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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야보텐 아저씨가 나의 여행일정을 듣더니 조금은 의아해 하시더라.

부산을 제외한 3박의 일정 중에 2박을 히타카츠에서 묵는다고 했더니 왜 그랬냐고 하시며 이즈하라(厳原)에서 이틀을 묵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사실 이즈하라가 대마도에서 가장 큰 곳이기 때문에 그분이 하시는 말이 맞지만 어딜 돌아다니거나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즐기러 온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아깝지는 않았다. 그리고 히타카츠가 이렇게 작은지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걸수도 있곘다.


또 티비를 보면서 방 한켠에서 조용하게 술과 과자를 먹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또 아침 일찍 이즈하라로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히타카츠에서 이즈하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 있고 8시 40분에 그 두번째 차가 떠나기 때문에 얼른 서둘러야 했다. 빨리 씻고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서 내려갔다. 





<호텔 조식/생선 굽는 냄새 맡고 달려온 고양이>


호텔의 조식은 전통적인 일본 가정식이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호수별로 미리 밥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앉으니 호텔 직원이 오셔서 매우 친절하게 고체연료에 불을 붙였다. 생선이 구워서 나오는게 아니라 고체연료로 내가 생선을 구워먹는 그런 특이한 모습으로 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생선을 직접 구워먹는것이 신기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전부 똑같이 지글지글 굽고 있으니 창밖으로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여러가지로 재밌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해산물위주로 되어 있는 반찬은 맛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조식을 먹고 다시 돌아와서 8시 40분 차를 타기 위해서 빨리 내려왔다. 잘못했다가는 버스시간을 놓치고 11시 차를 타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체크아웃을 하면서 콜택시를 부탁했다. 




<호텔 객실에서 바라본 바다/택시를 기다리며 본 풍경/1일 승차권/버스 내부 모습>


날씨는 비는 그쳤지만 비가 다시 언제 내릴 줄 모르는 상태였다. 산을 감은 구름은 고즈넉 하기도 했다. 콜택시를 이용하여 히타카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출발까지 3분정도 남은 상태였다. 빨리 1일 승차권을 사고 버스에 들어갔다. 히타카츠에서 이즈하라까지는 2시간 40분정도가 걸리고 제대로 돈을 내고 타면 3000엔 정도를 지불해야한다. 다만 외국인의 경우에는 1일 버스패스를 타면 1000원에 하루동안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2시간 45분이나 달리는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마치 옛날 시골버스를 보는 것 같았다. 짐을 별도로 놓을 공간이 없어서 옆자리에 놓았고 버스는 2명의 대마도 주민과 6명의 한국인을 태우고 이즈하라로 출발했다. 


대마도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만큼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멀줄은 몰랐다. 하지만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거리가 멀어서 2시간 40분이 걸리는게 아니라 산악도로를 지나고 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정도 걸린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좋은 길은 왕복 2차선, 나쁜 길은 과연 이 버스가 여기를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길을 가다보니 제대로 속력을 내기가 어렵다. 버스는 이곳저곳을 지나자 약간 도회지의 모습을 띄기 시작했다. 이즈하라 근처에 온 것이다.




<쓰시마 야마네코 공항 마스코트/이즈하라까지 태워준 버스>


버스는 공항을 지나는데, 이 공항은 조그마한 공항으로 일본 후쿠오카와 나카사키로 나가는 비행기가 운행되고 있었다. 대마도는 후쿠오카와 가깝지만 나카사키 현에 소속이 되어 있어서 생활권은 후쿠오카로 행정은 나카사키로 되어 있는 구조이다. 그래도 섬 규모에 비해서 인구수가 작아서 인지 지역 항공사와 전일본공수에서 50인승 비행기를 투입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 라는 곳에서 18인승 비행기를 투입하여 김포-대마도 간을 운행하였다고 하는데, 수요가 없어서 2013년 12월 부로 단행되었다고 한다. 공항의 별칭은 야마네코이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는 각 도시에 특징을 살려서 별칭을 정해놓고는 하는데, 대마도의 경우 대마도에서 고유적으로 자생하던 삵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산고양이라는 이름의 야마네코(山猫)가 별칭으로 정해져 있다. 이렇게 한 고장의 유명한 특산물 또는 기념물을 별칭으로 정해놓은 것은 굉장히 좋은 것 같았다.


얼마 더 가니 이즈하라에 도착했다. 대마도에서 가장 큰 도회지라고 하길래 그래도 도시를 생각을 했지만 생각외로 작은 시골 읍내와 비슷한것 같았다. 도회지 중앙에는 바다로 나가는 시내가 흘러가고 그것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한 것 같았다. 시골 도회지와 어울리지 않게 큰 티아라 쇼핑몰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간 곳은 관광안내소였다. 관광안내소에는 짐을 맡길 수 있는 라커도 있었고 더구나 대마도와 근방 섬에서 쓰인다는 화폐인 시마토쿠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5000엔 어치 시마토쿠를 사면 1000엔짜리 시마토쿠 6장이 들어 있어 6000엔 정도의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원래는 히타카츠에서 바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즈하라에 와서 만엔을 바꿨다. 







