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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한해동안 대만 생활을 하면서 신기하면서도 당혹스러웠던 것은 바로 일본을 너무나 좋아하는 대만인들이었다. 방송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연예인이 광고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하게 볼 수 있고 좋은 물건일수록 자막에는 일본어가 많이 들어간다. 공중파에서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밑에 자막만 깐채 그대로 방송에 나온다.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같이 공부하던 친구 중에서는 중화권의 전통의상인 치파오는 너무 옥죄고 불편하다고 싫어하지만 일본의 기모노는 너무나 좋아하여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만학생들이 일본학생과 그 이외 나라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차이가 있었다.



(2013 WBC 본선 당시 대만인들에게 고마워 하는 일본인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에 대만 사람들은 마치 자기나라에 지진이 난 듯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 각종 원조를 해주었다. 2년 후에 WBC 일본-대만전에서 일본인들은 저렇게 대만인에 대한 감사를 써서 보여주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에 대만은 졌지만 대만 사람들은 '일본은 선진국이니 지는 것이 당연함. ㅋ 그래도 우리의 영원한 친구임 ㅋ'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도 당시에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원을 해줬지만 그 후의 한국에 대한 시선은.. 음.. 아마도 우리나라 1년 총 예산을 저들에게 지원하더라도 저런 반응은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더 긴 50년 동안의 일제강점기간을 겪었는데, 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의 관념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왜 대만 사람들은 일본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대만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아야 한다.


<대만의 역사=식민지의 역사>


 대만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옛 중국 고서에서 이주(彛州)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그것이 대만섬을 나타내는 것인지 중국 동남부지역을 나타내는 것인지 이견이 많다.  대만섬에는 말레이 계통의 원주민이 여러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고, 언어 역시 동남아시아 또는 태평양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며 수렵과 농경을 위주로 살았다. 그러나 16c 중엽에 포르투갈 인들이 우연히 대만해협을 지나가며 대만 섬을 발견하였다. 너무 아름다운 풍광에 포르투갈인들은 'Ilha Formosa!'(정말 아름다운 섬이구나!)를 외치며 지나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만이 세계로 드러나는 첫 계기가 된다.


 대만이라는 섬이 유럽 세계에 알려지자마자 당시 명나라에 대한 수출 전진기지로 대만을 개척을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드디어 162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타이난(臺南)을 점령하고 '질란디아 요새'를 짓게 된다. 그 후, 3년 후에 스페인이 딴수이(淡水)를 점령하고 '세인트 도밍고 성'을 짓게 된다. 이 건물이 각각 현재는 안평고보와 홍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남아있는 타이난의 안평고보(상)와 딴수이의 홍모성(하))


 결국 대만 원주민을 동원하여 다른곳에서 하던데로 플랜테이션 농업을 대만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164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딴수이 도밍고 성을 공략하여 스페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 성을 빼앗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만은 중화권 문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그 와중에 1644년 인접 중국대륙에서는 명나라가 멸망을 하고 만다.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이자성이라는 사람에게 멸망 당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 대륙은 무주공산의 땅이 되어버렸고, 청나라가 북쪽으로부터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또한 이곳 저곳에서 복명운동이라는 명나라 부흥운동을 벌였지만 날로 남쪽으로 진군해 오는 청나라 군대에 의해 설곳을 잃어갔다. 그 와중에 복명운동을 벌이고 있던 정성공이라는 인물이 자신이 끝까지 항거하던 아모이(廈門)을 버리고 대만으로 들어오게 된다. 1661년 타이난의 질란디아 요새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군대에 맞붙은 정성공은 결국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질린디아 요새를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성공은 거의 왕이 되어(;;;) 남부 대만을 통치하기에 이른다. 


(대만에서 민족영웅으로 불리는 정성공 상)


