쟈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 많은 인파를 뚫고 가던 중에 루깡민속전시관에 들렀다. 샤오동과 스티븐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지 다른 곳으로 갔고 우리들은 이 루깡민속전시관에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려고 하려 했는데, 우리 이쁜 발레리아가 자기가 수빈이와 나의 입장료를 내겠다고 하였다. 땡큐 발레리아!! 하니 특유의 귀여운 표정으로 웰컴을 외친다.

(루깡 민속문물전시관 내부)
길거리에 있던 민속전시관이 매우 후줄근하게 생겼길래 별기대 안하고 들어갔으나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건물이 고풍스럽길래 놀랐다. 내부에 있는 민속유물들도 굉장히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청천백일만지홍기)


(기념으로 2컷 찍었다-_-)




 


 

(이런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었다.)


신나게 관람을 하였다. 사실 민속문물에 대한 관심 보다는 루깡의 역사가 더 끌렸고, 참고로 이 전시관의 구조가 더욱 관심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 곳은 원래 어떤 분의 저택이었다. 이 분은 원래 루깡의 민속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루깡의 민속문물을 수집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 공로로 리덩후이(李登輝)총통에게 표창을 받았고, 돌아가실때 자신의 집을 민속문물전시관으로 만들라고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한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민속 전시관의 관람을 끝마친뒤 우리는 롱샨사(龍山寺)로 향했다. 아까 천후궁은 마조여신의 사당이라면 롱샨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불교 사찰이다. 루깡에는 이와같이 사찰이나 사당들이 굉장히 많은데, 앞서 말했다시피 이 곳이 대도시 였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징표인 것이다.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된 사찰이었다. 목조건물의 단청이 다 떨어져 나갈정도의 건물들이었지만 사람들도 많았으며, 그 나름대로의 풍미도 있었다. 또 절의 구조 또한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은 신발을 벗고 마루로 들어가야 하지만, 대만의 절들은 그대로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아마도 우리는 그야말로 몸 전체를 이용하는 절을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허리를 간략하게 계속 굽히는 절을 하는 모양이라서 그런 듯 하다. 이곳도 등불축제의 하나의 코스로 이용되어서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고, 커다란 홍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로 모유항(摸乳巷)이라는 불순한 이름의 거리에 들렀다. 모유(母乳)가 아니라 모유(摸乳)다. 이 이름의 유래가 이렇다. 길의 너비가 매우 좁아서 두사람이 지나가면 서로의 가슴을 만질 수밖에 없다는(;;;;;;;;)것에서 유래한다. 이곳은 최근에 생긴 길이 아니라 루깡이 예전에 번성할 때부터 있었고, 지금은 역사도 있지만 그 이름 때문인지 관광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길이다.


 정말 좁았다. 내가 들어가니 내 덩치에 길 너비가 딱 맞더라. 다른방향 출구에서 사람이 들어온다면 불가피하게 가슴을 만져야하는... 그러한 상황이 올만한 장소였다.

 모유항 탐방까지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엄청 걸어다녀서 조금은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대만의 민속문화를 체험하고 눈과 입이 호강함으로써 매우 좋았던 나의 첫번째 대만 여행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와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등불축제때 보다도 음력 3월 23일 마조여신 탄신일 때는 진짜 엄청나다고 하니 나중에 한번 다시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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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26 02:05 旅遊記

 어디를 가든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은 매우 설레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이번 여행이 이렇게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대만에 와서 어디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생각일 뿐이지 직접 실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볼때 나는 타이베이의 단수이를 갔으면 좋겠어, 핑동현의 섬의 끝을 갔으면 좋겠어, 이란현의 원주민을 직접 만나봤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은 힘든 것이다.

 이때 나에게 가자!라고 선뜻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교환학생으로 온 대륙 중국 교환학생들이었다. 나보다 무려 4살이나 어린 루샤오동은 충분히 리더기질을 가지고 있다. 많은 대륙 교환학생들이 그를 좋아했고 그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몇몇 교환학생들과 함께 2.28연휴를 맞아서 타이베이에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샤오동은 한국인 교환학생인 나와 수빈이에게 루깡(鹿港)에 등불 축제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고 우리는 좋다고 호응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2월 18일 ~ 19일로 제안되었지만 2월 18일에 국제교류처에서 가는 테마파크 관광이 자리잡고 있어서 2월 19일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정작 2월 18일, 테마파크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학교에 돌아가는데로 출발하겠다. 이런 통보를 받았다. 사실 조금 기분은 살짝 나빴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런기분이 사라졌다. 도착 후 30분 만에 모든 짐을 싸고 7시 30분에 학교 교문에 모였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 대만 타이베이가 고향이고 학교에서 대만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째즈(Jazz, 중국이름으로 말해도 째즈다. 남자다.), 이번 여행의 주관자인 상하이 출신의 루샤오동, 린션(영어이름은 스티븐이다. 앞으로 스티븐으로 표기), 나와 수빈이의 무한사랑을 받고 있는 하얼빈 출신의 바이전웨이(영어이름은 발레리아다. 앞으로 발레리아로 표기. 굉장히 귀여운 여자애다.) 등 총 12명의 인원들이 모여서 루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째즈를 제외하고는  전부 교환학생이었는데, 반수의 인원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어서 당황하였다.