<티아라 쇼핑몰 앞에 있는 조그만 신사/이즈하라 한가운데를 흐르는 지천/카페 친구야/에스프레소>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고 점심밥을 먹기에도 약간은 애매한 시각이길래 이즈하라를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이즈하라 시내는 대마도의 중심지긴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도시가 아니라 읍내 인것 같았다. 시내에는 일본인 보다는 한국인 관광객이 훨씬 많아서 내가 한국 어느 지방 소읍에 와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읍과 전혀 맞지 않은 큰 규모의 티아라 쇼핑몰 앞 도로를 건너니 조그마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고 좁은 길을 더 이동하니 여느 일본의 도시처럼 작은 강과 다리가 놓여 있었다. 한쪽으로 버드나무가 쭉 배치되어 있어 약간 고즈넉한 정취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리 건너에는 친구야라는 까페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인이 건너와서 운영하는 카페로 한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집이다. 사실 히타카츠에도 친구야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볼때마다 자리가 꽉차 있어 들어가 볼 수 는 없어 이곳에서 커피도 한잔 하면서 이곳의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하시는 일본인 아주머니밖에 안계시고 사장님은 외출 중이셔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키고 휴식을 취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어느 식당이 맛있냐고 여쭤보니 지도를 주시며 여러가지로 설명해 주셔서 그 곳을 가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뒷길을 통해 돌아다녀보니 그 식당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지나가다가 좀 으리으리한 식당을 발견하여 들어갔다.





<식당 타치바나(橘)/가츠동 정식>


내부에 들어가보니 카운터석은 물론이요, 룸도 따로 있고 한 제대로 된 식당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아주머니께서 나누어준 지도에는 여기가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선지 손님도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머리에 눈이 내린 것 같은 사장님께서 초밥을 만드셔서 옆에 앉은 부부에게 계속 주셔서 나도 이렇게 해볼까 싶었지만 일본어를 제대로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주문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머뭇머뭇 거리고 있으니 여주인께서 나에게 한국어가 적힌 차림표를 주셨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츠동과 우롱차를 시켰다. 앞에서 스시를 만들고 계시고 옆에서는 만들어 준 스시를 먹는 사람이 있는데 가츠동을 먹기에는 조금 이상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고 열심히 스시를 만드시는 사장님을 볼 수 있어서 만족했다. 양은 좀 적었지만 맛은 있는 편이어서 나중에 대마도에 오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담/ 돌담의 형성과정과 대화재에 대해 설명해놓은 지도>