 그러나 그는 1662년 사망하고 그의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 정씨왕국을 통치하다가 결국 내분에 휩싸였고 1683년 청나라 강희제가 대규모 토벌군을 파견함으로써 투항하게 되었다. 투항 이후, 청나라는 대만섬을 푸젠성(福建省, 복건성) 관할의 현으로 편입시켜 청나라의 땅이 되었고 그 이후 1895년 일본에게 할양될때까지 212년간의 통치를 받는다. 212년간 청나라 본토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해왔고 이들의 후손이 현재 대만인의 80%이상을 이루고 있는 본성인들의 선조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앞의 스페인, 네덜란드의 통치는 식민지라고 볼 수 있지만 어떻게 청나라의 통치가 식민지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주해 왔던 사람들의 면모를 보자면 청나라의 통치는 식민통치라고 부를만도 했다. 당시에 이주해 왔던 사람들은 정성공을 따라서 만주족의 지배를 피해 들어왔던 사람들이 있었고 두번째는 푸젠성(福建省), 저장성(浙江省), 광둥성(廣東省), 광시성(廣西省)일대의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이 사람들은 내 나라가 청나라라는 생각이 없었고 청나라의 지배 하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서 또는 해외에 장사를 하기 위해서 대만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푸젠, 저장, 광둥, 광시에서 살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화교의 시작이었다.)


 이 사람들의 생각에 청나라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란 기대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중국 남부의 독창적인 문화와 당시 같이 넘어온 하카인들의 문화 그리고 원주민들의 문화까지 겹쳐서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해 내었고 언어 역시 중국어가 아니라 푸젠성 지역 언어인 민남어가 들어와 독창적인 대만어가 형성되어 그것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사람들 관점에서는 청나라정부를 '우리의 나라'가 아니라 '스페인과 네덜란드와 같이 우리를 지배하는 지배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청나라의 지배 동안 중화문화는 들어왔을지는 몰라도 그 삶의 질은 향상되지 않았다.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하는데로 플랜테이션 농업을 계속 이어받아서 대만섬을 경영하였고 청나라의 행정제도 역시 중요한 곳이 아니면 전부 신사(紳士, 우리로 따지면 선비 또는 마을 유지)에게 맡겨버리는 모습이 그대로 이어짐으로써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1895년,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는 패배를 하게 된다. 결국 청나라와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을 하는데 그 조약에서 일본은 요동반도, 대만 섬, 펑후제도 등의 땅을 청나라로부터 할양받게 되면서 대만은 일제치하로 들어가게 된다. 청나라의 관리들과 일부 한족들이 일제의 통치에 저항했지만 일본은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결국 한족 주도로 한 저항운동은 1915년 타이난에서 일어난 '타파니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한족 주도의 저항운동이 1915년에 명맥이 끊긴 이유는 청나라에 충성하던 관리들과 일부 한족에 국한되었던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한족 계통의 본성인들은 '우리의 지배자가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 때문에 저항운동이 널리 퍼지지 못했다. 



(현재는 중화민국 총통부<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는 구 대만 총독부)



(1908년에 일제에 의해 지어진 국립대만박물관)


 또한 일본의 지배 방식 자체가 조선에 비해 매우 온건했다. 1915년 '타파니사건'이후 일본은 대만지역에 문화통치를 시작하게 된다. 문화통치란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웠듯이 문화나 교육으로 식민지인들을 황국신민화를 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의 경우 한번도 외부에 의해 직접통치를 받지 않았던 반만년 역사의 땅이 갑자기 일본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 저항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1919년 3.1운동 이후에 문화통치를 시작하지만 거의 이름만 바뀐 정도였지 이전 통치와는 다를게 없었다. 그러나 대만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문화통치가 시작되었다. 조선에서는 총독이 모두 군인출신이었지만 대만에서는 이시기부터 문관이 통치하게 된다. 일제는 일부 매우 친일파들만 제외하고 모든 조선 사람들을 전부 의심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하였지만 대만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순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순하게 대접하였다.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은 이 방침에 따랐으며, 손쉽게 일제가 바라는 방향으로 통치된다.


 특히, 청나라 시기까지 행정, 교육, 교통, 경제 등등에서 이전과 다를 것 없던 생활을 하던 대만인들은 일제 통치 이후에 행정 확립, 근대교육 실시, 철도 개설, 통신 개설등등의 여러 혜택을 보여주자 '그래도 우리를 지배하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일본 사람들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굉장히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2011년 개봉된 시디그 발레 포스터)


 하지만 모든 대만인들이 일제에 협력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대만 원주민의 경우 일본인들이 생번(야만인)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업신여기고 강제 이주를 시켰으며 전통을 훼손하였으며 그들을 엄청나게 저렴한 임금으로 가장 힘든 일을 시키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1930년 시디크족의 불만이 폭발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던 초등학교에 급습하여 130여명의 일본인을 살해하는 우서사건이 터졌다. 이때 일본은 거의 멸족수준의 진압을 강행하기도 한다. 이때의 이야기는 2011년 오우삼 감독이 276분 분량의 영화인 시디그 발레(Seediq Bale)로 만들어졌으며 원주민들의 저항의식을 알 수 있는 지금까지 유일한 영화이다. 