 학교 앞에서 다쟈(大甲)로 가는 버스 168번을 타고 샤루(沙鹿)역에 도착했다. 학교가 샤루에 위치를 하여 버스를 타고 약 10분 정도 걸렸다. 2010년 12월 25일에 타이중시와 현이 합쳐져서 직할시가 되기 이전까지 샤루는 샤루진이었고 타이중현에 속해 있었다. 우리로 따지면 읍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이게 직할시가 되면서 갑자기 광역시의 구가 되었다. 그래선지 샤루구의 중심가에 있는 샤루역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샤루역 내부의 요금표와 스케쥴을 알려주는 알림판)

 우리는 20시 17분에 도착하는 가오슝(高雄)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그 동안 사진도 찍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특히 특유의 친화력의 샤오동은 역장님과 빨리 친해져서 역장님께서 우리 단체사진을 찍어주실 정도였다. (이 사진을 샤오동이 올리지 않았다. 혼자 간직할 예정인가..)

(곧 우리가 갈 열차가 도착합니다.)

 

(우리를 태우고 떠날 갸오슝행 열차)

 우리가 가는 장소인 장화(彰化)역은 그다지 멀지 않아서 샤루에서 기차를 타면 약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가는 동안 옆에 앉았던 쟈피로(중국어로는 파이멍리엔, 아주 얌전한 여자애다. 중국에서도 스페인어를 전공하여 이곳 대만에서도 스페인어를 전공한다고.. 저 이름도 스페인이름이란다.)와 친해질 수 있었다.

(또.. 기차에서 이렇게 셀카를 작렬하며 혼자 놀기도 하였다..)

(샤루역이 읍소재지의 역이었다면 장화역은 군소재지의 역이었다. 더사람이 많고 번화했다.)

 드디어 장화역에 도착하였다. 사람이 많아 조금은 적응이 안됐지만 이 곳이 현 소재지의 역이었고 그다음 대만 등불축제의 막날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역에서 루깡으로 들어가는 무료셔틀버스가 운행시각이 끝나서 타지 못했고, 이 곳에서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이조차 조금은 버거웠다. 물론, 추진력 강한 샤오동과 대만사람 째즈의 역량으로 우리는 3대의 택시에 나눠타고 루깡으로 향할 수 있었다.

 택시에 오르기 직전 굉장히 신기한 것을 보았는데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다. 1월 14일에 대만에서는 대선과 총선이 함께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거날 모든 후보자들의 홍보물을 떼어버리는데, 대만은 선거가 끝난지 한달이 지났지만 저렇게 빌딩에 후보사진을 걸어놓았다. 첫번째는 민진당의 총통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이며, 두번째는 국민당의 총통후보이자 총통에 재선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다.

 이러한 풍경을 하고 나는 택시에 올랐다. 나는 6인용 택시에 탔는데, 그것도 신기하더라. 째즈와 샤오동은 풍만한 기사아저씨에게 루깡에서 뭐가 볼만한가 맛있는가에 대해 계속 물어보았다. 약 20분 정도 가자 우리의 목적지인 루깡이 나왔다. 대만 등불축제가 국가적인 행사인데다가 루깡 자체가 대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말 미어터지듯이 많았다. 

 잠시 맥도날드에서 화장실도 갈겸 쉬고 있었는데, 중국 애들이 자신의 이름이 한국어로 뭔지 계속 물어보더라. 그래서 수빈이와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중에 하나 재밌는 것이 있었는데, 스티븐의 이름이었다. 스티븐의 이름을 한국어로 그대로 풀면........ 임신......... 스티븐은 그 소리를 듣고 좌절하였다. 나와 수빈이 그리고 발레리아는 스티븐의 절망한 표정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ㅋㅋㅋ


맥도날드를 벗어나 본격적인 루깡의 거리에 들어서니.. 이렇게 휘향찬란한 등불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각종 주제에 따라서 진열된 각종 등불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 등불들을 전문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각 학교, 회사, 동호회에서 만들어서 전시한것이 신기했다.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잘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특징이 그대로 보여져 재미 있었다.

 더 들어가니 등불 축제의 메인 행사장이 있었다. 행사장 중앙에는 시간이 되면 등불로 장식된 용이 360도로 돌면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메인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바로 불이 켜지며 그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우와아아앙!!! 나는 용이당!!!!)

 사진으로 보니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지만, 굉장히 웅장한 음악과 주변의 조명효과 이렇게 다양한 색의 등불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다. 우리들은 때로는 환호하면서 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영상을 찍었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사진만 찍은 것이 아쉽다.

(수많은 인파들과 대만등회라고 쓰여진 네온사인.. 그 규모만 봐도 대충 축제가 어땠는지 알만하다.)

 

이것까지 봤을 때, 나는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걍 등불 축제인갑네.. 이정도.. 움직이는 용에서 다른 곳을 가기 위해 뒤돌아서니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나의 시선을 끌게 했다.


 조롱박 모양의 등불이 보다시피 수천개가 거리에 달려있었다. 중국에서는 조롱박이 복을 불러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새해에 열리는 대만등회에서 많은 복을 담아가라는 의미인듯 하다. 그래서 마지막 사진의 조롱박 모양의 문 이름 또한 복임문(福臨門, 복이 임하는 문)이다. 이곳에 온 많은 관광객들은 이 조롱박 모양의 등불에 매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발레리아와 함께... 어우.. 머리와 주먹 크기차이가....)