이즈하라는 히타카츠와 달리 돌담이 아주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돌담은 아니었으나 돌담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제주처럼 현무암을 이용하여 바람이 통하라고 일부러 얼기설기 돌담을 만든것도 아닌것 같았다. 나중에 관리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게시판에 끼여있는 지도를 보고서 알았는데, 17c에도 이즈하라는 대마도의 중심지였는데 17c~18c 약 100년 동안에 이즈하라에서는 6번의 대화재가 일어나 이즈하라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때서부터 돌로 방화벽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방화벽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고 쓰이고 있는 것이었다. 벽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도시 전체를 방화벽으로 처리할 정도였다면 얼마나 이 대화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한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카네이시성(金石城)과 반쇼인(万松院)에 가기 위해서 쓰시마시청 쪽으로 향했다. 쓰시마시청 뒤에는 현립 쓰시마민속자료관이 있었는데, 단층으로 이루어진 전시관은 볼 것이 별로 없었다. 대마도라는 곳이 한국과 일본에 가운데 있는 섬으로써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대마도주가 조선왕의 신하이자 일본 막부의 다이묘라는 이중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특이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카네이시성(金石城) 고려문과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카네이시성은 대마도를 대대로 지배하던 대마도주 소(宗)씨 가문의 성이었다. 드라마 징비록에 보면 당시 대마도주이자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초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소 요시토시가 바로 이곳에서 대마도를 통치한 것이다. 이곳에서 소씨집안은 30대에 걸친 당주가 대마도를 통치했고 이것은 일본이 1945년 패전하면서 신적강화가 되어 화족이었던 소씨가문이 평민가문으로 격하될때까지 지속되었다. 카네이시성은 또 조선통신사와 연관이 많은데, 카네이시성의 정문의 이름이 고려문이고 건축양식 자체가 조선과 일본의 결합형태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한다. 고려문은 조선통신사가 지나는 문이었으며 카네이시성에서 조선통신사가 머무르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대마도에 조선이 끼친 영향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네이시성으로 들어가면 또 우리 역사의 아픈 현장을 목도할 수 있는데, 바로 덕혜옹주 결혼봉축비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처럼 덕혜옹주는 조선 최후의 공주라고 일컬을 수 있고 그야말로 인생 자체가 조선의 멸망과 겹치는 바가 많아 소설이나 연극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덕혜옹주는 아버지인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너무나도 예뻐하던 딸이었고 일본이 강제합병이후 대한제국의 황족들을 유학을 빙자하여 강제로 인질로 삼아 데리고 가던 만큼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보내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고종황제가 승하하고 난 다음에 강제로 일본으로 가게되었다. 결국 1931년에 일본의 압력으로 화족집안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 인물이 대마도주 소씨집안이었고 결혼상대는 37대 당주이자 마지막 당주였던 소 다케유키(宗武之)였다. 결혼 이후에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는 정략결혼치고는 의외로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버지의 의문사, 일본의 고의적인 고립, 독살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이미 신경쇠약이 있던 상태였고 1930년 어머니인 귀인 양씨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기점으로 조현증과 몽유병이 심해진 상태였다. 소 다케유키는 이러한 아내를 잘 보살폈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신적강하로 인한 경제난, 재산처분이 이루어지고 간호하기가 힘들어지자 딸 마사에가 결혼한 뒤에 1955년 이혼하게 된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딸인 마사에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만 남기고 사라졌으며, 덕혜옹주는 계속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는 비극적 상태가 지속되다가 1962년에 한국땅을 밟게 된다. 이후 1989년 사망할때까지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냈는데, 궁에서 지냈던 기억은 남아 있어 당시 생존해 있던 순종 비 순정효황후에게 전통예법으로 절을 한다던지 정신이 맑아지면 상궁들과 화투를 치며 지냈다고 하니 덕혜옹주를 괴롭혔던 정신병 자체는 일제의 압박과 고립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덕혜옹주 결혼봉축비가 원래는 한 신사에 있었는데 1990년대에 한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니 매우 씁쓸한 현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비를 그냥 어디에 세워져 있는 비석같이 보는 분위기였다. 그냥 지나가거나 그 앞에서 천진난만한 표정과 포즈로 사진을 찍으니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카네이시성은 현재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고려문도 1990년대에 복원한것이고 그 흔한 건물들도 복원되지 않았다. 다만 정원이 남아 있었는데, 정원의 터정도만 남아있는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하였다. 







<카네이시성 정원 터/ 건물 터/ 문 터>


정원을 흐르는 물과 가운데에 섬, 그리고 주변에 있는 돌들이 일본식 정원의 양식을 따른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주변의 건물 터와 문터를 보니 대마도를 37대에 걸쳐 다스렸다는 소씨가문의 모습도 이제는 점점 이렇게 잊혀져 가는구나 하는 쓸쓸함도 느껴졌다. 카네이시성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반쇼인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 곳은 소씨가문의 사당이다.







<반쇼인 정문/반쇼인 사당/묘소로 올라가는 계단/부도>


반쇼인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맞는 것은 소씨 사당이었다. 전통적인 일본식 사당으로 되어 있는 이곳은 처음에는 소씨 당주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사당이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한가지 신기했던 것은 도쿠카와 이에야스 사당 앞 공간에 조선왕(누구라고 적어두지 않았다.)의 하사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큰 책상과 학, 거북이와 같은 장식품 그리고 촛대 등이 있었다. 소씨가문 사당 옆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공간 그 앞에는 조선왕의 하사품이 있는 것을 보고 대마도의 이중신분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것 같아 신기하였다. 사당을 나와 옆으로 걸으니 숲으로 이어진 계단이 매우 높게 이어져 있었다. 날씨도 더웠지만 풍경이 꽤 괜찮아 상당히 좋았다. 가을에 단풍질때 오면 더 좋지 않을까? 계단을 올라가니 있는 곳은 부도 천지였다. 알고보니 소씨가문 당주 뿐만 아니라 아내, 친척 등의 부도가 마련이 되어 있어 이곳이 소씨 집안의 묘소임을 알게 했다.  






<반쇼인에서 시청으로 내려오는 길 / 우동과 일본주 / 가라아게>


반쇼인에서 시청으로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옆으로는 깨끗한 시냇물이 흘렀고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내려오면서 무얼할까 생각하다가 아까 먹은 가츠동이 다 소화가 된 느낌이어서 숙소에 체크인 하기 전에 티아라 쇼핑몰에서 가볍게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들어간 곳은 우동집이었다. 우동집에는 가게 주인분만 일본사람이었고 손님은 전부 한국사람인 매우 이상한 풍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내가 택한 메뉴는 처음에는 오징어튀김우동이었으나 이것만 먹기에 다소 아쉬워서 가라아게와 일본술을 한잔 시켜서 먹었다. 맛집이 아닌 쇼핑몰 안에 있는 식당인 만큼 맛은 그렇게 있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니 호텔 체크인 시각이 다 되었길래 라커에서 짐을 꺼내서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호텔 쓰시마. 이즈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7층)이라 찾기가 쉬웠다.