<광복 그 이후>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대만을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에 이양하고 대만을 떠나게 된다. 50년 동안의 지배를 받던 대만인들은 또 다시 대만의 주인이 바뀌자 혼란에 빠지게 된다. 국민당정부는 매우 강압적인 방법으로 이들을 통치하기에 이른다.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던 세력들을 모조리 없앴으며 국민들에게도 중국의 여러가지 문물과 문화를 강요하였다. 예를 들어, 당시에 대만어와 일본어밖에 쓸줄 모르던 대만인들에게 표준 중국어를 강요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대만인들의 불만은 1947년 228사건으로 폭발하게 되는데, 대만 전체에서 2만명의 사망자가 나올정도로 엄청나게 진압을 해버렸다.


 하지만 1949년 장개석이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피난 오게 되자 상황은 변화가 일어났다. 국민당 정부는 대만인들에게 '우리는 중국인이며 중화문명을 배워야 하고 그를 통해서 대륙에 있는 공산당을 내쫓자!' 라고 강요를 했지만 재정이나 정치적 명분을 잃어버린 그들은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하던 사람들과 손을 잡기에 이르렀다. 대만에서 명문집안들인 대만오가는 일제시대때 일본과 손을 잡고 장사를 하여 크게 돈을 번 사람들이었고 국민당정부는 이들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또한 정치적 기반이 대만에 없던 국민당 정부는 이들과 손을 잡고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일본 우파들과 손을 잡기에 이르렀다. 정치와 경제 면에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가 성립된 대만에는 일본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하였고 이는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1972년 중일수교 이후 대만과 일본은 단교를 했지만 이러한 관계는 지속되었고, 대만의 친일적인 모습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국민당의 대륙에 있을 때 보였던 모습과 너무 달라 당혹 스럽다.)


 이러한 역사들이 모이고 모여서 친일적인 대만의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현재도 댜오위다오 문제에 있어서는 대만은 일본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대만인들의 정신을 친일의 기세가 강하며, 대만 정치와 일본 정치(특히 우파)의 커넥션과 일본경제의 대만 침투 등도 상당히 심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너희는 친일국가다! 하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일단 앞에서 살펴본대로 우리와 역사적 구조가 다르다. 또한 자신의 세력보존을 위해 일본을 끌어들인 것은 결국 일반국민이 아니라 대만 정치였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어찌보면 이들도 역사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때문에 대놓고 이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와 정계와 경제계에서도 일본과 얼마나 친밀한가? 

댓글
  • 프로필사진 ㅇㅇㅇ 전 대만 역사는 님만큼 잘모르지만 일제 식민지릴 격엇던 싱가폴 총리 리콴유의 자서전을 읽엇는데 대만은 일본이전에도 오랫동안 타국의 지배를 받앗기 때문에 일본이 지배하려할때도 크게 저항하지 않앗고 50년 통치가 이뤄지면서 일본인이 대만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힐만큼 완벽하게 식민화되엇다...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그러면허 싱가폴 말레이도 더 오랫동안 통치햇다면 대만처럼 완벽한 식민화에 성공햇을것이라 하던데 인상적이엇습니다 대만이 친일인것까진 상관이 없지만 스포츠에서 졋을때 쟤들은 일본이니까 당연해! 이런 모습보일때면 일본인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상이 식민지때 강하게 박힌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5.02.18 08:27 신고
  • 프로필사진 죄수복 와 진짜 재밌게 읽고 있아요 모르던 사실들도 많이 배워가여~♥♥ 2015.08.27 03:34 신고
  • 프로필사진 ㅇㅅㅁ 같이사는 대만 친구한테 보여주면서 해석해주는데 엄청 웃네요ㅋㅋㅋ 2015.11.23 01:27 신고
  • 프로필사진 일본이 통치를 잘 해서 그런거지, 한국은 중국 속국으로 살던게 너무 익숙해서 일본에 거부감이 있는거고 2016.01.21 21:56 신고
  • 프로필사진 이뭐병 그럼 우리가 문화 전수해주던 미개한 쪽발이들이 외국문물 먼저 받아들이고 배은망덕하게 기어올랐는데 가만 있냐.. ㄷㅅ아

    2016.01.24 17: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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