 복임문 밖을 나와 보니 중국의 전통거리를 묘사한 등불이 우리 앞을 막았다. 참 아름답게 만들어 놨더라. 봤더니 중국 남경시에서 친교의 목적으로 설치해 줬던 것이었다. 남경의 부자묘거리를 묘사해 놨다. 사실 나 고2 말엽에 장학퀴즈 4승선물로 한-중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갔던 곳 중 한 곳이 남경의 부자묘 거리였다. 그 곳에서의 추억 그리고 당시 캠프의 추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오묘했다.

(오오.. 아름답다.. 오오..)

이 외에도 흩어져서 우리는 더 많은 등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등불들..)

앵그리버드와 같은 게임 캐릭터 주제의 등불도 있었고 원피스, 스펀지밥등의 만화캐릭터 그 외에도 많은 주제를 담은 등불들이 휘향찬란하게 켜져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개념없이 사진도 막 찍었다.. ㄷㄷ)

 구경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11시였다. 하지만 등불과 야시장 때문인지 거리는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한국의 유흥가도 이 시간에는 불야성이지만 진짜 이렇게 온 가족들이 연인들이 부부가 아이들이 친구들이 이렇게 모두 어우러져서 이 시간까지 있는 경우는 한국에서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배도 고프고 하여 일행들은 야시장에 가서 구경을 하며 끼니를 때우기로 하였다.

(불야성인 야시장의 풍경)

 우리는 중국인들이 '아침'에 많이 먹는 여우자오를 먹기로 했다. 이건 원래 밀가루를 길게 만들어 기름에 튀겨서 두장국에 찍어먹는 것으로 이것을 먹으면 배가 든든하더라. 여기는 두장국이 아니라 행인차라고 하는 것을 먹는데 맛이 참 오묘했다. 맛은 있는것은 같은데 음..... 뭔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맛이.......-_-.. 수빈이는 맛이 이상하다고 전부 나한테 넘겨버려 결국 내가 다 먹어버리고야 말았다. 배 엄청 부르더라.

 식사를 대강 마치고 우리는 루깡 거리로 들어섰다. 시간은 12시로 향해 가는데.. 거리는 여전히 불야성이었다. 조금 피곤하여 아 자러가는구나.. 라는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기분이 순간 좋아지길래..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바로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갑자기 그 노래가 흥얼 거리면서 나오더라..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한국인 수빈이는 갑자기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의 고성방가를 시전하였다..-_- 그런데 샤오동은 우리를 데리고 다시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식당에는 사람이 여전히 많더라 ㄷㄷ.. 이 시각이면 우리는 먹는 시간이 아니라 자는 시간인데.. 아이들까지 이 늦은 시각까지 무언가를 먹는 것을 보고서 컬쳐쇼크를 받은 듯 하였다. 

 

(사람 가득한 식당과 주문을 기다리는 우리들)

샤오동과 째즈가 왔다갔다 거리면서 무언가를 막 시키길래 대체 무언가... 했더니.. 메뉴는 이러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이건 뭐 케이크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지.. 이런 생각을 하였는데 먹어보니 굴전과 굴탕이었다. 예로부터 이 루깡지역은 굴이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중국식 굴전과 굴탕은 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맛있었다. 즉석으로 만들어진 굴전은 입에 닿는 순간 향과 함께 사르르 녹았고 굴탕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더해져 맛있었다.. 다만 아까 먹은 행인차와 그 여우자오때문에 배가 많이 부르더라 ㅠㅠ

 모든 일정이 끝나고 천후궁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고급적인 호텔방에서 묵을 수는 없었다. 군대식으로 정렬된 18인실에서 묵었다. 편의상 왼쪽은 여자들이 오른쪽은 남자들이 썼는데.. 남자는 나, 스티븐, 샤오동, 째즈 4명이었기 때문에 두명은 2층에서 두명은 아래에서 매우 넓게 쓸 수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본 루깡의 모습)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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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25 23:50 오늘의 일기
1. 게으름병이 또 도졌다. 그래서 블로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러면 안되는데... 사실 이러면 안될 것 까지는 없는데.. 대만 생활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관리 안하는 것이기에 좀 그렇다.

2. 대만 생활은 잘 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시일이 흘러가면서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였고, 이내 기뻐하기도 하였다. 외국 생활이라는 것이 다 그런 모양이다.