<호텔 쓰시마 1인용 객실/잠깐 쉬면서 본 드라마 Hero>


2층 카운터에서 키를 받아 올라가니 5층 객실이었다. 호텔에 들어가보니 그다지 시설은 좋지 않았지만 혼자서 지내기에는 상당히 알맞았다. 히타카츠의 호텔 카미소와는 달리 개인 욕실이어서 씻기는 편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이동했고 또 제대로 쉬지 않고 이즈하라를 돌아다녔기에 조금은 휴식이 필요해서 침대에 앉아서 티비를 켰는데,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아저씨가 나와서 보니 2014년에 방영한 히어로 2를 재방영하고 있었다. 자막 없이 봐서 조금은 그랬지만 이미 본 내용이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다 본 다음 해가 어느정도 서쪽으로 기울었기에 밖으로 나와 이즈하라 시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즈하라 시내 모습>


앞에 설명했다시피 이즈하라 시내에는 가운데 흐르는 지천을 중심으로 시내가 형성되어 있다. 그 지천에는 조선통신사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대마도에서 조선통신사를 관광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조선통신사를 일본의 문화로 키우려는 의도 보다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가는 길에 대마도를 항상 거쳐갔던 것 만큼 한일의 가교로서의 대마도의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서는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플랑카드도 많이 붙여져 있었다. 길을 계속 걷다보니 이즈하라 항에 닿았고 걸어가니 사가노하나오하시(佐賀ノ鼻大橋)다리에 들어섰다. 퇴근하는 차들이 교외로 나가고 있었고 며칠 후에 있는 국경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들인지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사가노하나오하시 위에 들어서니 이즈하라와 이즈하라항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대마도에서 바라본 모습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마지막날 저녁을 더욱 기쁘게 지낼 수 있었다. 이즈하라를 관망한 후 다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핫쵸(八丁) / 아나고텐동(アナゴ天丼)과 튀김>


사실 식당 핫쵸는 점심때 친구야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식당인데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식당이었다. 역시 한명이라고 하니 카운터석으로 안내해주시는데 룸에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가만히 보다가 아나고텐동이라는 음식이 있기에 신기해 했다. 우리로 따지면 붕장어튀김 덮밥인데, 맛도 궁금하기도 하고 한번 시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 실수를 한가지를 했는데, 아나고텐동을 시킨 것을 생각지 못하고 덴푸라를 또 시킨 것이었다. 살펴보면 티아라 쇼핑몰에서 먹었을 때도 가라아게를 먹었는데, 신선한 다른 해산물 요리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한걸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오늘 하루는 속이 니글니글 거리겠다고 생각하고 어제와 같이 사케와 우롱차를 더 시켰다. 


으윽고 나온 아나고텐동과 튀김은 혼자먹기에는 다소 많은 양이었지만 먹음직스러웠다. 아나고텐동 위에는 붕장어튀김 5조각과 피망튀김 2조각이 올라가 있었으며 덴푸라에는 오징어, 새우, 생선살, 가지, 피망 등 5종류의 튀김이 올라왔다. 비록 두가지의 메뉴의 튀김을 먹느라 조금은 느끼하긴 했지만 기름기가 있는 재료의 튀김은 새우튀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의외로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다. 붕장어튀김은 참으로 밥에 잘 어울렸고 생선살과 잘 어울려서 별도의 반찬이 필요가 없었다. 또한 거기에 어울리는 사케 한잔은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들어보니 이 식당이 의외로 유명해서 단체손님때문에 개인 손님은 못받을 때가 많다고 하니 오히려 아까 오지 않은 것이 훨씬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대마도에 한군데 밖에 없는 편의점>


밥을 먹고 나오니 바깥은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였다. 배를 따듯하게 채우고 술까지 한잔 한채로 기분좋게 돌아오는데 편의점이 보였다. 메이저 편의점도 아닌 코코스토어라는 지역 편의점이었는데, 알고보니 대마도에서 한군데 밖에 없는 편의점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간밤에 마실 맥주와 안주거리를 샀다. 대부분의 편의점은 24시간 운영인데 이곳의 편의점은 06:00~01:00까지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는데, 작은 시골 읍내와 같은 곳에 편의점을 24시간 운영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졌다. 나중에 11시쯤 되서 맥주를 다시 사기 위해 나와보니 시내는 쥐죽은듯이 조용하고 술취한 한국인들의 고성방가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돌아가는 일정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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