3. 오늘부터 화요일까지 대만은 연휴이다. 대만사람들이 얼얼빠라고 부르는 평화기념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2.28 평화기념일은 대만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힌 암울한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볼 수 있겠다. 1947년에 장개석 국민당 정부에 의해서 일어난 이사건은 우리나라의 광주민중항쟁이나 제주 4.3민중항쟁 급으로 보면 된다. 일본이 대만에서 50년간의 식민통치를 종식하고 중국(국민당)에 반환되었는데, 행정공백이 지속되었다. 그 상황에서 국민당 군은 밀수담배에 대한 단속을 시작하였고 밀수담배를 팔던 노파와 단속반이 실갱이를 벌이다가 부상을 입힌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나가던 행인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총을 쏜 사람을 인근 파출소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만인들은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대만인들은 타이베이에 있는 전매청등을 파괴하였고 소요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에 지식인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담배전매금지,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대만행정장관은 이에 겁을 먹어 대륙의 국민당군을 끌어들였다. 국민당군은 대만인들을 무참하게 탄압하였고 최소 1천명 최대 10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진압하였다. 이때 대만에 선포된 계엄령은 1987년에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 총통이 해제할때까지 지속되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징이대 안에도 2.28 평화기념비가 마련되어 있을 만큼 대만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임이 틀림 없다. 다만 황금연휴 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놀러가는듯. 아까 밥먹으면서 화시(CTS, 대만 방송사)를 조금 보았는데, 고속도로가 많이 밀린다고 한다. 그리고 기숙사 내에도 사람이 많이 없다.

4. 앞서 말했다 시피 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갔다. 내 옆에서 게임만 무쟈게 하고 있었던 룸메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게임때문에 왁자지껄 했던 방이 고요해지니 나도 외로워진다. 더구나 요 며칠 이곳 타이중의 날씨가 비오고 멈추고 비오고 멈추고의 반복이라 더 쳐지는 듯 하다. 혼자서 우두커니 있다가 그저께 빨았던 빨래를 완벽히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넣었다가 냄새가 진동하게 된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빨래를 하였다. 그리고 지저분했던 옷장을 다시 손을 보았다. 거의 모든 옷을 빨래하고 건조기에 넣어 뽀송뽀송한 상태로 만들었고, 옷이 분류가 되있지 않고 너저분한 것을 보고 일단 속옷은 속옷, 수건은 수건, 반바지는 반바지 등등으로 나누어서 봉지에 넣어 분류하였다. 그것을 하고 나니 좀 살것 같았다. 그리고 좀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학교 한바퀴 그리고 학교 앞 상권을 돌았다. 사람들이 공휴일을 맞이해 다 놀러간 모양인지 거리도 한산하였다. 갑자기 한국이 생각나서 학교 안 훼미리마트에 들러서 농심에서 만든 김치라면 2개를 사가지고 와서 끓여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김치맛.. 좋더라.. 맛있더라... 그리고 순간적으로 나는 '기러기 아빠'들의 기분이 이럴까.. 이런 생각을 하였다.

5. 내일은 유일한 한국인 동료 수빈이와 함께 성당에 가기로 했다. 징이대는 천주교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 안에 수녀원이 있고 그 안에 성당이 있다. 대만은 천주교의 교세가 약하기 떄문에 성당도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다. 저번에 미사를 가봤더니 주일인데도 10여명의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교목신부님인 라몽신부님은 대만분이 아니다. 스페인 신부님인데, 대만에서 20년 넘게 사목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현재는 스페인어과 교수님이시라고.. 어쨌든, 반가워 해주시는 대만, 미국, 한국 수녀님이 계시고 또한 그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좋더라.

6. 연휴가 연휴인 만큼 27~28일 양일에 걸쳐서 비비안, 펑쟈, 수빈이와 함께 타이중 지역과 장화현 지역을 돌기로 하였다. 올해 만 19세인 비비안이 '차'가 있어서 가능한 일 오오... 원래는 기차타고 타이난 지역에 가려고 했는데, 기차가 매진됐단다.. 그래서 타이중, 장화현으로 가기로 하였다. 타이중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고 장화현 역이 저번주에 대륙 중국교환학생들과 함께 등회를 다녀왔기 때문에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았지만 역시 현지인은 다르다. 더 재밌는 곳을 간다고 하니 기대할 만 할 것 같다. 3월 3~4일에는 국제교류처에서 진행하는 대만문화교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가오슝의 메이농 지역의 하카문화체험을 할 계획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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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13 22:53 오늘의 일기

1. 오늘 이곳 징이대학은 개강을 하였다. 개강을 이렇게 빠르게 하다니 적응이 안된다 엉엉 망한듯여.

2. 개강에 맞춰 도착 이후 계속 흐려있던 날씨는 깨끗하게 맑아졌다. 오오.. 위도가 낮아져서 그런지 햇빛은 우리나라의 초여름과 같다. 그리고 안개가 깨끗이 걷힌 밖은 타이중 해안지역이 다보였고, 타이중항을 거쳐 대만해협까지 다 보이더라.. 굉장히 멋있는 풍경이었다.
 


오오... 하늘 그리고 저 멀리 대만해협 오오 (기숙사에서 본 타이중 해안지역)

3. 개강의 첫 수업은 대만영화와 사회문화라는 과목이었다. 영어수업이라 그곳에서 많은 교환학생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한학기 먼저 와있었다는 대륙 교환학생 스티븐이 나에게 먼저 친절하게 인사를 하였고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옆에 대륙 교환학생 여학생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잘 못했네.. 다음 수업에 친해지기로 하자.. 그리고 대륙 교환학생 장지아주 옆에 있던 중국인 발레리아와 프레야를 알게 되었다. 참 기쁘더군. 점점 많은 사람을 알게되어 기분이 좋다. 샤오동, 지아주, 발레리아, 프레야, 수빈이와 함께 학교에서 외국인 티 팍팍내며 사진을 마구 찍었다 ㅋㅋㅋㅋ

4. 학생증을 받으러 중문과 사무실에 갔는데, 그곳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국제사무처에 갔다. 케이티의 사무실에 가니까 교환학생 도우미들이 엄청나게 많더군 ㅋㅋ 케이티는 한국에 갔다와서 물건을 사온 것을 도우미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는데 수빈이와 나는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명해 주는데, 나의 성인 '김'과 해초 '김'의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ㄷㄷㄷㄷㄷㄷㄷㄷ 별명이 '海苔(하이타이)‘가 되었다. ㅠㅠ

5. 두번째 수업은 서예와 전각 수업이다. 두학기 수업인데 이번학기는 전각을 위주로 한단다. 교수님께서는 매우 친절하게 우리를 대하셨다. 얼마 안되는 학생이었지만, 전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다른 수업은 앉아서 진행하지만 수업을 듣는 열몇명의 학생들은 앞에 나와서 교수님의 전각을 구경하고 설명을 들었다. 학생들도 매우 친절했다. 우리가 잘못듣는다고 학생들이 나서서 영어로 통역도 해주고.. 재료 사는것도 도와주기로 하였다. 특히 영문과 여학생 한명은 자기 카피카드를 이용해서 교재도 복사해 주는 등 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그 수업 열심히 들어야지 ㅠㅠ

6. 수업 끝나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수빈이와 버스를 타고 타이중시내로 놀러나갔다. 원래는 타이중역까지 가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방송을 안해줘서 백화점 같은 곳 앞에서 내렸다. 수빈이가 옷을 본다고 하길래 그다지 좋지 않아하는 쇼핑을 같이했다. 쇼핑해보니까 재밌네 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너무 비싸서 쇼핑은 포기했다. 그래서 맥도날드에서 대충 밥을 때우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조금 걸어가니 타이중시청이 나와 진짜 여기가 시중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덥긴 했지만 정말 재밌는 구경이었다. 누구보다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수빈이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타이중시 중심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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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10 22:17 오늘의 일기
1. 일기를 매일매일 써야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열심히 써야지 엉엉.

2. 어제는 시내 관람을 아주 잠깐 하였다. 뭐랄까. 그냥 은행에 갔다가 물건사러 큰 마트에 들른 정도. 동해대 앞에 있는 마트에서 여러가지를 샀다. 세탁할 옷을 담은 밀폐용기 세트와 여러가지 비상식량을 샀더니 돈은 좀 많이 들어가더라. 그리고 밥을 한끼 먹었는데, 닭볶음밥과 중국식 선지국이였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생강이 많이 들어간 맛에 개운하더라. 두개를 먹고 거의 2500원돈을 주었으니 참 싸게 먹은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나왔는데 대륙인 교환학생 친구인 카를이 맥주를 먹고 있었다. 수빈이는 그냥 '啤酒‘냐고 물었는데, 카를은 선뜻 자신이 산 맥주를 뜯어서 주더라. 참 고마웠다. 일본 기린 맥주였는데. 참으로 맛있었다.수빈이와 수다를 떨면서 있는데 잘생긴 서양 사람이 '你好!'라고 인사하더라. 복장이 너무나도 올바르기에 보니까 외국인 몰몬선교사더라. 자신을 스미스장로라고 소개한 이 사람이랑 조금 얘기하다가 그의 핸드폰 번호를 받고 헤어졌다. 4시에 유일한 한국인 교환학생 수빈이와 밥도먹고 시내도 구경할겸 그제 갔던 시내에 갔다. 시내까지 잘 갔고, KFC가서 닭도 시켜먹고 그랬는데 날이 어두워지게 아닌가? 한번 왔던 곳이지만 날이 어두워지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수빈이를 구박하면서 길을 막 물어보았는데, 길거리에서 먹을것을 팔고 있던 젊은 아가씨에게 길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징이대 간다니까 자기도 징이대 중문과 다닌다고. 참으로 인연임에 틀림 없다. 결국에는 한참을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학교에 도착하였다. 학교 옆에 야시장이 있는데,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 많더라. 야시장을 보니 중국에 온 기분이 들었다.

3. 돌아와서 케이고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매우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신기했다. 여러 이야기를 하였는데, 한국인이 보는 일본인과 일본인이 보는 한국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니 매우 재밌더군. 

4. 오늘은 아침부터 바빴다. 임시 기숙사에서 앞으로 6월까지 지낼 새 기숙사 방으로 옮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만학생 2명과 같이 지내게 되어 매우 긴장되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짐이 너무 많아서 케이고가 나를 도와주어 그 많은 짐을 들고 새 방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이미 도착한 대만학생들은 정리를 끝마치고 나갔다. 나도 1시에 점심약속이 있어 광속으로 정리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수빈이와 나는 뭘 먹어야 하나 걱정하면서 가는데, 대만 도우미 친구들을 만나서 어렵지 않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종 만두와 두유를 먹었고 나는 속이 허하기에 우육면을 하나 말아먹었다. 맛있더군. 근데, 여기 음식이 너무 느끼해서 조금만 잘못했다가는 살이 금방 쪄버릴 것 같기에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5. 오후에는 화어문화중심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보았다. 1시간 30분동안 시험을 보는데 이건 뭐 ㅇㅇ 어렵더라..... 게다가 간체자만 보다가 번체자를 보니까 머리까지 아파올 정도다. 팅리 시험도 말아먹고 문법시험도 말아먹고.. 작문시험도 말아먹고.. 대체 잘하는것이 뭐냐.. 시험을 마친 다음에 가니 그쪽 선생님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말도 거의 못하는 애가 그냥 막 읽어내리니 신기하셨나보다. 그래서 배운 경력보다 매우 잘하는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level.1이 아니라 그 윗 레벨인 level.2반으로 가라고 하셨다. 사실 level.2도 이해가 많이 가능하길래 level.3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수빈이가 읽는 level.3을 보니 어휴...... 2와 3차이가 너무 나더라. 이건뭐.... 결국에 나는 level.2반으로 가게 되었다. 학부과정의 개강이 다음주 월요일(2/13)인데, 화어문화중심 개강은 3/5이다. 매일 아침 8시 10분부터 10시 반이다. 치열하게 공부해야할 듯.

6. 원래 오늘 교환학생 도우미들이 클럽을 간다고 했다. 원래 가기로 했었는데, 오늘 뭔지 모르게 피곤하고 나의 도우미인 Vivian과 나의 同学 수빈이가 안간다고 하길래, 혼자 가기 좀 그래서 안가기로 하였다. 어짜피 춤을 별로 좋아하도 잘 추지도 못하는 나는 클럽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오늘 금요일에다가 12시까지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고, 10일만 기숙사에서 살면 되는 규정이 있어서 아직까지 룸메이트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나 혼자 이 방에 있으려니 외롭군.. 그냥 클럽 갈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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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08 23:19 오늘의 일기

1. 뭐 페이스북에서 떠들었다시피 어제 대만에 도착하였다.

2. 어제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의 온도계는 14도를 가르키고 있었지만 바람이 상상 이상으로 불어서 매우 추웠다. 바람이 뭐 거의 태풍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1년을 같이 보내게 된 친구들은 매우 친절해서 마음에 든다. 비록 영어랑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가지게 된다. 방금 Even이라는 친구는 비록 내가 영어를 문법에 하나도 맞지 않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남자인 Eric도 마찬가지..

3. 오늘도 이곳 타이중 사루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기온은 낮지 않으나 바람이 많이 불어 춥다. 젠장. 오늘 또 정말 고마운 인연들을 만났는데, 앞서 말한 Even과 Vivian이다. 대만 여자아이들은 자기의 이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어이름으로 불러주길 원하더라. 아마 발음이 어려워서인가.. Vivian의 경우에는 1년간 나의 학업 도우미를 맡게 됐다. 만으로 19세이고 경영학을 전공한단다. 한국에 관심이 매우 많다. 닉쿤을 매우 좋아하는 모양인지 아이폰 잠금화면에도 닉쿤이 ㅋㅋㅋㅋㅋㅋㅋ  뭐 어쨌든 다른 한국 학생들에게 배운 욕을 첫만남부터 시전함으로써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ㅋㅋㅋ 오늘 캠퍼스탐방이나 수강신청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전담마크해주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 Mimi와 Vivian이 도움을 주어서 수빈(유이한 한국학생)이와 함께 사루시내를 구경도 할 수 있었다. 핸드폰 심카드도 성공적으로 구매했고, 수빈이도 제대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버블티도 처음 맛볼 수 있었는데 맛있더라 음.. 또한 Vivian은 차를 가지고 있어 (오오!!) 덕분에 편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Thank you! Vivian, Even and Mimi!

4. 내가 영어와 중국어가 매우 능통하지 않다는것을 학교에서 안건지 어쩐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학습 도우미가 한명 더 늘었다 ㅇㅇ.. 역시 대만 여인네.. 자세한건 내일 만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5. 뭐 어제부터 계속 Korean teenager Concert 가 있다고 하길래 대체 뭘까 했더니 한국 월드비전 합창단에서 이곳 징이대에 방문했다. 몸이 조금 좋지 않아서 가지말까 생각했지만, 한국인이 이런 자리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가겠는가? 그래서 베드로관에 있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천주교 학교여서 그런지 수녀님들이 엄청 오셨는데 내 옆자리로 한국말을 하는 수녀님들이 오시더라. 알고보니 예수성심시녀회 대구관구 소속 수녀님들이었다. 교포사목 하시는 분도 있고, 타이중교구청에서 교구장주교님 비서하시는 수녀님도 계셨고, 이곳 징이대 사회복지학과에서 박사과정 밟으시는 수녀님도 계셨다. 굉장히 반가워하시더군. 비록 한국을 떠난지는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합창단이 많이 반갑더라. 끝나고 나서 페이스북에 대만 아이들이 이 공연이 좋았다고 이때문에 한국이 좋아진 것 같다고 하는 글이 막 올라와서 뿌듯함을 느꼈다.

6. 내일은 시내구경이 있단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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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06 00:20 오늘의 일기

1. 어제는 외박을 하였다. 그래서 일기를 쓰지 못했다.

2. 어제 몽골 해외봉사 갔던 의료팀 식구들과 모였다. 간호대 친구들 대부분이 국시를 보고난 다음에 바로 CMC 연수를 갔다고 하여 모인 인원은 많이 되지 않았다. 이번 모임을 주선하신 김우진 신부님과 이번에 의사가 되어버린 욱형, CMC가 아니라 SMC 간호사가 되어 9월까지 논다는 수현이, 요즘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도현이, 2월 3일이 생일이었던 막내민지가 왔고 강남 모처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와중에 경문이, 혜진이도 와서 재밌게 놀았다. 서래마을에서 식사를 마치고 김신부님의 제안으로 사당동 CMC 사제관에 가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김신부님께서는 별로 준비한게 없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각종 과일, 과자, 견과류, 오징어채, 각종 치즈와 함께 로얄 샬루트 21년산 (오오오오오오) 3병을 꺼내셨다. 오오 내 입이 호강하는구나! 일단 고깃집에서 소주와 소맥으로 달렸던 나는 좀 힘이 들었지만 로얄 샬루트를 또 마시기 시작했다 오오.. 두패로 나뉘어 얘기하다가 또 같이 얘기하다가 그러면서 화기애애하게 마셨다. 아.. 그리고 지났지만 센스있는 혜진이가 민지를 위해 생일케익을 사와서 생일 축하파티도 하였다. 이제 국시 합격으로 진짜 의사선생님이 된 욱형은 3월에 논산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공중보건의로 가신다 한다. 나중에 기회되면 형네 보건지소 가서 또 달릴날이 오겠지.. 수현이는 계속 나랑 서로를 디스하다가 결국에는 나를 먼저 보내버렸다.. (ㄷㄷ) 이건 뭐.... 자기는 술을 못마신다고 하는데.. 이건 뭐..... 경문이는 서브인턴으로 요즘 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하고... 또 연애를 즐기고 있어서 나머지 솔로인 우리들은 경문이에게 시기질투를 퍼붓기에 바빴다. 민지랑 혜진이는 11시쯤 먼저 일어났고 나는 계속 술먹다가 결국에는 1시쯤 뻗었다. 잠시 자다가 일어나니.. 어디서 낯익은 소리가 들리길래 보니 최항준이 와있었다 오오.... 결국에는 3시쯤에 나랑 도현이를 제외하고는 다 일어났고, 도현이랑 나는 사제관 거실에서 잤다. 그런데 일단 한 2시간 수다 막 떨다가 잤고, 결국에는 5시쯤 자서 7시에 일어났다. 집까지 내주신 신부님께 인사를 하고 나왔어야 하지만 너무나도 곤히 주무시고 계셨고, 나는 학교에 빨리 가야해서 경황없이 나와서 얼마나 죄송하던지.... 내일 한번 전화 드려야겠다. 그리고 참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오래가기 어려운데.. 어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멤버들 오래갈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3. 사제관에서 나와서 남성역 근처에서 도현이랑 밥먹고 헤어지고 피곤했지만 학교로 향했다. 2012년의 마지막의 복사를 서기 위해서다. 정신은 매우 몽롱했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는 복사기에 열심히 서려고 노력했으나... 강론때 자고.. 복사설때 계속 하품하고..... ㄷㄷ.... 미사가 끝나고 복사단 애들이랑 밥먹으려 가려고 했는데.. 보니까 어제 먼저 갔던 민지가 미사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지가 나간다고 콜라겐 팩을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ㅠㅠ 선물도 좋았고.. 나를 기다리고 선물을 준것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수녀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복사단 아이들끼리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복사단 아이들은 일단 나를 너무 잡아먹으려 들어서 단점이긴 하지만 참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다. 어쨌든 헤어지고 나는 집에 왔다.

4. 집근처에 왔는데 집 근처 육교에서 갑자기 소방차도 있고 관광버스 2대가 있고 그래서 큰 사고가 났다는 예감을 받았다. 지나가면서 보니까 뒤에서 시신을 덮은 하얀천이 있고 시신 팩을 구비하는 것을 보고서.. 인사사고가 났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까 관광버스 기사 아저씨 한분이 정비를 하시러 밑으로 들어가셨는데 어떻게 된건지 관광버스가 움직여서 아저씨를 깔고 넘어간듯 하다..,. 동료 기사 아저씨가 보고 신고하셨다고.. 참.,.. 그런걸 보면 인생은 참.. 허무하다.. 어쨌든 기사아저씨의 명복을 빈다.

5. 대만갈 짐을 싸는데.. 1년 지낼 짐이라 정말 많다.. 압축백을 이용하여 싸다가 승질났다. 짐이 다 들어가지가 않는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8시에 홈플러스에 가서 대용량 캐리어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뭐 물품 몇가지 사니까 27만원이나 들다니..... 참 살기 힘들다..

6. 내일 한국에서 마지막 날이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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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03 23:46 오늘의 일기

1. 이제 얼마 안있으면 한국을 뜨는구나. 실감이 안난다.

2. 재영이 누나가 밥사준데서 학교에 갔더니 수녀님께서 스마트폰을 사셔서 기뻐해 하시고 계셨다. 윤미누나와 재영누나가 수녀님께 스마트폰 알려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찬밥이 되....지는 않았고 같이 스마트폰에 열중하다가 재영누나가 쓰고 있는 블랙베리를 디스하고 갤럭시를 디스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며 같이 놀았다. 원래 재영누나가 나만 밥사주는거였는데 수녀님의 결단력으로 인하여 나뿐만이 아니라 교목실 식구들끼리 밥을 먹는 기쁜 기회를 얻었다. 오손도손 웃음꽃을 피우며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나는 밥을 빨리 먹고 명동에 가서 대만에서 쓸 성물을 사고 간 김에 외환은행 본점에서 대만달러로 바꿀 생각이었는데 밥도 늦게 오고 수진이가 역곡역에 같이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윤미누나의 부탁으로 사목실일에 차출되는 바람에 ㅠㅠㅠㅠㅠ 그래서 학교에 있는 우리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였다. 원래는 달러로 하려고 했는데, 유로로 하면 수수료 혜택이 있어서 그걸로 바꿨다. 뭐 어짜피 2번 바꿔야 할꺼 어느걸로 바꾸면 어떠랴. 어쨌든 오늘 나를 위해 이렇게 밥도 사주시고 기쁘게 해주신 교목실 식구들에게 감사드린다. 혹여 어떻게 알 수 있나. 내가 대만에서 선물을 이따시만하게 많이 사가지고 가서 나눠드릴지 ㄲㄲㄲㄲ (저는 사준다는 얘기를 안했습니다 ㅋㅋㅋ) 5일 미사에서 뵙겠습니다!

3. 7시에 인경이를 만나기로 했는데 갈곳도 없어서 4시부터 학교근처 카페베네에 있었다. 카푸치노 한잔 시키고 노트북 켜서 뭘 검색하니 좀 있어보이는 것 같더라. 오오 이런 된장남 오오. 이런 분위기는 나랑 맞지 않아서 한시간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동방에서 2~3시간 있었는데, 난방이 안되는 동방에서 난 추워서 죽을 뻔함. 중풍오는 줄 알았어.

4. 인경이가 사장님이 회의를 안 끝낸다고 늦을것 같다고 좌절했지만 신입사원 답지 않은 인경이의 능력으로 제시간에 왔다. 오히려 내가 역곡역에 나가는 것이 늦어버렸네. 어쨌든 잡지사의 기자가 된 인경이는 뭔가 있어보이더라. 오오.. 학교에 처음들어왔을때 어렸던 아가들이 이제 취업해서 나보다 먼저 사회에 진출하다니.. 대단하다. 세월이 무상하다. 엉엉.. 어쨌든 학생인 나는 인경이한테 밥도 얻어먹고 할리스 가서 차도 먹었다. 물론 찻값 정도는 본인이 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경이랑 얘기하면 꽤 심각한 얘기를 한다. 나랑 인경이가 앉은 양옆좌석에는 커플이 서로 쪽쪽 댔지만 우리는 그런거에 신경쓰지 않고 아주 심각한 얘기를 잘 나눴다. 항상 걔랑 이야기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권 비판, 사회 비판, 공동체 비판 등등... 뭐 비판구락부냐.. 어쨌든 8시 20분부터 시작한 대화는 꽤 심각하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흘러가다가 10시 40분에 끝났다. 마지막으로 카드와 발렌타인데이때 초콜릿 못받을거라고 그걸 선물로 주더군. 참 고마웠다. 동아리 오빠가 해외에 간다고 그렇게 신경써주다니 말이다. 굳 ㅋ

5. 방금 전에 세탁기에 빨래를 넣었는데 세탁기가 얼었다. 저거 언제 녹이지... 망했다... 잠자기 글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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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
2012/02/01 22:07 오늘의 일기
1. 어제는 소주 3병을 먹고 집에 바로 들어와서 너무나도 취해서 그냥 잤다. 그래서 어제 일기를 쓰지 못했다.

2. 어제는 눈이 퍼부어 원래의 약속은 다 취소를 했고 집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만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도 추웠고 그다음에 몸살이 났다. 술먹고 추운데 돌아다니면 안되는 모양이다. 원래 재영이 누나가 오늘 점심 밥을 사기로 했는데 결국에 몸이 안좋아 나가지 못하였다. 집에서 오랜만에 혼자 앉아서 있으니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빨리 몸이 나았으면..

3. 드디어 대만을 가서 쓰기위해 시켰던 110v 콘센트와 멀티탭, 옷가지를 싸기 위한 압축팩이 왔다. 드디어 대만에 가는 것도 일주일이 남지 않았구나.. 잘 할 수 있겠지.. 요즘에는 그생각 뿐이다. 설레이지만 걱정이 되는 마음.. 이것은 마치 입대하기 전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 피곤하다....

4. 오늘 저녁에 최준홍과 장현명이랑 동암역에서 만났다. 내가 가고 싶어했던 '삶이 보이는 창'은 없어졌다. 김정대 신부님께서 다른 소임을 받고 바우의 집도 만수동에서 김포로 이사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없어졌을 줄은 꿈에도 생각치 않았다. 하나의 마음의 안식처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특히 오늘 저 멀리에서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5. 술은 역시 JQ 멤버들이랑 먹는 것이 제맛이다. 오랜만에 만난 장현명의 드립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불과 2시간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러모로 즐거운 저녁이었다. 이것도 6개월 후에나 즐길 수 있다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동안 모두 잘 있으시게들... 현명이는 훌륭한 공군장교가 되기를 빈다.

6. 위대한 령도자 리명섭 동지께서는 오늘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셨다가 바로 중국 베이징으로 가셨다. 참으로 신출귀몰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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